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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단편소설] 마나카 (4)

그 여자

by 이돌 Apr 03. 2025

다음 날 점심, 나는 그의 가게로 찾아갔다. 하얀 바탕에 검은색으로 무인스시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있는 간판이 멀리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어서 오세요” 내가 들어가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점심 특선 주세요”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그는 정성스레 초밥을 만들어 접시 위에 담아내었다. 초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밥은 적당하게 간이 배었고 회에서는 활어 특유의 쫀득쫀득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초밥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내가 먹어본 초밥 중에 단연 최고였다.      


“우리 가게에 처음 오신 분이시네요. 저희 가게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처음 온 손님은 금방 알 수 있답니다. 맛은 어떠세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마치 힘든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였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데요”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웃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카페에서 봤던 우울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가게를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은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휴일인가 보다 했다. 며칠 뒤에도 여전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스산함이 감돌았다. 나는 옆집 문구점에 가서 볼펜 한 자루를 사며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옆에 스시가게 문 닫았어요?”     


“거기 사장 죽었어요. 복어 독을 먹고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그날 구급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가슴이 덜컥하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그분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야 모르지. 몇 번 가서 먹어봤는데 음식은 괜찮았어요. 장사도 잘 됐고. 요즘 들어 손님이 줄어든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말이야. 사람도 항상 밝아 보였는데. 그 사람이 그럴 줄 누가 알았겠나? 정말 모를 일이라니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쌀쌀한 겨울바람은 얼굴을 매섭게 할퀴며 지나갔고 길가에는 흐린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나무들이 솟아 있었다. 그의 죽음의 이유를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가 너무 불쌍해졌다. 매서운 바람에 눈이 시려서인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느덧 봄이 됐다. 가게는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댔다.           


*****

닉네임: 구름, 방문시간 4월 15일 18:00~19:00, 역할: 말하는 사람, 좌석번호: 6-2         

구름. 짝이 없는 예약자였다. 예약자의 대부분이 커플이었기 때문에 흔치 않은 경우였다. 예약 취소 안내 문자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발송 오류가 계속 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상대 역할을 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에 앉으면 될까요?” 여자였다.      


“6-2번 좌석을 예약하신 분이면 그 자리가 맞아요. 제 자리가 6-1번 이거든요”     

여자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조용히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긴장하신 것 같네요?”      


“아. 네. 홈페이지를 보고 덜컥 예약은 했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어색한 듯 양손으로 무릎을 비비며 말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저는 주부예요. 일을 하다 결혼하고 나서는 관뒀죠.”     


“결혼 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0년 조금 넘었어요.”     


“아이는요?”     

여자는 대답을 바로 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아이는..., 없어요”     

나는 여자가 대답하는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들어주는 사람의 역할을 제법 오래 하다 보니 질문을 해야 할 때와 그냥 기다려야 할 때에 대한 직감 비슷한 것이 생겼다. 여자는 아마도 아이에 대해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럴 땐 질문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 좋았다.     


“그렇군요.” 나는 짧게 대답하고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남편은 나이가 많고 외아들이에요. 결혼한 지 오래되기도 해서 우리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어요. 그런데 임신을 했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시부모님은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하셨어요. 태명도 기쁨이라 짓고.”     

행복해야 할 것만 같은 여자의 표정은 말하는 내내 어두웠다.      


“그런데 얼마 전 유산을 했어요. 잘 모르시겠지만 그 상실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게다가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정신 나간 모습으로 저를 위로하느라 애쓰던 남편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그 뒤로 남편과 저는 말수가 부쩍 줄었어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여자의 말에 집중했다.      


“남편은 조그마한 사업을 해요. 무척 다정한 사람이고요. 어느 날 남편의 휴대폰에서 어떤 여자의 메시지를 보게 됐어요. 그 여자는 저도 본 적이 있는 회사 직원이에요. 젊고 예뻤죠. 메시지는 저녁 감사하게 잘 먹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식사를 한 날이 마침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어요. 남편은 그날 회사에 일이 있다며 늦게 들어왔고요. 그 메시지를 본 후 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유산한 것이 제 잘못 같았고 그래서 남편이 혹시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걱정됐죠. 그런데...” 그녀는 잠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는지 손을 뻗어 물 잔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말을 이었다.      


“더욱 끔찍한 일은 남편이 실제로 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에요. 남편은 제가 모르는 줄 알고 있죠.”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나는 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든 걷어내고 싶어 화제를 돌렸다.      


“힘든 때일수록 잘 드시면서 건강 관리 하셔야 해요. 좋아하는 음식은 있으세요?”     


“전 결혼 전부터 초밥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어느 날 맛있다고 소문난 초밥집을 가게 됐는데 그날따라 속이 안 좋아 많이 남겼어요. 생선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까지 했고요. 생각해 보니 블로그에 음식 평을 남기기도 했네요. 어쨌든 며칠 후 다시 그 집을 갔었죠. 다들 맛있다는데 제 입맛이 이상한가 해서요. 여전히 못 먹겠더군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죠.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임신이었어요.”     

나는 여자의 말에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듯했다.      


“임신 때문에 입맛이 이상했던 거예요. 유산을 하고 한참 지나 그 집을 다시 찾아갔어요. 그런데 요리사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복어독으로요.”      


멈췄던 심장 고동이 이제는 너무 세차 가슴을 때리는 듯 느껴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아~” 가까스로 입을 떼 겨우 한 말이었다.     


“그 남자는 무슨 이유로 자기 삶을 포기했을까요?”      

여자는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고, 이내 다른 얘기를 했다. 대화가 끝나고 그녀는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며 고맙다 했다. 돌아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 남자, 무인76이 그녀를 지나쳐 가게로 들어오는 듯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는 카페를 찾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카페를 개업한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아내에게 회사를 관두며 변명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입도 많아지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거라 했고 출퇴근이 자유로우니 가사를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모든 것이 말한 대로 이뤄졌고 앞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마나카에 대해 쓴 글을 보게 됐다.   


 요즘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음을 나누는 카페를 여자 친구와 갔는데 약간은 어두운 조명에 테이블마다 가면을 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조금 기괴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희는 그런 분위기가 대화에 방해가 되더군요. 서로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얼굴을 가려야만 대화가 될까요?          

그 밑으로 몇 개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댓글 1: 저희도 침침한 분위기가 싫어서 다시는 방문하지 않으려고요
댓글 2: 저희 오빠는 듣는 사람 역할이었는데 정말 싫었데요. 재방문은 어려울 것 같아요
댓글 3: 저하고 제 여자 친구는 나름 신선한 경험을 한 듯해서 좋았어요
댓글 4: 가보진 않았는데 말만 들어도 괴상한 카페네요. ㅋㅋ     


불현듯 스스로 삶을 포기한 무인76, 그가 떠올랐다. '사업 실패로 나와 가족의 삶이 망가지면 어쩌지?' 늘 그랬듯 불안은, 한 순간에 나의 뇌를 점령했고 온몸은 마치 두껍고 질긴 밧줄에 결박당한 듯 경직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무인76,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떤 일도 당신이 생각한 그대로 일어나지 않아요. 불확실한 미래로 현재의 자신을 학대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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