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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단편소설] 마나카 (2)

첫 번째 손님

by 이돌 Apr 03. 2025

집을 팔고 평수를 줄여 전세로 가며 돈을 마련했다. 거기에 퇴직금을 더해 카페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집을 찾아 계약했다. 집을 리모델링하여 제법 그럴싸하게 꾸몄다.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방문 예약 시에는 닉네임, 방문시간, 역할, 좌석번호를 정하도록 했다. 예약자는 다른 사람의 예약 정보를 확인하여 대화상대를 지정할 수도 있었다. 영업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도 손님이 없었다. 가끔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곳은 '마음을 나누는 카페'여서 예약제로만 운영된다고 설명하며 돌려보냈다.  개업한지 일주일째 되던 날 드디어 두 건의 방문 예약이  잡혔다.       


닉네임: 무인76, 방문시간: 9월 27일 15:00~16:00 , 역할: 말하는 사람, 좌석번호: 3-1  

닉네임: 비온뒤맑음, 방문시간: 9월 27일 19:00~20:00, 역할: 말하는 사람, 좌석번호: 2-1     


두 명의 예약자 모두 말하는 사람의 역할을 선택했다. 상대 역할이 나타나지 않아 예약 취소 안내 문자를 보내야 했지만 첫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두 사람의 상대 역할을 하기로 했다. 나는 첫 손님을 맞기 위해 눈만 가리는 반가면을 쓴 채 파란색 의자에 앉았다. 이내 손님이 카페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남성이 어색한 듯 인사했다.      


“이런 곳은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음료 주문하시겠어요?” 아르바이트 학생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와 물었다.      


“전 이거 주세요” 메뉴판에서 맥주를 고른 남자가 말했다.      


“같은 걸로 주세요”  남자가 주문한 음료를 선택하며 말했다.      


남자는 주문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다시 잔을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남자가 속마음을 잘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부적응자였죠” 나는 불쑥 말했다.      


남자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한 말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든 듯했다.      


“힘드셨겠군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남자가 말했다.      


“늘 그럴듯하게 저를 꾸미려 했죠. 승진에서 밀려도 괜찮은 척, 내 의견이 묵살돼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관심 없는 척, 논리적인 척, 아는 척, 착한 척, 좋은 선배인 척..... 그곳에 진짜 나는 없었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내 속마음을 애써 피해왔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 새겨진 흉측한 상처가 보기 싫어 일부러 외면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와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전 일식집 요리사예요. 생선회를 뜨고 초밥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죠” 남자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제가 준비한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했어요. 어느 날 한 여자 손님이 혼자 오셨어요. 초밥을 주문하셨죠. 그리곤 얼마 뒤 그 손님은 다 드셨는지 조용히 나가셨어요. 테이블을 보니 주문한 음식 대부분이 남아 있더군요. 그리고 앞접시에는 먹다 뱉어 놓은 초밥이 있었어요. 상했나 싶어 먹어봤는데 평소 제가 만든 초밥과 똑같은 맛이었죠.” 남자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때부터 손님들의 표정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어쩌다가 미간이라도 찡그린 분을 보면 내가 만든 음식 탓인 거 같아 불안했죠.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저희 가게에 대한 평을 보게 됐어요. 늘 사람들이 많은 초밥집이라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밥알들이 입안에서 따로 놀았고 신선하지 않은 생선의 비릿함마저 감돌아 큰 실망을 했다고 하더군요.”      


나는 남자가 별것 아닌 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전 그때 음식을 뱉어 놓고 갔던 여자가 그 평을 쓴 사람이라고 확신해요. 그 여자 아니면 누가 그렇게 쓰겠어요? 그런데 그 여자가 얼마 뒤 다시 제 가게를 찾아왔어요. 초밥을 또 주문하더군요. 정성껏 만들었어요. 복어 내장을 갈아 넣은 초밥도 특별히 넣었죠. 물론 복어 내장은 신경 써서 아주 조금만 넣었어요. 복어독은 극소량도 치명적이거든요. 가벼운 복통 정도면 그 여자에겐 충분한 대가니깐요. 아쉽게도 여자는 그 초밥을 먹지 않고 남겼더군요.” 남자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는 얼어붙은 듯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누군가를 해치려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놀라셨나 보군요.” 남자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복어 내장을 갈아 넣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 그러고 싶을 정도로 그 여자 때문에 힘들었어요. 손님들의 표정이 조금만 이상해도 그 여자의 글을 보고 저에 대해 수군대는 것 같았거든요. 불안이 제 심장을 꽉 움켜쥐고 쥐락펴락 하는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날도 있었어요 ”      


나는 남자의 말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대화를 끝낼 때가 되었다.      


“시간이 다 됐네요” 나는 최대한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게요.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나는 남자가 떠난 이후로도 한참을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저녁 시간에 방문하기로 한 예약 손님에게 연락을 해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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