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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네월아가 시작됐습니다.

개학은 했지만 다시 전쟁 돌입.

by 환오 Mar 14. 2025

두 달간의 긴 방학을 끝으로 새 학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2주 차다.

기특이는 4학년부터 특수교육지원대상자에서 제외가 돼서 나라에서 받는 바우처 혜택이 끊어짐과 동시에 느린 학습자라는 공적인 타이틀도 지워졌다.

그 말은 달리 표현하면 이제는 더 이상 학교에서는 기특이를 느린 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이가 느려도 그것은 집에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더 가중되었다.

    

아침마다 기특이를 등교시키는 것도 큰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 중에 하나이다.

가장 킹 받는 순간은 입을 옷도 꺼내주었는데 둘째 밥을 챙겨주는 동안 다 입었나 쳐다보면

여전히 상의 한번 입고 바깥 창문을 쳐다본다.

바지 한번 입는데도 세월아 네월아다.


순간 야! 소리가 나올뻔했는데 이미 이 순간을 무수히 경험한 터라 목구녕 뒤로 소리는 삼킨다.     

기특아~ 뭐 해? 옷 입어야지~

부드럽게 아이를 채근한다.(휴, 잘했어 환오야!)

느린 아이지만 눈치는 빠르다.

내 목소리 데시벨이 조금만 달라져도 자기한테 어떤 뉘앙스로 말하는지 다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 표정이 좋지 않다.

이럴 땐 남편보다 내가 앞서 기특이를 챙겨줘야 아침부터 큰소리가 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렇게 옷 입고 가방 메고 신발장까지 한 세월이 걸리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남아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신발 하나를 신어도, 찍찍이 하나를 붙이는 것도 오래 걸리는 아이.

참아줘야 한다. 


기특이가 느린 거북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아침시간은 전쟁이라고 했다.

9시 등교지만 8시 20분에는 아이를 내보낸다.

그래야 넉넉하게 지각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다.

매일이 전쟁 같은 등교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문밖을 나서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놈 치웠다.’ 소리가 나온다.    

 



기특이를 붙잡고 일일학습지를 풀게 하는 일도 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답안지를 맞춰 틀린 문제를 다시 푸는 것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 수가 있다.

물론 정해진 숙제를 다 못하는 날도 가끔 있다.

내가 너무 피곤할 때, 내가 갑자기 아플 때.

그러니까 내가 문제다.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나만 안 아프면 기특이는 하루 공부 분량을 채울 수가 있다.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복통과 고열로 일요일 하루 종일 누워있던 적이 있었다.

그날 기특이는 내 어깨를 주무르고 엄마 아파서 어떡하냐며 자기가 집안일을 하겠다고 내가 시키는 일들을 곧잘 해냈다.(이럴 때 진짜 남편보다 백배 낫다.)     


요즘 기특이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엄마 마사지 해줄까?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피곤하다 힘들다 소리를 많이 했는지 틈만 나면 어깨도 조물조물, 허리도 조물조물.

허리는 작년에 디스크 찢어지고 입원한 뒤로 항상 아픈지 아나보다. 사실 지금은 괜찮은데.

자기 딴에는 안마해 준다고 하지만 간지럽기만 하다.

괜찮다고 엄마 진짜 괜찮다고(나는 간지럼을 못 견디는 사람이다. 어릴 때 오빠가 장난을 치면 웃다가 울어서 싸움이 났다) 해도 기특이의 조물조물은 계속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만하라고! 소리를 버럭 지를 만도 하지만 역시 자식은 어쩔 도리가 없다.

눈 딱 감고 간지러움을 참아내는 내가 기특이 보다 기특하다.     




어제는 학습지를 풀다가 기특이의 오답에 나는 그 자리에 꺽꺽 거리며 눈물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마사지해줄까 라는 말이 높임말이라고 생각한 기특이가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그래도 끝에 –요자는 붙었으니 반은 맞았다.

가끔 이렇게 웃으면서 숙제하는 날도 있으니 기특이랑 하는 공부가 마냥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냥 그날 할 일 하면 되는 거다.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자식이 잘하면 ‘내가 운이 좋구나’ 감사하면 그만이다.

자식이 못하면 ‘내가 더 도와줘야지’ 결심하면 그만이다.

자식 잘난 것 대부분 부모 덕이 아니다.

자식 못난 것도 부모 탓인 경우는 드물다.

잘난 체도 말고, 주눅 들지도 말자.

아이도 부모도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이다. (주 1)     



주 1>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서천석 / (주)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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