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존재 이유,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와 바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 질문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을 물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실은 아직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중이다. 아마 삶의 전 과정이 이 답을 찾아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삶의 의미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삶의 무의미함’에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고통은 ‘삶이 과연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을 멈추자 서서히 잊혔다. 그리고 현재 여기, 살아가는 시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순서를 바꾸어 원인이 아닌 결론을 향해 방향타를 설정했다. 먼저 가치를 세우고 그 위에 행위를 거듭하자 내 삶은 그 경험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의 핵심가치는 희망, 믿음, 용기, 성장, 사랑, 기쁨이다. ‘사랑’이라는 핵심가치는 희망, 믿음, 용기, 성장의 근원이 된다.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이것들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기쁨으로 나타난다. 내게 ‘기쁨’이라는 가치는 ‘생생한 살아있는 느낌’이다. 내 경험에서 나온 나만의 레시피이다.
‘희망’을 핵심가치로 가진다는 말은 어떠한 가능성도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절망적인 순간에도 체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라고 시도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 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의 닉네임 ‘춤추는 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보면 내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서 가져왔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카오스를 품어야 한다
나는 춤추는 별이 되려고 한다. 이끌림의 욕구가 아니라, 선택을 거친 의지의 표현이다.
내가 생각하는 춤추는 별은 자아를 초월하고 세상을 이긴 완전한 자유인을 의미한다. 마음 걸음 가볍게 춤추듯 살고 싶다. 우선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중력은 삶의 오욕칠정이다. 중력을 이겨낸다는 것은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한다. 내 것이 아닌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상태,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자유’이다.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한 선행요건이 있다. 내면에 ‘카오스’를 품어야 한다. 이 ‘카오스’가 걷어내야만 하는 부정적 요소가 아님을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은 이 카오스를 없애고 평온한 고정판에 자리 잡고자 기를 섰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어느 경지의 평온함을 추구하다 보니 매 순간이 카오스였다. 근데, 미래의 어느 지점에 있을 안온을 움켜잡고자 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니 매 순간이 춤추는 별처럼 빛나고 자유로워졌다.
카오스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사이의 공간’이고, ‘사이의 시간’이다. 기꺼이 내면에 카오스를 품고자 하니 담대해지기도 한다. 나의 하루하루는 카오스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행동으로 이어져 있다. 폭풍의 눈처럼 오히려 고요한 카오스의 중심에 다가가기. 매 순간 깨어서 중심 잡기.
이런 나날의 경험이 쌓이면 어느 날, 나는 반드시 眞我와 조우하고 나의 근원과 연결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