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 알려주는 바닷길

by 아마도난

“자식에게 재산을 한 푼도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무서워서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통적 미덕으로 여겨지던 효(孝)가 퇴조하면서 생겨난 은퇴자의 자조 섞인 푸념이다. 충과 효를 최고의 선으로 삼던 우리나라에는 효녀 지은의 이야기와 같은 미담이 많이 전해 온다. 그 가운데 으뜸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이야기」가 아닐까?

지은(知恩)은 통일신라시대 사람으로 자기를 부잣집에 종으로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했다는 효녀로 『삼국사기』 열전(列傳)과 『삼국유사』 효선(孝善)에 나온다.

그렇다면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는 어디일까? 옹진군 백령도와 황해도 장산곶 사이의 바다라고 한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심청이 백령도 인근의 ‘인당수’라고 불리는 험난한 바다에 몸을 던졌고, 심청이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인간 세계로 돌아온 곳인 ‘연봉바위’가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인당수’가 전라북도 부안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부안군의 변산반도와 위도 사이 임수도 해역은 물살이 거칠어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1993년 거친 파도에 휩쓸려 서해훼리호가 좌초된 곳도 바로 임수도 해역이다. 바로 이 임수도가 ‘인당수’라는 것이다. 이 지역에 전해오는 심청 이야기를 살펴보자.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을 받고 남경 상인에게 몸을 팔았다. 송정마을을 떠나 섬진강을 따라 승주 낙안포에 도착한 뒤 큰 배로 갈아타고 부안 위도의 임수도 해역에 몸을 던졌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는 흥미로운 유적이 있다. ‘죽막동 제사 터’다. 1992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된 곳이다. 발굴된 유물들은 백제, 가야, 왜는 물론 중국의 토기들로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폐기하거나 파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유물들로 인해 이 일대가 한반도에서 중국 저장성 및 푸젠 성을 오가는 주요 뱃길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부안 죽막동 제사 복원그림

심청이 거친 파도를 잠재우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바다에 바쳐진 인신공양(人身供養)의 제물이었다는 것은 ‘효녀’라는 단어에 가려 종종 잊히곤 한다. 1984년에는 임수도 근처에서, 1990년 중반에는 위도 근처에서 여러 개의 석인상(石人像)이 발견됐다. 뱃사람들이 말하는 ‘대신(代身) 맥이’로 산 사람 대신 석인상을 바다에 제물로 던졌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대신 맥이는 재앙을 막기 위해 굿을 하고 인신공양 대신 올린 제물을 말한다. 임수도 해역의 물살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안전한 항해를 위해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석인상이 더 이상의 심청이 나오지 않도록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심청의 고향이라는 전라남도 곡성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전해 올까?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조선 영조 5년 (1729년) 옥과현(現, 곡성군 옥과면) 관음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성덕산 관음사 사적기」가 있다. 『심청전』의 원형이라고 알려진 ‘원홍장’과 관련된 이야기다.


맹인 원량은 일찍이 처를 잃고 홍장이라는 딸과 살았다. 홍장은 홀아버지를 정성으로 모셔 효심이 바다 건너 중국까지 소문이 났다. 어느 날 홍법사 성공 스님이 부처님의 계시라며 시주를 간청하자 논밭 한 뙈기 없던 원량이 이를 수락하고 시주로 홍장을 딸려 보냈다. 성공 스님을 따라나선 홍장이 소랑포에서 쉬다 진나라 황제가 황후 간택을 위해 파견한 사신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사신들이 홍장의 용모를 살피고 나서 진나라 황후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자 홍장은 예물로 가져온 금은보화를 모두 스님께 드리게 하고, 사신들을 따라 진나라로 건너가 진나라 혜제의 황후가 되었다. 원량은 홍장과 이별한 뒤 눈물로 지새우다 눈을 뜨게 되어 95세까지 복을 누렸고, 성공 스님은 홍장에게 받은 예물로 큰 불사를 마쳤다.
황후가 된 홍장은 선정을 베풀고 덕을 행하였지만, 고국에 두고 온 부친을 잊지 못해 정성을 다해 관음상을 만들어 바다 건너 고향으로 보냈다. 석선에 실린 관음상은 거친 파도를 만나 표류하다 백제 분서왕 4년(서기 301년) 낙안포에 나온 성덕 처녀의 수중에 들어갔고 성덕 처녀는 그 관음상을 업고 고향인 옥과로 돌아와 관음사를 창건했다.


