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황제의 신표(信標)

by 아마도난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는 ‘천황가의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이소노카미신궁이 있고, 신궁 안 금족지(禁足地)에는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신기한 창이 모셔져 있는 보물상자가 있다. 이 상자는 여는 사람에게 저주가 내린다는 전설 때문에 1,500여 년간 봉인돼 있다가 1873년 대궁사(신궁을 지키는 우두머리) 간 마사토모에 의해 비로소 열렸다. 칠지도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칠지도의 몸체에는 좌·우에 어긋나게 3가닥의 가지가 있고, 금상감(金象嵌) 기법으로 글자 61자(앞면 34자, 뒷면 27자)가 새겨있다. 일본은 칠지도를 광개토대왕비와 함께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쪽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광개토대왕 비문처럼 칠지도의 글자 일부도 일본에 유리하게 조작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소노카미 신궁

칠지도를 직접 조사한 후쿠야마 토시오(福山敏男)는 ‘여러 자에서 후에 어떤 사람이 刺傷을 입힌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스러운 상태이다’라고 보고했고 역시 칠지도를 조사한 가야모토 도진(榧本杜人)도 ‘五月六日의 五와 六에도 고의로 흠을 내었다’라고 보고했다.



이처럼 조작을 의심받고 있는 칠지도의 앞면과 뒷면의 글자는 다음과 같다. ‘○’는 아직 판독되지 않은 글자이다.


泰○四年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鋼 七支刀 ○辟百兵宜供供侯王 ○○○○作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태○년 5월 16일 병오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므로 마땅히 후왕에게 준다. ○○○○만들다.

지금까지 이처럼 좋은 칼은 없었다. 백제 왕세자 기생 성음이 왜왕 지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비록 일부 글자가 불분명하다고는 해도 ‘왜왕 지를 위하여 만들었으니(爲倭王旨造)’라는 표현이나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여야 할 것이다(傳示後世)’라는 표현에서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하사했다고 하는 해석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供供侯王’은 후왕, 즉 제후에게 준다는 표현이니 백제왕은 황제, 왜왕은 제후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칠지도의 명문 어디에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가 있을까?


일본이 주목한 것은 칠지도 제작연대인 ‘泰○四年(태○4년)~’이다. ‘泰○’는 황제의 연호인데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면 제작연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 동진 시대 명문 유물 중 ‘泰’ 자가 ‘太’ 자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泰○’로 시작되는 명문은 ‘태화(太和) 4년’이라고 우긴다. ‘태화(太和)’는 동진 해서공(재위 365~371)의 연호다.


일본은 왜 ‘태화(太和) 4년’에 그토록 집착할까? 『일본서기』에 진구 왕후(재위 201~269)가 한반도 남부를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를 만들었고, 백제는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증표로 칠지도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太和 4년’은 이주갑 인상(二周甲引上)을 적용하면 진구 왕후 49년과 같은 해인 서기 369년이다. 백제가 칠지도를 369년에 제작하여 372년에 일본에 헌상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泰○四年’이 ‘太和 4년’과 같은 뜻이라면 『일본서기』의 신빙성 논란을 잠재우고, 실존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은 진구 왕후의 존재도 명확해진다. 나아가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의 주장도 힘을 얻게 된다.


진구 왕후 46년 임나 지방의 탁순국에 파견됐던 시마노스쿠네는 백제가 통교를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부하를 파견했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백제와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 백제왕은 ‘늘 일본의 서쪽 번국으로 칭하고 춘추로 조공한다’라고 서약했다. 진구 왕후 52년 9월 백제 왕의 사자 구저가 일본에 대한 복속의 징표로 칠지도와 칠자경을 헌상했다.


