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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기 May 28. 2020

세상을 바꾸는 수다,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부터.

-캐스린 스토킷의 첫 장편 소설 < 헬프 >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때였다.  매출이 점점 줄어 힘겨워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 가게 임대 계약 만료시기가  되었다.  건물주는 보증금과 월세 인상을  요구했고,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건물주를  찾아갔다.  어려워진 가게 사정을 내비치며 머리를 조아려  사정하는 것이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서로 반반씩 양보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머리를 조아리고,  매달리고,  사정해야 했던 내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밤새도록 뒤척였다.     

-정의에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는 시간,  50년     

스키터는 아이빌린에게 묻는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53세의 아이빌린은 1950년대까지 수 십 년 동안 백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것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에서. 

아이빌린은 총명했지만 초등교육을 채 마치기도 전에 부모를 돕기 위해서 어린  가정부가 되어야 했고,  백인 고용주의 불평등한 대우나 모욕적 언사에도  미소를 띈 채,  ‘네,  주인님’  ‘네,  아씨’  대답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자신의 자녀만큼 사랑했던 백인 가정의 아이들이  자라,  그들의 부모처럼 자신을 멸시하고 억압해도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된 노동에 허덕이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마저 포기하고 살면서도 아이빌린이  사랑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건 자랑스러운 아들 트리로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4살의 트리로어가 백인 농장에서 트랙터에 깔려 허파가 터진 채 버려진  날,  아이빌린의 마음에 쓰디쓴 씨앗이  심어졌다.  그녀가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세상을 바꾸려는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철없는 시골 처녀의 무지한 욕망이 사건의  시작     

스키터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힐리를 쳐다본다.  힐리는 ‘가정부 위생 발의안’,  즉 백인 가정은 반드시 유색인 가정부가 따로 쓰는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키터는 힐리의 발언이  불만스럽다.  왜 불만스러운지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마음의 고향 콘스탄틴 때문일까?  콘스탄틴은 스키터가 태어나던 날부터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흑인 가정부다.  스키터는 콘스탄틴으로부터 지혜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자존감을 배우고,  안식을 얻었다.  그런 콘스탄틴이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집을  떠났다.  스키터는 콘스탄틴이 왜 자신의 집을 떠났는지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분노를 이겨내는 ‘도움’의 힘     

아이빌린은 위험을 무릎쓰고 미니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주었다.  뛰어난 요리 솜씨에,  굳건하고 용감한 미니는 힐리의 거짓말로 인해 누명을  쓰고 일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정치가 남편을 둔 덕에 잭슨 타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힐리는 미니의 구직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멀리서 이사 온 잭슨 타운의 왕따 백인 셀리아가  비밀리에 가정부를 찾고 있다.  아이빌린 덕에 미니는 셀리아 집의 가정부자리를  얻었다.  깜쪽같이 힐리를 속인 채.     

이제 이 세 여자의 아슬아슬하고 화끈한,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벌떡거리는 작당모의가  시작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끝을 알지  못했으며,  그 시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시작과 함께  변해버렸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의 스펙을 만들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던 스키터와 마음의 싹으로  머리의 두려움을 떨쳐낸 아이빌린과 스키터를 노려보며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하는 미니가 만들어낸 수다가 이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마음으로 움직이는 힘     

원하지만 원치 않았던 일,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  바로 아이빌린이다.  더 이상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피 끓는 흑인 청년들의 분노를 어루만지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싹이 햇볕 아래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그녀는 낡은 기도문 책 위에 새 책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과 이웃 모두를 걸고.  생활 속 자질구레한 살림 살이의 노하우만큼 그녀는  삶의 노하우를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어진 아이빌린의 작은 손짓하나에도 농익은  마음이 느껴진다.  나를 울리고,  나를 위로해주는 마음이다.  
  



-사랑과 배려를 배우는 스키터,  진짜 작가가 되다.     

화장품과 옷,  악세사리가 미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듯,  훌륭한 글솜씨가 뛰어난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키터는  행운아다.  숨을 멎게 만들고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이 수다가  스키터에게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작가정신을 배우게 했으니까.  세상을 바꾸는 수다가 어찌 스키터를 변화시키지  않았겠는가.  그녀가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다.     

-여리디 여린 미니,  강인한 사람이 될 것이다.     

쾌활하고 밝은 미니의 주변은 늘 사람이 많다.  가끔은 드세기도 하지만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가는  미니를 보면 누구나 그녀가 힘이 세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미니는 너무 여려 부러질 것  같다.  이유 없는 남편의 구타를 참고 견디는  것도,  투덜거리지만 진심을 다해 자신의 고용주를 보살피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주변을 챙기고 웃기는 것도 모두 자신  혼자만 버려질까 두려운 미니의 속마음이다.  하지만 이제 미니는 강인한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녀가 이 수다에 동참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아니 은밀하고 유쾌한 초코케잌을 만들던 그날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앞으로 그녀가 내딛을 통쾌한 복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따스해진다.  미니에게 박수를!
  



소설은 남의 인생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그 안에서 내 상처를 만나기도  하고,  설레고 들떴던 유년시절 기억의 한모퉁에 서 있기도  한다.  그렇게 되새김질하고 다독이며,  우리의 미래가 한결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좋은 소설을 만난 기쁨을 맛보게 된다. 

바로 <헬프>처럼.  오늘 그대도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해  보겠는가?  찰나의 순간 상처받은 자존감 때문에 잠 못드는 내가  아이빌린에게 듣는 조언을,  변화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는 미니의  용기를,  이 세상 함께 걷자며 내미는 스키터의 악수를 이  책을 펼쳐드는 그대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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