[1화 벽]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sax)다.”-데미안-
나는 벽에 갇혔다. 내가 벽에 갇힌 건 나 자신에게도 있겠지만, 사회에 대한 우울한 것들이 큰 역할을 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은 나를 파국으로 몰고 갔고, 광장에 대한 공포, 사람에 대한 기피증, 그리고 나의 우울감등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져 있다. 그즈음 나는 이러한 감정을 떨쳐버리고자, 산에도 가 보았고, 확 터져 있는 바다에도 가보았다. 정신없이 걸어보았지만, 나는 겹겹이 쌓여있던 상실감과 불안감, 그리고 허무함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처럼 희뿌옇게 서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배회하다가 머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통은 지나가고, 찌릿찌릿한 느낌에 집으로 급히 서둘러 들어왔다. 나만의 공간, 내게는 휴식이고, 안식처인 내 방에 콕 박혀 있고 싶었다.
누구나 사람은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旣定事實)이다. 죽음이라는 시간은 각기 다르지만, 언제가는 죽게 되어 있다. 존재와 비존재는 다르지 않다. 사진은 미래의 죽음을 예고하는 셈이다. 그 피사체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도, 불타버린 화재의 남아 있는 흔적에서도 비극적인 결말은 남겨진다. 그 대단원의 막을 롤랑 바르트는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라고 말했다. 생성과 변화는 결국 파국을 치닫는다. 벽을 앞에 두고 나는 그런 생각들에 휩싸여 있다. 벽이라는 한계점은 결국 닫혀 있다는 것을 넘어서 나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라는 벽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처럼 쌓여져 있다. 사진을 한지도 10년쯤 되었으니, 어느 정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벽에 부딪쳤다. 인물사진으로 시작한 사진은 이제 피사체로 인물을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오브제로서의 인물을 다루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다. 넘사벽,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내게 사진이 넘사벽으로 다가올 줄이야. 잘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나의 불안감과 소심함은 나 스스로 두꺼운 벽을 쌓고 있었다.
사회는 그물망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사회는 리니지 게임마냥 보이지 않는 멀티유저들과의 게임이다. 혼자서하는 게임은 사회적으로 도태된 듯 보인다. 혼자서 바둑을 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적(全的)으로 나와의 싸움에서 고독을 이겨낸다는 것이 마치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왜 벽을 두고 혼자서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딱히 사람을 기피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떠나보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사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도 해주고, 나는 이런 식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들어주고, 어쨌든 서로의 공통 관심사인 사진에 대해서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곁에 없다는 상실감이 나에겐 무시무시하게 높은 벽으로 내 앞에 놓여져 있다. 기질 자체가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아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성격은 서로 달랐지만 사진이라는 공통점은 같았기에, 늘 의견은 부딪혔지만 서로에게 경쟁적이기도 하였고, 서로에게 힘을 주기도 했었다.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줄 사람도 없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어 보였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몇 달 전 한 친구의 배신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밤중에 전화가 왔었다. 그 친구는 사업이 어려워졌다면서 내게 100만원 좀 빌려달라는 전화였다. 그렇게 큰 돈이 아닐 수 있을지 몰라도, 내게는 큰 돈이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가진 여유돈은 100만원이 고작 남아 있었다. 사실 그 이상을 빌려달라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탓에, 한 달 뒤에 어떻게 마련해보겠다는 이야기에 빌려주게 되었다. 친구끼리 돈 거래는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두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더니만, 전화도 사용 중지되어 끊어져 있었다. 연락두절이다. 제길 이제 내가 거지가 되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내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고 벽을 바라본다. 이 벽만이 나의 위안인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벽 말이다.
“너 철희소식 들었니?”
“아니”
“철희가 수서에서 감자탕 집을 개업했었는데, 1년 정도는 사람이 많아 제법 장사가 잘 되었나봐,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혼하고 사업이 어려워져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는구먼, 친구들한테도 좀 빚도 졌나봐, 너한테는 돈 빌려달라는 말 안했니? 나는 좀 어렵다고 말했었거든....”
