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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10. 2024

니콜라이 레스크프의 <레이디 맥베스>

영화 <레이디 맥베스>  2017년

19세기 러시아 소설의 황금기를 이끈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톨스토이에게 ‘도스토옙스키를 능가하는 진정한 작가이자 미래의 작가’라고 극찬 받았으며 토마스 만과 발터 벤야민이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 평가한 숨겨진 대문호이다.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당시 러시아 소설의 전통에 위배되는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그중 권력과 욕망의 대명사인 셰익스피어 비극 속 ‘레이디 맥베스’의 러시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끔찍하도록 강렬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는 작품활동 전 러시아 전역을 순회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 경험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펼치는 진귀한 이야기들의 밑바탕이 되었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역시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했다. 「레이디 맥베스」의 원제는 ‘므첸스크 군(郡)의 맥베스 부인’으로, 사랑을 위해 세 차례에 걸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강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폴란드의 전설적인 거장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 <시베리안 레이디 맥베스>(1962)를 비롯해, 오페라,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리메이크되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타고난 미녀는 아니었지만 매우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은 아니었으나 균형 잡힌 몸매에 그야말로 대리석을 깎아놓은 것 같은 목, 둥근 어깨, 탄탄한 가슴, 섬세하고 오뚝한 코, 검고 활기 있는 눈동자, 희고 높은 이마와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쿠르스크 현의 투스카르 지방에서 우리 지방의 상인인 이즈마일로프에게 시집왔는데 그것은 사랑이나 매력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이즈마일로프가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가난했던 그녀로선 신랑을 고를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즈마일로프 집안은 제밥 산다는 축에 속했다. 군내에 큰 제분소를 빌려 밀가루를 생산했고, 시 근교엔 수입 좋은 채소밭, 시내에는 훌륭한 저택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정말 몇 명 되지 않았다. 오래전에 홀아비가 된 아흔 살에 가까운 시아버지 보리스 치모페이치 이즈마일로프와 그녀의 남편인 쉰 살이 넘은 지노비 보리스이치뿐이었다. 게다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녀에게는 아이도 없었다. 지노비 보리스이치는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결혼하기 전, 20년을 함께 살았던 전 부인에게서도 아이를 얻지 못했다. 상처한 후 치러진 두 번째 결혼에서는 가업과 재산을 물려줄 상속자를 얻기 위해 그는 하느님께 빌었다. 그러나 카테리나 리보브나와의 결혼에도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자식이 없다는 사실은 지노비 보리스이치에게 몹시 괴로운 일이었는데, 그것은 노인 보리스 치모페이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당사자인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P8-9)     

“맞아, 나도 지루해.”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무심결에 말했다.

“이런 생활이 어떻게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마님, 혹시나 남들처럼 당신에게 애인이 있다고 해도, 그를 만나기조차 불가능할 것 같군요.”

“너, 무슨……. 그런 건 아니야. 애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기만 해도 그렇죠.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마님, 아기는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머슴살이도 할 만큼 했고, 부잣집 마나님들 생활이 어떤지 보아온 저희가 정말 모를 줄 아십니까? 이런 노랫말도 있지요.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슬픔과 애수에 사로잡힌다.’ 바로 그 애수가 말이죠, 제 마음속에도 너무나 커서 날카로운 칼로 베어 내어 당신 발 앞에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정말 제 마음이 백배나 더 편해질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나한테 네 마음에 대해 말하는 거지? 그런 건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니 돌아가.”

“아닙니다, 주인마님.”

세르게이는 온몸을 떨면서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 다가섰다.

“저는 당신 역시 나만큼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당신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당신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단숨에 말했다.

“너,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왜 내게 다가오는 거야? 창문으로 뛰어내릴 거야.”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손으로 창틀을 꼭 잡았다.

“한없이 귀중한 나의 생명이여! 어디로 뛰어내리려고 하지요?”

젊은 여주인을 창문에서 떼어내며 세르게이가 거침없이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아, 아, 이거 놔.”

세르게이의 뜨거운 입맞춤에 힘이 빠지면서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조용히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몸에 바짝달라붙어 있었다. (P22-25)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집에 오지 않은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그의 아내는 매일 밤 동틀 녘까지 세르게이와 즐겼다. 

