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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02. 2022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문제 

https://brunch.co.kr/@seluetia/263


때는 2022년. 몇 년 간 전 세계에 역병이 돌더니, 드디어 전쟁까지 났습니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를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뉴스에 비치는 수많은 난민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니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전쟁을 하는 건 외면상 두 국가일지 몰라도, 사실 피해를 보는 건 아무런 잘못 없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민간인들일 테니까요. 위에 공유한 정현님 글에서 엄마 손을 잡고 추운 새벽길을 걸어 국경을 넘은 꼬마들에 대해 읽다 보니, 그 아이들이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싶어서 눈물이 절로 나더군요.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멀쩡히 있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느냔 말입니다. 


침공의 배경에는 여러 정치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저쪽 동네는 에너지 문제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러시아는 엄청난 에너지 부국입니다.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석유 생산국이고(전 세계 생산량의 12%를 차지), 가스 생산은 미국 바로 다음으로 2등이지요(전 세계의 17%). 그럼 그렇게 잔뜩 생산해서 뭘 하냐 하면, 물론 수출을 합니다. 


특히 유럽은 러시아에게 가장 중요한 손님인데요, 유럽은 이전부터 석탄과 석유, 가스 등 대부분의 에너지 자원을 러시아에게 아주 많이 의존해 왔습니다. 바꿔 말하면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러시아에 대해 취약하단 얘긴데요, 러시아의 가스 수출 70%, 석유 수출 절반이 유럽 대상이라고 하니까요. 유럽 입장에서는 가스 공급 1/3이 러시아로부터 옵니다. 


유럽이 맘에 안 들면 러시아는 늘 "너네 자꾸 그러면 가스 끊어 버린다!"라고 으름장을 놓고, 유럽은 쩔쩔매곤 하지요. 살짝 바꿔 보면 러시아 입장에선 EU가 엄청 고마운 고객인데도 말이에요. 유럽에 안 팔면 다른 데 팔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기엔 파이프라인 인프라가 그만큼 잘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요. 


그럼 그 파이프라인이 어디를 지나느냐 - 빙고, 우크라이나입니다. 그것도 지금 막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동남쪽, Donbass 지역에 대부분의 파이프라인이 지나간다고 해요. 이번 전쟁으로 인해 파이프라인이 훼손되기라도 하면(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과 러시아, 둘 다 입장이 곤란해질 겁니다. 유럽은 안 그래도 치솟는 에너지 가격이 더욱 오를 것이고, 러시아는 다른 고객을 빨리 찾아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최근 러시아가 중국 쪽에 사바사바 하고 있다고 해요.) 



안 그래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세계 경제가 엉망인데, 이번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불안정해지면 세계 경제는 더더욱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공급받는 유럽뿐만 아니라, 자원과 물자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사실상 위험해지지요.   


안 그래도 유럽은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에 지난 몇 달간 고생 중인데요, 영국의 경우 2천만 가구 이상이 에너지 비용 50% 이상 상승에 몸살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에는 가스 가격 60% 오르기도 했다고 해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는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축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나아가 기후 위기 타개를 위한 노력에도 적색등이 켜질 수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뭐, 일단 돈이 없으니 청정 에너지고 자시고 투자를 할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에너지 가격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인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단 거죠. (보고 있나 푸틴)


유럽 입장에서는 당장 가스관이 막혀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좋아, 이 기회에 그냥 러시아를 확 쌩까고(?)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요. 러시아에게 공급받는 에너지가 모두 화석 연료다 보니, 이 기회에 신재생과 수소 에너지 사용을 확 늘려서 러시아 의존도를 애초에 차단시켜 버리자는 것이죠. 원래 원자력 에너지를 점차적으로 줄여가던 영국과 독일은 "지금 이럴 때가 아냐, 원자력 만한 것도 없으니 다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제안도 진지하게 검토 중입니다. 원자력 발전이 여러 문제는 있지만, 에너지 생산량이나 탄소 발자국을 생각해 보았을 때 아무래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니까요. 

청정한 대안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EU 자체적으로 화석 연료를 개발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북해에 묻혀 있는 석유와 가스를 더욱 적극 개발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래 트윗처럼 영국 에너지부 장관은 당장 급하니 둘 다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영국 에너지장관의 트윗


전쟁이 어떻게 되든, 앞으로 세계는 한바탕 출렁일 것이 뻔합니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말고도 석탄과 우라늄, 알루미늄 등 각종 자원 생산도 모두 열 손가락 안에 드는데요, (자원 되게 많네요 부럽다) 우리나라도 러시아로부터 가스와 석탄을 공급받는 입장에 있지요. 서로서로 얽힌 세계 경제가 어떤 식으로 타격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기후 위기를 극복할 에너지 전환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일까요? 


무엇보다 이 모든 권력 게임과는 관계없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되길, 그리고 잠시 고국을 벗어난 그들에게 어서 평화가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표지 사진: Unspalsh.com

- 참고 자료 

https://www.carbonbrief.org/qa-what-does-russias-invasion-of-ukraine-mean-for-energy-and-climate-change?utm_campaign=Daily%20Briefing&utm_content=20220228&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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