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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사 가기 싫어

기특아, 엄마도.....

by 환오 Mar 07. 2025


몇 달 전 집을 전세로 내놨는데 최근에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다시 거둬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임자가 나타나 버렸다.     


아.. 집이 나갈 때가 진짜 예고 없이 나가는구나.     


우리 이름으로 된 생애 첫 집.

이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은 소위 셀프인테리어로 돈을 아끼려는 명분하에 직접 ‘작업반장’ 역할을 맡으면서 담긴 눈물겨운 고생 때문이었다.

각각 업체마다(필름, 조명, 주방문짝 등등) 작업 날짜를 조율하는 일부터 업체끼리 부딪쳐 일이 진행이 안될 때도 내가 모든 상황을 컨트롤해야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아래층 주민들한테 사전허락까지 받으러 다니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당시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라 모르는 사람이 벨을 누른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컸겠지만 공사 때문에 사인을 해달라니 이웃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터. (한 층 당 4개 세대라서 위층, 아래층, 우리 층까지 총 11집을 방문해야 했다)

바닥철거나 화장실 공사처럼 귀를 때리는 소음공사는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마스크를 선물로 내밀면서 집집마다 인사를 드렸다.     


아, 갑자기 눈물 한 모금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느 집에서 젊은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문을 열여 줬는데 얼굴을 찡그린 채 또 공사냐며(아마 비슷한 시기에 다른 층에서 공사를 한 듯) 지금 부모님 안 계시니(부모님 찾을 나인 아닌데 네가 해주면 안 되겠니?) 저녁 몇 시까지 오란다.      


중간에 3시간 정도 붕 뜨는 시간을 빈집에서 나는 무얼 할 것인가.

나는 저녁도 못 먹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빈집에서 우두커니 3시간 동안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오라는 시간에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번이나 벨을 눌렀지만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아,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 힘드시겠다....

세상에는 역시 쉬운 일이 한 개도 없구나.     


인테리어 하는 3주 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시는 셀프로 안 해! 그냥 통으로 맡기지 하며 투덜댔던 시간들도 이젠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다.

우리 집에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오니 이제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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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겨운 셀프인테리어. 다시는 안하고 싶.....





기특이한테 왜 우리 집에 낯선 사람들이 와서 집을 보는지 설명해줘야 했다.     

“기특아, 우리 이제 이사 갈 거야.”

“응? 왜? 엄마 나 우리 집 좋은데? 왜 이사가?”

“엄마가 작년에 허리 아파서 119 부르고 병원에 입원했었잖아. 엄마가 청소하는 게 좀 버거워  평수를 줄여야 해. 그래야 엄마가 덜 힘들어.”

“엄마! 내가 그럼 도와줄게! 청소도 하고!”

“고마운데 우리 집이 나가서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할거 같아..”

“아.. 나 이사 가기 싫은데... 우리 집이 좋은데...”     


‘엄마도 사실 이사 가기 싫어.’

내 허리 핑계를 댔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지금 경제사정이 어려워서이다.

이 집에 살기에는 맞지 않는 수입.

그걸 아이한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4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잘 나가던 대기업 과장이던 남편은 이사한 지 4개월 만에 회사에 사표를 던져버렸다.

남편이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겠다고 도전했던 일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집이라도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에 정이 듬뿍 들어버린 기특이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수시로 집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왜 우리 이사가? 나 이사 가기 싫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질문.

허리 핑계를 대며 몇 번씩 반복되는 대답.     


“엄마 이사 안 가면 안 돼? 나 여기가 좋단 말이야! 나 이사 안 갈 거야!”     


기특이는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런 내 아이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나는,

인내심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아이한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해! 우리 이사 갈 수밖에 없다고 엄마가 말했잖아!”

“...... 알았어. 미안해!!!!”     

기특이도 민망한지 씩씩대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사실 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야, 기특아.

엄마한테 화가 났어.

우리 집을 못 지키는 엄마의 무능함에 화가 나서 엄마한테 소리를 지른 거였어.

그런데 네 마음을 또 다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한번 화를 냈다고 해서 기특이가 다시는 이사 문제를 꺼내지 않지는 않음을. 

분명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혼난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물어볼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화내지 말아야 한다.

다시 아이에게 설명해 주고 설득이 안되더라도 해야 한다.     

화가 난 원인이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내 화가 아이한테 꽂히는 것은 육아 중에 최악의 상황이다.

그것만은 하지 말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사실은 나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시켜야 한다.

오은영 박사가 알려준 대로 화가 날 때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되니 터지기 전에 주방 가서 물을 마시자!!(이건 엄마들에게 꿀팁입니다. 터뜨리기 전에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면 속이 정말 내려갑니다.)     


기특아, 새로 이사 가는 집이 네 마음에 들지 혹시 아니?

그 집에서도 또 예쁜 추억 가득 만들면 되니까 미리 걱정하지 말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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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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