밤마다 지노비 보리스이치의 침실에서는 지하실에서 가져온 포도주에 달콤한 음식과 감미로운 입맞춤이 더해졌으며, 편안한 침대에서의 유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평탄한 길은 없는 법, 장애는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보리스 치모페이치는 잠이 오지 않아 사라사로 만든 화려한 루바슈카(러시아의 전통 상의)를 입은 채 고요한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이쪽 창문 앞에 섰다가 또 다른 창문 앞에 섰다. 그러다 문득 며느리 방 창문 아래로 기둥을 타고 살금살금 내려오는 젊은 세르게이의 빨간 셔츠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보리스 치모페이치는 냉큼 달려가 젊은이의 다리를 덥석 잡았다. 세르게이는 노인의 뺨을 내리치려다가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말해.”

보리스 치모페이치가 말했다. 

“너 이 도둑놈, 어디 있었어?”

“제가 어디 있었는지 알면 어쩌시려고요, 어르신?”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며느리 방에서 밤을 세웠으렷다?”

“어디서 밤을 샜는지는, 어르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리스 치모페이치, 잘 들으시죠. 어차피 엎질러진 물입니다. 그렇지만 상인 나리 체통에 흠을 내서야 되겠습니까? 제게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어떤 대가를 원하십니까?”

“간악한 네 놈에게 채찍질 500번을 해야겠다.”

보리스 치모페이치가 대답했다. 

“죄를 지었으니 원하는 대로 하시죠. 어디로 갈까요? 가서 마음껏 피가 나도록 때리시죠.”

보리스 치모페이치는 세르게이를 돌로 된 광으로 끌고 가, 가죽 채찍으로 자신의 힘이 다할 때까지 때렸다. 세르게이는 아무런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P27-28)    

 

밤에 버섯죽을 먹은 보리스 치모페이치는 위통에 시달렸다. 갑자기 명치가 쑤셔왔고, 심한 구토 증세를 보이다가 아침 무렵 죽고 말았다. 마치 헛간의 쥐처럼 죽어 버린 것이다. 평상시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쥐를 없애라고 그녀에게 맡겨 두었던 위험한 하얀 가루로 특별한 쥐약을 만들곤 했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시아버지의 석광에서 세르게이를 꺼내어,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남편의 침대에서 매 맞은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그리고 전혀 주저함 없이 그리스도교식으로 시아버지 보리스 치모페이치의 장례를 치렀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P31)     


“저것 봐 세료자, 정말 낙원 같아.”

머리 위로 꽃이 만개한 사과나무 가지 사이에 걸린 청명한 보름달과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탄성을 질렀다.

사과나무 잎사귀와 꽃잎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고개를 위로 젖히고 누워 있는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얼굴과 온몸에 기묘한 빛의 반점들로 흩어져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방이 고요했다. 가볍고 따스한 미풍이 졸린 듯한 나뭇잎들을 가볍게 흔들면서 만개한 풀과 나무의 연한 향기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무언가 사람을 지치게 하면서 나른하고 몽롱하게 만들고 또 어두운 욕망으로 이끄는 기운이 느껴졌다.

세르게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연분홍빛이 감도는 사과나무 꽃들 사이로 하늘을 계속 응시했다. 세르게이도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는 관심이 없었다.

양팔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그는 자기 장화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P38-39)   

  

“왜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너를 바람둥이라고 하지?”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해요?”

“사람들이 그러던걸.”

“별 볼일 없는 여자들을 배반한 적은 있었겠지요.”

“왜 바보같이 그런 별 볼일 없는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지? 가치 없는 여자들은 사랑할 필요가 없어.”

“그런 일이 어디 생각대로 되나요? 유혹하는 대로 되는 거지요. 그건 아주 간단해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한번 그 선을 넘어 버리면 여자가 매달려 떨어지지 않지요. 사랑이란 그런 거죠.”

“잘 들어. 세료자! 다른 여자들이 어땠는지 나는 알 바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단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물론 내가 너를 원하기도 했지만, 네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고, 또 네 술수 때문이란 사실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세료자 네가 나를 배신하거나, 내 대신 다른 여자를 택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세르게이는 움찔 놀랐다.                (P41)    

 

헛간에서 자고 있는 늙은 집사의 깊은 잠을 타고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 마치 짓궂은 아이들이 병약한 노인을 어떻게 골려 줄지 모의할 때처럼, 몰래 웃는 소리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가 하면 마치 호수의 요정이 간질이기라도 하듯 낭랑하고 쾌활하게 깔깔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것은 모두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젊은 하인이 달빛 속에서 부드러운 양탄자 위를 뒹굴며 소란하게 유희하는 소리였다. 그들 위로 무성한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신선하고 하얀 꽃잎들이 계속 쌓이더니, 어느 순간 꽃잎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짧은 여름밤이 지나갔고, 달은 높은 창고들의 경사진 지붕 너머로 숨어들며 비스듬히 대지를 비추더니 점점 흐려져 갔다. 부엌 지붕에서 고양이들의 이중창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가래 끓는 소리와 성이 난 듯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 수고양이 두세 마리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지붕에 걸쳐 놓은 널빤지 묶음을 타고 우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P46-48)   

