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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07. 2022

나 혼자 잘해서 뭐하나

제일 오염이 큰 산업도 줄이려면 

한국으로 이사하고 나서 집안 살림을 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뭘까요? 그건 아마 "쓰레기 분리배출"인 것 같아요. 홍콩에서는 명목상 재활용이 '권장'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규제가 없기 때문에 페트병과 금속 종류만 (저의 양심을 위하여) 따로 버렸었고, 음쓰(이 용어(?)도 이번에 배움)는 분류하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배출했었지요. 그전에 살던 미국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늘 찝찝했었는데, 한국에 오니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이게 맞다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재활용되는 폐기물의 비율이 아주 높지는 않더라도, 일단 버릴 때라도 최대한 세분화하여 배출한다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 건 틀림없을 테니까요.

분리배출은 기본! (이미지: 경인일보)

그런데, 이사 초반에 워낙 새로 사는 물건들이 많다 보니 하루 종일 쓰레기를 분류하고 쓰레기장에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저뿐만 아니고 모든 동네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재활용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순간 미국의 거대한 쓰레기장과 홍콩의 유명무실한 재활용 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만 이렇게 잘해서 뭐 하나.. 지구 상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데..'


물론 그럴수록 나라도 잘하는 게 필요한 건 압니다. 하지만 나 하나의 힘이 뭐 그리 대단할까요? 넷플릭스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Seaspiracy에는 아무리 커피숍마다, 집집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구비한다고 해도, 사실 전체 해양 쓰레기 양 중에 플라스틱 빨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함을 지적합니다. 대규모 어업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거죠. (아! 물론 쓰레기 자체가 너무너무 많은 게 일단 제일 문제긴 합니다. 문제를 축소하려는 건 아니에요ㅠㅠ)


기후변화도 사실은 '산업'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에서 아무리 콘센트를 열심히 끄고 LED 조명으로 교체를 한다 한들, 산업 부문에서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량을 잡지 못한다면 탄소중립은 달성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만 일단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가정에서의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죠. 



에너지 집약적 산업, 탈탄소를 어떻게?

요즘 '탄소 중립'이며 '넷 제로'가 화두인데요, 이름은 복잡해도 결국은 인간이 배출하는 순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이제까지 차곡차곡 만들어온 탄소 경제에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화해야겠죠. 특히 어려운 부문은 유달리 에너지 집약적인 철강이나 시멘트, 발전과 같은 산업입니다. 이제까지는 경제 발전을 목표로 보조금 팍팍 줘가며 밀어줬었는데, 느닷없이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라니요. 


물론 이 산업들도 요즘 혁신을 꾀하고 있기는 합니다. 일례로 철강 산업의 경우 수소환원 기법(뭐 그런 게 있대요)을 이용한 그린 수소 활용으로 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린/블루/그레이 수소에 대해서는 이 글!)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금전적인 리스크도 상당합니다. 저탄소 에너지 기술은 비용이 엄청나게 들뿐더러, 철강 산업처럼 투자 주기가 긴 경우에는 여러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많기 때문이죠. 


특히 EU처럼 배출권거래제가 확립되어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철강이나 시멘트 산업은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하는데요, 1)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여 스스로 배출량을 줄이거나, 또는 2) 배출권을 구매하여 탄소 배출을 해 버리는 것이 그것이죠. 그런데 시장에서 탄소 가격이 충분히 높게 형성되지 않을 경우, 많은 비용을 들여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배출권을 구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때 초반에 에너지 집약적 산업은 빠져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 EU ETS (유럽연합에서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 틀 내에서도 새로운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기보다는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요즘 그래서 "탄소 차액 제도(CCfD, 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것이 이곳저곳에서 논의되고 있는데요, 이건 쉽게 말해 정부가 돈을 주는 겁니다. 일례로 현재 독일에서는 철강 부문에 CCfD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상황이죠. 


정부(규제 기관): 너네! 어서 탄소배출량 줄이쇼!
철강 생산자: 뭔 소리여.. 하루아침에 어떻게 줄입니까? 우리는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다고요ㅠㅠ 
정부: 그럼 우리랑 계약을 맺읍시다. 보조금을 드릴게.
철강 생산자:... 얼마? $_$ 
정부: 너네가 배출량을 얼마 줄이는지 봐야겠지만.. 시장에서 형성되는 탄소 가격에 대한 손해를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읍시다.
철강 생산자: 그럼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적어지네? 콜!   

결국 여러 방식으로 에너지 집약적 산업을 지원함으로써 저탄소 에너지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경제적 선택이 되게끔 도와야 하는 거죠. 넷 제로를 달성하려면 이들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미래를 준비하는 것

얼마 전 대선 후보자 토론이 있었지요. 저는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주요 쟁점에 대한 기사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론 환경이나 기후변화 분야가 "핫한" 토픽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국내외적으로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꼭 친환경주의 때문이 아니라 당장 무역 제재 등 경제적 손익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도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원자력 발전을 유지할 것인가(아니라면 언제까지 폐지하느냐), 신재생 에너지를 어디까지 늘릴 것인가, 2030년까지 탄소 감축량을 얼마로 설정할 것이냐 등의 세부 사항은 다를 수 있을지언정,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단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얼마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빙하가 녹아서 부유하다가 결국 완전히 소멸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5년 전과 현재의 지구 모습도 완전히 다른데, 후손을 위한 미래는커녕 다음 임기 말까지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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