논쟁의 핵심인 제작연도가 ‘泰○四年’이 확실할까? 1996년 무라야마(村山正雄)가 펴낸 『이소노카미신궁 칠지도 명문 도록』에는 1977년에 찍은 칠지도 상감 글자의 확대 사진과 1981년에 NHK가 촬영한 X-레이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사진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홍성화 교수와 박남수 연구원은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보다는 ‘奉元四年 十一月十六日 丙午正陽’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주장을 폈다. 봉원 4년은 백제 전지왕 4년으로 서기 408년이다. 奉元이 전지왕의 연호라는 것이다. 또한 태화(太和) 4년 5월 16일의 간지는 병오(丙午)가 아닌 을미(乙未)인데 봉원(奉元) 4년 11월 16일의 간지는 병오다. 봉원 4년으로 판독해야 문맥이 논리적으로 명쾌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는 황제를 칭하는 연호를 썼을까?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의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비롯하여 영강, 연수, 건흥, 연가 등의 연호를 썼다고 전해온다. 신라도 진흥왕의 대창(大昌)을 위시하여 건원, 개국, 홍제, 건복, 인평, 태화 등의 연호가 전해온다. 이로 미루어볼 때 백제도 연호를 사용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전지왕의 연호가 봉원(奉元)이라는 주장에 무리가 없는 것이다.


백제가 황제국을 칭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가 칠지도라는 주장도 있다. 칠지도는 고대 국가에서 달력의 역할을 했다는 명협(蓂莢, 曆草라고도 한다)이라는 풀과 모양이 흡사하다. 책력(冊曆)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고, 농사의 적기를 알려주는 것이어서 제왕(帝王)만이 갖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책력이 나오기 전에 달력의 역할을 한 것이 명협이었다. 명협에 대한 기록은 3세기에 중국 진나라 학자 황보 밀이 지은 『제왕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산동성 가상현의 ‘무씨 사당 화상석’에 명협의 모양이 새겨있다. 칠지도는 잎사귀가 여섯 개인 명협(一莖六穗)과 모양이 비슷해서 처음에는 육차도(六叉刀, 가지가 여섯 개인 검)라고 불렸다.


요임금 때 궁전 뜰에 풀이 났는데, 월초에 잎 하나가 나고 월반(月半)에 15개가 나더니, 16일에는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월말에는 모두 떨어졌다. … 왕자는 이를 통해 역(曆)을 살폈고 성덕(盛德)의 임금이 화기(和氣)에 응하면 생겨났으니 요임금 때의 상서(祥瑞)다. 이름을 명협이라 하는데 역협(曆莢) 또는 서초(瑞草)라고도 한다.

무씨사당 화상석과 칠지도

1935년, 일본의 불교 고고학 전문가인 이시다 모사쿠가 부여 군수리 사지(軍守里寺址)에서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보물 329호), 금동 미륵보살입상(보물 330호) 및 칠지도 등의 유물을 발굴하였다. 이 가운데 칠지도는 발굴했다는 기록만 있고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발굴이 칠지도가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이 아니고 백제 시대 전반에 걸쳐 제작되고 활용된 신물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황제국인 백제가 제후국인 일본에 하사한 신표였을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군수리사지 가람배치와 출토유물

일본은 신빙성을 의심받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근거로 실존 여부도 불투명한 진구 왕후가 삼한을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칠지도가 그 증거란다. 참으로 안타까운 나라다.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내노라’라는 국서를 보내 수나라 양제를 격노케 하더니 아직도 세상 물정을 깨치지 못한 모양이다. 진실은 감춰도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했으니 머지않아 청맹과니도 칠지도는 황제가 제후에게 하사한 신표라는 사실을 인정하겠지?



1. 진구 왕후는 서기 269년에 100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학자는 물론 일부 일본 학자들도 신뢰하지 않는다. 이주갑 인상을 적용하면 백제 근초고왕 재위 기간(346~375)과 겹치고 업적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근초고왕을 모델로 하여 만든 가상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2. 이주갑 인상(二周甲引上) : 『일본서기』의 특정 시기에 일어난 사건을 일괄적으로 120년 끌어올려야 사실과 부합한다는 주장. 주로 진구 왕후 치세부터 웅략 천왕 치세에 나타난다. 백제의 해당 시기는 근초고왕 치세부터 개로왕 즉위 직전까지다.

3. 명협(蓂莢) : 잎사귀가 15개인 것과 6개인 것이 있다고 한다. 15협은 매일 잎이 하나씩 나오다가 16일째에부터는 하나씩 진다고 한다. 잎이 피었다 지는 주기가 한 달이다. 6협은 1년을 의미한다. 6협은 매월 잎이 하나씩 나오다 7월부터는 하나씩 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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