  

촛불을 끄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부드러운 털 이불에 눕히자마자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몰려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음껏 놀고 즐긴 뒤라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팔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결에 문이 다시 열리고, 이전에 봤던 수고양이가 무거운 신발처럼 침대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이놈의 고양이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야?’ 피곤에 젖은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생각했다. ‘분명히 방금 전에 내 손으로 직접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았는데 이 녀석이 또 와 있네, 당장 내쫓아야지.’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잠에 절은 손발이 움직여 주질 않았다. 고양이는 그녀 위를 돌아다니면서 마치 말이라도 하는 듯이 묘하게 그르렁거렸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온몸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내일은 반드시 성수를 가져와 침대에 뿌려야겠어. 그 방법밖에 없어. 이 고양이가 나를 찾아오는 게 너무 불길해.’

고양이가 그녀의 귀에 주둥이를 바짝 대고 말을 했다.

‘내가 고양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카테리나 리보브나, 너는 정말 영특하구나.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명망 있는 상인 보리스 치모페이치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형편없어 보이는 것은, 며느리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고 내장이 전부 녹아 버렸기 때문이야.’

고양이는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쭈그러진 모습으로 고양이가 되어서, 내가 실제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감도 못 잡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지. 그런데 너는 지금 우리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지, 카테리나 리보브나? 혼인서약은 잘 지키고 있나? 나는 네가 어떻게 세르게이 필리프이치와 네 남편의 침대를 뜨겁게 달구는지 보려고 일부러 무덤에서 나왔지. 야옹야옹.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나를 무서워할 것 없어. 보다시피 네가 해 준 음식 때문에 눈알이 다 빠져 나왔거든. 내 눈 좀 보렴, 며늘아가야. 무서워할 것 없어!’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사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녀와 세르게이 사이에 다시 고양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죽은 보리스 치모페이치의 머리와 똑같은 크기의 머리를 달고 있었고, 눈 대신에 소용돌이 불꽃이 빙빙 돌고 있었다!    (P49-51)    

 

세르게이는 주인 위에 걸터앉아 그의 양팔을 무릎으로 누르고는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팔 아래로 자신의 팔을 뻗어 그의 목을 조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지노비 보리스이치는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세르게이를 보고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피 끓는 복수심으로 몸속에 남은 마지막 힘을 분출한 것이다. 그는 무섭게 몸부림을 쳐 세르게이의 무릎에 깔린 팔을 빼내더니 세르게이의 검은 곱슬머리를 움켜잡고는 짐승처럼 이빨로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노비 보리스이치는 곧 무거운 신음소리를 내뱉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P62-63)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지노비 보리스이치의 합법적인 부인이었고 부채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집안을 다스리게 되었고, 그녀의 명에 의해 세르게이는 세르게이 필리프이치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새로운 재난이 닥쳤다. 리브느이에서 시장 앞으로 편지가 왔는데, 보리스 치모페이치가 자기 자본으로만 장사를 한 것이 아니며, 유동자금 가운데 그의 지분보다 더 많은 금액이 그의 나이 어린 조카 표도르 자하로프 랴민의 몫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일의 시비를 밝히는 일을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즉시 카테리나 리보브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 리브느이에서 노파 한 명이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나는 돌아가신 보리스 치모페이치의 사촌누이라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조카 표도르 랴민이고.”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그들을 맞아들였다. 

세르게이는 마당에서 이들이 도착하는 것과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그들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백지장같이 창백해졌다.                      (P69-70)     


“안 돼, 페쟈, 내 말 들어라, 잘 시간이다, 누워야지.” 

“왜 이러세요, 아주머니! 싫다니까요.”

“안 돼, 누워, 누우라니까.”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불안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아 베개 위에 눕혔다. 

바로 그 순간 페쟈가 맹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맨발로 방에 들어오는 세르게이를 보았던 것이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공포에 질려 경악하는 소년의 벌어진 입을 손바닥으로 막고 소리쳤다. 

“자, 빨리, 몸부림치지 못하게 똑바로 잡고 있어!”

세르게이는 페쟈의 손과 발을 붙잡았고,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순식간에 커다란 깃털 베개로 어린 순교자의 얼굴을 덮고는 탄탄하고 탄력 있는 가슴으로 그 위를 덮쳐눌렀다. 

