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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17. 2023

2022년 5월 30일

암환자가 된 지 1년이 다 되어서야 나는 키보드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인이 박일만큼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2022년 5월 30일을 기점으로 내가 진단받은 '암'에 대한 글은 쉬이 써지지 않았다. 


지금도 내 몸의 모든 털들 끝에서 진동이 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이잉... 지이잉....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 이 감각에서 익숙해질 수 있을까. 


그게 딱히 '슬픔'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다. 왜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자꾸만 눈가가 촉촉해졌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는 건 간략한 감정이나 단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혼자 있을 때는 종종 눈물이 났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장군처럼 씩씩하게 굴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중증이 아니어서 다행인 것처럼. 진짜 다행스러워하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왜 나라고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건 터지면 막을 길 없는 저수지 둑에 등을 막고 선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몸을 돌려 마음의 수심을 들여다볼라치면 물길이 홍수처럼 터져버릴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온몸이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씩씩한 척 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2022년 5월 30일은, 서울 병원으로 옮긴 후 두 번째로 가는 날이었다. 병원에 첫 타임으로 도착해 악성종양을 진단하는 펫시티(PET-CT)를 찍고 오후에 결과를 듣는 일정이었다. 


새벽 일찍 엄마가 집에 와줘서 아이들을 봐주셨다. 집에서 나서기 전, 기도를 하면서도 엄마는 울었다. 엄마는 늘 원래 잘 우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감정에 동요되어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어서 빨리 결과를 듣고 깔깔거리며 "거봐~ 별 거 아니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워낙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대기순서 1번으로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펫시티는 당을 좋아하는 암의 성질을 이용해 포도당 유사체와 방사능을 몸 안에 주사해 영상을 찍는 방식이었다. 그럼 암이 있는 부위만 까맣게 표시가 되어 보인다고 설명해 주었다. 


전날부터 금식을 한 탓에 식욕이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는 효과는 볼 수 있었다. 빨리 찍고 나가 근처 식당에서 최대한 맛있는 메뉴를 골라 먹을 생각 밖에는 머릿속에 없었다. 배부르고 커피까지 한 잔 때리고 나니 세상이 다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대로 아무 이상 없다는 답변만 듣고 집으로 내려가면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후 2시 즈음,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의사 앞의 모니터 옆에 몸을 바짝 붙여 앉았다. 모니터에 일반인의 깨끗한 몸과 내 몸 안의 영상을 비교해 보여주었다. 


복부 부근에 동글동글한 것 세 개가 보였다. 몇 가지 증상에 대해 묻더니 모니터에 펫시티 결과 영상을 띄우며 의사가 말했다. 


"림프종인 것으로 결과가 나왔고, 그중에서도 소포성 림프종 2기에 해당합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몸 안에서 '쿵'소리가 울리며 심장이 발 끝까지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발바닥을 들면 떨어진 심장을 주울 수 있을 것만큼, 생생한 느낌이었다. 그 뒤의 설명은 부분 부분만 기억이 난다.


속도가 느린 암이지만 재발률이 높다. 지금 항암으로 죽여놓더라도 몇 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높다. 추적관찰을 하다 상태가 나빠진 후에 항암을 하는 것과 생존율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제라도 암이 속도를 바꿔 크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 상태로 더 나빠지지 않은 채 평생을 갈 수도 있다. 환자가 원하고 증상이 눈에 띄면 항암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추적을 더 추천하는 바다. 


어찌어찌 설명을 마저 듣고, 복도로 나왔다. 가슴 깊은 곳이 울컥울컥 했지만 목구멍 위로 올려 보내지 않았다. 나로서도 믿기지 않는 기분이 컸던 것 같다. 그저 조금 멍- 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가 가장 난감했다. 이제는 나의 세상이 아이들인 것처럼, 엄마의 세상인 나에게 생긴 이 균열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전, 인터넷에서 찾아본 짧은 지식으로 내 병명의 긍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상세히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어쨌든 암이라는 거잖아....."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할 위로도, 낼 기운도 모두 증발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은 이 정도가 다다. 슬픔도 체감되지 않고 얼떨떨하기만 했다. 


사람이 길을 걷다 넘어지거나 차에 치이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런 것과 비슷한 현상 같았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보다 멍-한 기분이 전부였다. 슬픔은 나중에서야 천천히, 큰 파도처럼 밀려와 부딪혔다. 멀쩡히 잘 살다가도 그런 날에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어느 해 5월 말. 앞으로도 두고두고 나 혼자만 곱씹어볼 그때의 내 모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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