“그랬구나, 나는 빌려줬는데, 이젠 받긴 글렀구나....”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바쁠 때는 몰랐다. 일을 할 때는 몰랐다. 그런데 벽 앞에 마주하고 있으니 내게 벽은 묻고 있다. 너는 누구냐?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 너는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네가 가는 길은 어디로 가는 것이냐? 벽은 내게 오히려 묻고 있다. 벽이 질문하는 것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달리기 선수가 뒤는 돌아볼 틈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저 살아가지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떠밀려서 갔는지도 모른다. 다들 앞으로 가고 있으니깐. 우리는 대상을 본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은 모든 것을 안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마음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사진은 그 대상의 재현만 복사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은 사진가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나는 리얼리즘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내가 찍은 현실이 과연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하고. 라캉은 “우리는 끊임없이 대상을 욕망하지만 대상은 결코 주체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대상으로서의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던 나는 더 큰 벽에 부딪혔다. 사진은 본 그대로 찍는다는 것에서 욕망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라는, 그리고 주체로서의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벽은 내게 거울과도 마찬가지다. 나를 비춘 거울은 시시각각 달리 보였다. 내가 만나는 응시는 ‘내가 보고 있는 응시’(regard vu)가 아니라 내가 타자의 장에서 ‘상상해낸 응시’(regard imagine)린 것이다. 벽이 나를 보고 있고, 나는 그 벽을 통해서만이 볼 수 있었다.
벽 너머에는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 태어남은 순백색(純白色)이고, 죽음은 순흑색(純黑色)이다. 빛은 순백색에 가깝다. 완전한 어둠은 순흑색이다. 순백색과 순흑색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없는 한계치이다. 카메라의 초점 기능인 AF(Autofocus)도 작동이 되질 않는다. 완전한 어둠속에서 완전한 밝음에서의 대화가 벽과의 대화인 셈이다. 희미해진 눈에는 초점이 맞혀지질 않는다. 방안에 틀어박혀 나는 히키코모리(Hikikomori)가 된 듯싶었다.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광장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던 때가 언제 있어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장이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고,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고, 머리가 어지럽고, 손발이 저려오고, 호흡이 가빠졌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내 안의 벽은 광장의 명박산성보다 더 높고 견고하게 나를 감쌌다. 벽이 점점 내게 다가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내 방의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다. 오로지 검은 벽이다. 내 방은 또한 암실로도 사용되어져 있다. 천정의 형광등을 끄면 바로 암실로 사용할 수 있다. 창문이 없다. 빛이 들어오는 곳에 검은 막을 칠 필요는 없다. 방문만 닫으면 암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이도 찍었구나, 한쪽 귀퉁이에 대학 입시 때 제출했던 사진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사진들을 다시 보니 서툴지만, 그래도 오히려 순수했던 것 같아 보였다. 사진을 처음 접할 때 찍은 사진들이다. 아니 포토그램(photogram)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이 아니라,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고 노광을 주어 만든 것들이다.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와 만 레이(Man Ray)의 작업처럼, 나는 포토그램을 통해서 암실에서의 사진작업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지만, 암실에서 인화를 하는 과정도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촬영과정에서 절반의 기쁨이 있고, 암실과정에서도 절반의 기쁨이 있다. 인화지위에 가위나, 연필이나, 산에 갔다 주어온 나뭇잎이나, 못이나 쇠붙이들이나, 여러 가지 물체(대상)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인 인화지위에 나름 위치를 정해서 올려놓는다. 그리고 확대기에서 빛을 쏘인 다음, 현상액 밧드(vat)에서 인화지를 담가 상(像)을 띄운다. 유일한 나의 취미이자, 위안이자, 전공이었던 사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내 방에 검은 벽 한 가운데 액자하나를 걸기 위해 못을 박았다.
"What I can’t believe is how much I love photography even after all these years, it’s still brand new to me even though, you know, I started working the dark room at thirteen, it’s been my only job, whether I was teaching it or making it."
-Cig Ha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