4분쯤 흘렀을까 방안에는 묘지의 정적이 흘렀다. 

“됐어.”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옮겨놓기 위해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그 많은 죄악을 숨기고 있는 고요한 집의 벽이 귀를 멀게 할 만큼 큰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창들이 덜거덕거리고, 바닥은 진동했으며, 등을 연결하고 있는 쇠사슬이 떨리면서 벽에 드리워진 유령 같은 그림자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P82-84)     

“여러분! 여러분! 여기 누가 목을 조르고 있어요! 목을 조르고 있다고요!”

기사는 필사적으로 덧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덧문을 주먹으로 쳤다. 

순식간에 무리가 늘어나, 이즈마일로프의 집을 에워쌌다. 

“난 봤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기사가 죽은 아이에 관해 증언을 했다. 

“아이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고, 둘이서 그 아이 숨통을 눌렀다니까.”

그날 저녁 세르게이는 경찰에 끌려갔고,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위층 그녀의 방에 감금되었으며, 두 명의 보초가 세워졌다. 

이즈마일로프 집에는 견디기 힘든 냉기가 돌았다. 벽난로는 꺼져 있었고, 호기심에 찬 군중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바람에 문이 닫혀 있을 새가 없었다. 모두들 관에 누워 있는 페쟈와 천을 바짝 당겨 뚜껑을 감싸 놓은 커다란 다른 관을 보러 왔다. 페쟈의 이마에는 하얀 공단 조각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두개골 해부로 생긴 빨간 상처를 가리고 있었다. 부검 결과 페쟈가 질식해서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아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이끌려나온 세르게이는 신부가 끔찍한 심판과 징벌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한 치도 빠짐없이 페쟈를 죽인 사실에 대해 자백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채 파묻은 지노비 보리스이치를 꺼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마른 모래 속에 덮여 있던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남편은 시체가 아직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은 그 시체를 꺼내 커다란 관에 넣었다. 세르게이는 완전히 겁에 질린 채 젊은 안주인이 이 두 사건의 공범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모든 질문에 단지 ‘나는 그 일에 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더 말할 것도 없다’라는 말만 했다. 사람들이 세르게이를 그녀와 대질 심문시켰다. 그가 자백하는 것을 듣고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아무 말 없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사람이 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내가 잡아떼도 소용이 없겠군요. 내가 죽였어요.”

“왜 그랬지?”

사람들이 물었다. 

“저 사람을 위해서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르게이를 가리켰다.                (P88-90)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희망은 그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채 낙인이 찍힌 세르게이가 그녀와 같은 무리에 섞여 감옥 문을 나섰다. 

그 어떤 혐오스러운 상황에도 인간은 적응을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보잘것없는 기쁨이라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아무것에도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세르게이를 보았고, 그와 함께라면 유형지로 떠나는 길도 기쁨이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울긋불긋한 삼베 배낭에다 약간의 귀중품만 가져왔을 뿐 돈은 거의 없었다. 니쥐니노브고로드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는데도 그녀는 이것을 전부 하급 장교에게 나눠주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세르게이 바로 옆에서 함께 길을 갈 수 있었고, 어두운 밤 숙소의 추운 복도 한구석에서 그를 껴안고 한 시간이라도 서 있을 수 있었다.           (P93)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기도문을 생각해 내려고 입술을 움직였으나 그녀의 입술은 전혀 다른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기나긴 가을밤을 함께 보냈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여서 저승으로 보내 버렸는지.’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몸서리를 쳤다.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더니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녀는 한두 차례 허공에 팔을 뻗었다가 다시 떨어뜨렸다. 1분이 지났다. 그녀는 갑자기 시커먼 파도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몸을 굽히더니, 소네트카의 다리를 잡고는 순식간에 그녀와 함께 뱃전 너머로 뛰쳐나갔다. 모두들 깜짝 놀라 돌처럼 굳어졌다.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파도 위로 나타났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네트카가 물 위로 떠올랐다. 

“갈고리! 갈고리를 던져!”

배 위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긴 밧줄에 묶인 묵직한 갈고리가 날아오르더니 물속으로 떨어졌다. 소네트카가 다시 사라졌다. 2초 후, 어느새 파도에 실려 배로부터 멀리 떠내려간 그녀가 다시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다른 파도 속에서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허리까지 물 위로 솟아오르더니, 마치 강한 꼬치고기가 지느러미가 연한 잉어를 덮치듯이 소네트카를 덮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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