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리뷰>
1. 영화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영화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은 독자에게 가장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는 문학 장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재미는 크지만 깊이는 얕아 가장 가벼운 장르 또한 추리 소설이라는 편견도 갖고 있었다. ‘제노사이드’를 만나기 전까지만.
온 세상을 휘저으며 동분서주 바쁜 작가를 보며 스케일이 크구나 싶었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눈 앞에 그려지는 빠른 그림 안에 스케일을 뛰어 넘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 흥미를 넘어서는 서러움이 있었다. 편견을 넘어서는 각성이 있었다. 또한 글이 보여주는 영상의 절절함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어느 장르, 어느 갈래에 놓아야 할지 모호해 졌다.
2.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상상력.
어릴 때 밤 하늘의 별은 ‘그냥’ 별 이었다. 그 ‘그냥’ 별이 ‘특별한’ 별로 바뀐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머리가 크면서 나는 저 우주 밖에 있을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한 신비롭고 두려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들을 만난다면 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아니 그들을 만나기를 기도해야 하는지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지 지구 밖 외계생명체에 대한 고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그러다 날이 맑고 하늘이 파랗다 못해 가슴을 깨놓을 것처럼 높던 어느 날, ‘누스’가 나타났다. 내가 꿈꾸던 외계생명체 보다 열 배쯤 큰 충격으로.
인류는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이 지구라는 별을 정복하고 생명과 문화를 이어왔다. 그 분명한 논리의 끝에는 현 인류를 뛰어넘을 신 인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은 당연한 법칙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현 인류가 이 지구별의 마지막 인류인 것 마냥, 신 인류에 대해 일말의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보다는 초월적인 힘, 과학, 우주적 힘으로 만들어지는 슈퍼맨, 배트맨, 에일리언이 더 친숙했다. 그런 내게 ‘누스’가 큰 눈을 굴리며 말한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제 살을 깎아 먹는 인간, 가여워.”
슈퍼맨, 배트맨, 에일리언 보다 강력한 존재력을 발휘하며 소설의 큰 축을 잡고 있는 ‘누스’는 독자에게 주어진, 끝없는 의문덩어리다. 그 의문 뒤에 또 다른 반전을 품고 있는.
3. 아비와 아들, 모든 문제의 귀결점
이야기는 아들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지에서 목숨을 건 아비 예거로부터 시작된다. 동시에 멀리 일본에 있는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겐토 역시 잃어버린 아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은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아비의 죽음을 슬퍼할 줄 모르는 자신의 이유를 찾기 위해 겐토는 아비가 내 놓은 수수께끼 풀이를 시작한다. 어찌되었던 두 주인공은 ‘부정’이라는 같은 틀거리 안에서 자신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사건들에 연루 되고, 시련의 그물망 안에 잡혀 든다. ‘아비’라는 이름으로부터 온 이 그물망을 찢어내는 일, 모든 문제의 해결점 역시 결국 ‘혈연’이란 이름이 아닌가 조심스레 타진해 본다.
4. 제노사이드- 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대량 학살
[고요한 정글의 숲에 침팬지 일곱 마리가 조용히 움직인다. 은밀히 움직이던 일곱 마리 침팬지는 건너편 다른 원숭이 무리로 돌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미와 새끼 원숭이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어린 원숭이를 빼앗아 사지를 찢는다. 대장 침팬지가 어린 원숭이의 찢긴 팔과 아직 살아 움직이는 어린 원숭이의 머리를 찢어 먹는다. 상처 입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향해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소설 속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유인원 무리는 곧, 이성을 잃고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는 인간의 제노사이드를 비유하려는 것이다.
아니 어찌 인간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콩고의 오네카는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다섯 식구의 차남이었다. 어느 날 찾아온 트럭의 병사들은 지시에 반항하는 형을 도끼로 찍어 죽이고 여동생을 창칼로 꿰뚫어 버렸다. 엄마를 강간하고 목을 자르지 않으면 형처럼 죽게 될 거란 협박에 오네카는 지시를 모두 마쳤다. 훈련캠프에서, 전장에서 어린 오네카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오로지 죽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수십, 수백의 오네카가 오늘 콩고에서 살고 있다.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과 여러 국가의 정치 권력욕이 얽혀 끊임없는 오네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단 콩고 뿐이겠는가? 인류 역사 속 전쟁엔 항시 비이성적이고 소름끼지도록 끔찍한 제노사이드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가감없이 인류가 행했던 제노사이드를 언급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짧은 리뷰 안에 소설 속 중요관점을 다 담기에는 책의 무게가 인간의 죄책감만큼 무겁고, 소설 속 삶의 모습을 모두 피력하기에는 책의 깊이가 우주만큼 넓으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렇게 쓴다.
“오늘 소설 ‘제노사이드’를 만났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