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입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는 내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후'하고 천천히 내뿜기를 몇 번했다. 느리고 길게 내쉬는 숨에 긴장감도 함께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아내의 경직된 얼굴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실 문턱을 넘는 그 짧은 순간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일 퇴원하시게 될 것 같아요"
"내일이요? 하루만에 퇴원해도 괜찮을까요?"
"보통 이런 경우 교수님께서는 수술 다음날 퇴원시키세요. 자세한 것은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에요."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이미 낸 이틀의 휴가에 덧붙여 하루 더 휴가를 신청하고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다.
10월 말, 아내가 정기적으로 다니며 검진을 했던 병원에서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 '유방암이에요.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 떠올랐던 불길한 생각은 의사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 말로 현실이 되었다. 나는 유방암 환우카페에 가입했고 유방암이 완치된 친한 지인에게 정보를 얻기도 했다. 연구 논문도 찾아보고 수기도 읽었다. 유방암의 타입이 4가지나 된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지금까지 몰랐던 여러 정보가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내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아내의 암은 호르몬양성 유방암이었다. 병기는 1기. 암의 공격성을 나타낸다고 하는 Ki-67지수는 5%로 낮았다. 정밀검사 결과 전이는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는 도중 왼쪽 유방에 생긴 암덩어리 주변과 오른쪽 유방에서 발견된 미세석회화까지, 의심스러운 여러 곳을 검사하여 암세포가 발견되면 양쪽 유방 모두 전절제를 해야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살짝 아내쪽으로 돌아갔다. 눈물이 아내의 눈에 고여있다. 의사는 수술은 이렇게 진행될 거라며 여성의 가슴이 프린팅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고 있었지만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동작이었을 뿐이었다. 간단한 설명 후 수술 날짜를 잡았다. 1월 7일이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대략 2개월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수술날까지 병의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 저것 찾아보다보면 무서운 생각이 스며들어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힘들어지진 않을지 걱정됐다. 아내에게 이제 그만 찾아보고 그만 생각하자고 했고 아내는 보고 있던 핸드폰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그래야지' 했다.
며칠 뒤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야할 일'을 검색했다. '아무도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해' 어느날 흘리듯 아내가 말한 것을 듣고 난 후였다. 한국유방암학회에서 발표한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야할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위한 지침]
묵묵히 들어줘라
유방암에 걸린 아내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토로할 때, 아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려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남편이 해야 할 유일한 말은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수 있어. 우리는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이다.
유방암 자가진단법을 익혀 진단을 도와줘라
유방암 수술 후 2-3년은 재발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되므로, 한 달에 한 번은 유방암 자가진단을 해야 한다. 아내의 자가진단을 돕는 일은 재발을 막을 뿐 아니라 남편의 관심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병원에 같이 가라
병원에 있는 동안 유방암에 걸린 아내는 평소보다 훨씬 더 불안해할 수 있다. 병원에 함께 방문하고 되도록 아내의 손을 잡아줘라.
부부관계를 기피하는 아내를 이해하되,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말라
아내가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질이 건조해질 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부부관계를 기피할 수 있으니 부부 관계를 강요해선 안 된다. 단, 아내는 가슴을 절제한 일로 남편이 자신에게 성적 매력을 잃었다고 오해하기 쉬우므로 아내가 여전히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충분히 사랑표현을 해라.
가사노동이나 자녀교육의 부담을 덜어줘라
유방암 치료과정 중에는 쉽게 피로해진다. 특히 임파선의 절제로 인해 팔이 저리고 아플 수 있다. 이런 경우 가사노동이나 자녀교육은 아내에게 매우 큰 짐이 되기도 한다.
아내를 안아주고 웃게 하라
포옹은 하나로 만든다. 아내를 안아주면 남편과 아내는 하나라는 느낌을 갖고, 항상 남편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만든다. 웃음은 치료과정의 스트레스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꽃을 선물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처: 한국유방암학회, 유방암백서(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