‘심청’이라는 이름이 ‘홍장’으로 바뀌었을 뿐 행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전」과 비슷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중국 저장성 앞 저우산(舟山) 군도의 푸퉈(普陀) 섬에도 「관음사 사적기」와 판에 박은 듯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 사실이다.


백제 사람 원홍장은 앞 못 보는 부친이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홍법사에 자신의 몸을 시주했다. 사찰 화주 성공 스님은 값진 보물을 두 척의 배에 가득 싣고 백제에 무역하러 온 저우산 군도 푸퉈섬의 부유한 상인 심국공에게 공양미 300 섬을 받고 홍장을 팔았다. 심국공은 푸퉈섬 근처의 험한 물길을 무사히 지나기 위한 제물로 쓰려고 홍장을 산 것이다. 다행히 물결이 험하지 않아 홍장을 제물로 쓰지 않고 진나라(西晉, 265~316년)에 데리고 온 다음 이름을 심청으로 고쳐주고 양녀로 삼았다. 그 뒤 심청은 진나라 혜제(재위 290~307)의 황후가 되었다.
서진 혜제의 황후로는 혜문황후 가씨와 혜헌황후 양씨가 있었고 후궁으로는 사씨가 있었다. 심청이 황후가 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상당히 구체적이다. 원홍장이 심청으로 바뀐 배경까지도 설명하고 있다.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려고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곡성이나 부안지역에서 중국 저장성으로 가는 뱃길은 진짜 있었을까? 서울 풍납토성에서 중국 서진 시대의 시유도기(施釉陶器)가 출토되면서 백제와 서진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해외 명품을 가지려고 북새통을 이루듯 3세기 백제의 왕족이나 귀족들도 서진의 시유도기를 앞다투어 장만한 것이다.

시유도기(施釉陶器)는 유약을 바른 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고려청자의 뿌리가 되었다.

전라도 지방에서도 교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 중국 사서의 하나인 『진서(晉書)』에는 마한 56국 가운데 영산강 유역에 있던 신미제국 등 20개국이 282년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진서(晉書)』 장화전 및 마한전 등에 277년부터 289년까지 진나라(서진)와 교류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곡성이나 중국 저우산군도에 전해오는 심청 이야기의 시대 배경과 일치한다. 한반도 서남부와 중국 저장성 사이에 활발한 교역이 있었다는 증거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이래서 고려 때 문신인 이규보도 『동국이상국집』에 ‘우리나라 변산지역 사람들과 중국 저장성 사람들의 풍습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라고 기록했나 보다.


푸퉈섬 앞바다에는 신라초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신라 상인들이 관음상을 싣고 가려다가 이 바위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물살이 몹시 거칠다고 한다. 성덕 처녀가 표류해 온 관음상을 등에 업고 관음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와도 맥이 닿는다. 이 일대는 장보고가 해상활동을 벌인 무대이기도 했다. 심청은 야만적인 인신공양의 희생양이었지만, 백제와 중국 사이에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왕래한 바닷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 이것이 꿈이냐. 이것이 생신가, 꿈과 생시 분별을 못 허것네. 어제까지도 내가 맹인이 되어 지팽이를 짚고 나서면 어데로 갈 줄을 아느냐, 올 줄을 알았느냐. 오늘부터는 새 세상이 되었으니, 지팽이 너도 고생 많이 하였구나. 이제는 너 갈 데로 잘 가거라….
(심청가 중 심봉사가 심황후 만나 좋아하는 대목)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통적 미덕인 효가 퇴조하고 있다. 한나라 시대에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도입하면 퇴조하는 효가 다시 살아날까? 저우산 섬에는 심청이 주인인 한국식 정원 ‘심원(沈院)’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2007년에 지었다고 한다. 효녀 심청이 팔려 갔던, 장보고가 주름잡았던 바닷길을 따라 심원을 방문하여 오늘날의 효는 어떤 것인지 되새겨보면 어떨까?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는 한나라 시대의 관리임용제도로 지방관이나 지방의 유력자가 유교적 도덕규범, 특히 효를 기준으로 관내의 우수 인재를 추천했다.

(월간 수필문학 2021. 9월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