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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3. 2021

명절 잔소리, 그냥 웃지요.

<명절 잔소리 메뉴판 >
* 수능 성적 잘 받았니?            150,000원
* 살은 좀 빼야겠다.                   250,000원
* 대학은 어디 썼니?                 300,000원
* 취업은 잘 되어 가니?            400,000원
*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이니?    650,000원
* 애는 안 갖니?                        750,000원

명절 때만 되면 우스갯소리로 떠다니는 잔소리 메뉴판이다. 타인의 인생에 잔소리할 생각이라면 돈이라도 내고하라는 경고장이다.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명절 때만 만나는 사이라서 딱히 할 얘기는 없지만 그래도 모른척할 사이는 아니니 너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주겠다'는 의도이거나 '혹시 아니? 인생 선배로서 그럴듯한 해법을 줄 수 있을지도...'라는 생각에 꺼낸 말일 것이다. 설마 '네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난 잘 알고 있지. 하하하.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 네 연휴를 제대로 망쳐주마! 하하하!'는 아니리라 믿는다.

말하는 이의 의도가 어떻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은 엉망진창이 되기 마련이다. '다음 명절에 내가 이 자리에 있나 봐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가족 모임에 얼굴을 비치지 않으리...'라는 다짐만 확고히 설뿐이다.


어떤 개그맨은 명절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집안 어른들은 유치원생인 아이에게 한글 언제 뗄 거냐고 물어본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 반에서 키가 몇 번째냐고 물어본다. 중학교 가면 반에서 몇 등이냐고 물어본다. 고등학교 가면 어느 대학 갈 수 있냐고 물어본다. 대학 가면 학점이 몇이냐고 물어본다. 졸업할 때 되면 취직은 언제 어디로 하냐고 물어본다. 취직하면 연봉이 얼마냐고 물어본다. 연애를 하면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어본다. 결혼하면 애는 언제 몇 명 낳을 거냐고 물어본다. 애를 낳으면 이제 잔소리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하며 한시름 놓는다. 하지만 그 애가 유치원생이 됐을 때 어른들의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한글은 언제 뗄 거냐?"


듣기 싫은 질문을 받았을 때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되물으라고 하던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칼럼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라지만 젊은 세대가 듣기에는 어떤 질문이든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처럼 들리기 때문에 불편하고 거북하다.


살면서 나도 들었던 이야기지만 대부분 잘 넘겼다. 학창 시절 성적 좋냐고 물어보면 확인 못하실 거 아니까 좋은 편이라고 어물쩍 넘어갔다. 취직과 결혼을 채 물어보실 틈 없이 후딱 결혼을 해버렸고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물으실 즈음 임신을 해버렸다. 둘째는?이라고 물어보실 때쯤 둘째를 임신했다. 묻기 전에 해치우니 명절 잔소리에서 해방이 됐다.


그런데 친정만 가면 듣는 잔소리, 나를 괴롭히는 말은 따로 있었다. 벌써 20여 년을 듣고 있는 잔소리다. 잔소리라기도 애매하고 하소연, 푸념이라기도 뭣한 아버지 어머니의 대화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늘 마지막엔 이 이야기로 귀결되는 희한한 구조를 가졌다. 포문을 여시는 건 늘 어머니다.

"아휴... 유정이 그때 교대나 사범대 갔었으면 얼마나 좋아? 지금까지 선생님 하면서 잘 살았을 거 아니야? 선생님이 참 어울리는 애인데... 어디 가서 점 봐도 늘 나오잖아, 가르치는 직업 하게 될 거라고.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그때 **대 영어교육과 넣으면 붙고도 남는 성적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그러면 아버지는 늘 똑같이 말씀하신다.

"그건 본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거야 이 사람아. 아무리 우리가 얘기해봐야 본인이 싫다는 걸 어쨌겠어. 유정아! 너도 자식 키워봐서 알겠지만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크는 게 아니야."

"그렇지. 지 고집대로 하겠다는 걸 누가 말려. 근데 봐봐. 지금 저렇게 애들 가르치는 걸 하고 있잖아. 학교 선생님 했으면 안정적인 월급도 받지 방학 있지, 얼마나 좋았게? 얼마나 잘했을까? 진짜 잘했을 것 같은데..."


난 그냥 죄인이 되어 늘 허허 웃었다. 화내기엔 죄송하고 후회하기엔 내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게 속없이 웃고 있으면 지레 끝나버릴 이야기였다.

하지만 늘 내 맘에 돌을 던지는 말이었다. 25년 전의 선택이다. 무려 25년 전.

과거 그들의 제안을 따르지 않은 대가는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마다 싫은 소리를 담담하게 듣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대가였겠지만 난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내 과거의 선택에 대해 곱씹어야 했다. 후회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잘못한 걸까, 선생님이 되었다면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를 수없이 되묻다 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이제 와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변변치 못하게 큰 자식이 걱정되고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인데 들어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어떤 성공을 안겨다 드려야 과거의 내 선택이 상쇄될까.


이번 추석 때는 듣고 있던 동생이 정리를 해줬다.

"언니. 수능 다시 봐야겠다. 대학 다시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25년 전 일인데..."

다들 한바탕 웃고 끝냈지만 내 착잡한 마음은 여전했다.


내년 입시를 압둔 고2 아들과 함께 수능에 도전해볼까 오기가 발동하다가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수학을 생각하며 미련 없이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만의 하나 도전이 성공해 대학을 다시 갈 수 있게 되더라도, 교대나 사범대를 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그다음 명절부터 부모님의 새로운 잔소리가 더 크고 화려하게 붙어 다니겠지. 그러니 상상일지라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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