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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일상 | 연애는 하고 싶은데 결혼생각이 없는데요

by 규민

일상 | 연애는 하고 싶은데 당장에 결혼생각이 없는 30살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죠.


“최대 몇 살 차이 정도가 괜찮아요?”

연애이야기가 나오면 흔히들 연상, 연하, 나이 차이는 몇 살 정도가 괜찮은지를 묻곤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차에 나름 과감한 편이었다. 29살의 나는 적어도 33살이기를 바랐고, 조금 위여도 상관없다 주의였다. 그래서 언제나 다섯, 여섯을 외쳤다. 30이 되자 달라졌다. 앞자리가 바뀌었을 뿐인데, 똑같은 질문에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산수를 해야 했다.

“아. 적어도 셋,,, 넷,, 정도일까나요.”

몇 번의 덧셈뺄셈을 반복한 끝에 머뭇거리며 대답한 숫자는 ‘3과 4‘. 사실 이마저도 괜찮은 숫자인지 자신이 없다.


20대 중반, 지루한 첫 연애가 끝난 후 내 연애는 멈췄다. 헤어진 후 바로 취업준비를 시작하며 연애를 시작할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내 삶을 꾸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요가, 일본어,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일상의 빈틈을 메우고 나니 연애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고, 오히려 혼자라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자연스럽게 연애나 인연에 그다지 급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연애 1회 차, 썸 n회차의 경력으로 30대에 접어들었다.


올해 회사에 눈길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 4살 차이, 180이 넘는 키에 하얀 얼굴, 전형적인 소금상. 조용한 성격에 목소리도 작은 편이라 같은 사무실임에도 좀처럼 목소리가 들리는 일이 없었다. 다른 팀인지라 그다지 부딪힐 일이 없어 오가며 인사를 하던 게 전부였던 게, 어쩌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며 가끔 한두 마디 정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의외로 말수가 많았고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장난기도 있어, 종종 나를 놀리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당신에게 조금의 호기심이 생겼듯, 당신도 나에게 호기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나의 모든 고민은 여기서 시작한다. ‘당장에 결혼 생각이 없다.’에서부터.

비혼주의는 아니다. 29살까지는 비혼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으나, 30살이 되어 조금씩 생각이 바뀐 것이 ‘결혼은 언젠가 하겠지만, 적어도 3-4년 후.’이다. 어찌 됐든 당장에는 결혼 생각이 없다. 그런 내가 괜히 호감을 표현해도 괜찮은 것일까. 좋은 관계로 발전된다고 한들, 헤어지면 내가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관계에서 결혼과 헤어짐을 생각한다는 게 너무 이르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30살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인생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타이밍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타이밍은 서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보낸 시간이 그 사람의 인생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어찌 됐든 30살과 34살은 궁합도 안 보는 네 살 차이일 수도, 자칫 헤어지면 서로의 시간낭비일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 있는 중이다.


어쩌면 ‘결혼 생각이 없는’ 30살은 어중간한 나이일지도 모른다. 아래를 보자니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안 된 취준생이나 사초생, 위로 보자니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이에 껴 있는 철없는 30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다. 관계는 여전히 머물러있다. 가끔 사무실 정수기 앞에서 마주치면,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퇴근길에 사무실을 나가는 타이밍이 맞으면 계단을 내려가며 한 두 마디 오가는 사이. 괜히 한마디 더 물어보고 싶을 때면 멋쩍은 웃음과 손짓과 함께 어설프게 자리를 뜬다. 너무 앞서버린 생각들로, 몇 년 만에 생긴 작은 호감인지 모를 호기심을 어찌할 줄 모른 채 마음 한편에 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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