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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Oct 13. 2022

13. 춘천 일기

산과 강이 품어주는 나의 신혼집

내가 살아온, 누볐던 곳은 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가득한 곳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속초, 여름이면 화려한 젊음이 가득한 양양, 도시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인 강릉, 

춘천 레고랜드 미니어처 월드 서울

우리나라의 대표 얼굴이자 수많은 빌딩 숲과 500년 조선이 잠들어 있는 서울, 덥고 습한 분지지만 교통이 편한 대구, 대구 옆동네지만 우리의 대학 생활을 책임져준 경산, 자작나무 숲과 별이 내리는 인제, 설산도 숲도 아름다운, 그리고 내게 펜을 잡게 해 준 횡성.


하지만, 춘천은 조금은 특별한 곳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한 곳이면서도 신혼집으로 정한 곳. 완벽한 자연이라고 하기에도 교통이 편리하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화려한 도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살기에는 참 좋았다. 조용하고 적당히 문화생활을 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만 둘러보면 어디든 산이 보이고, 아름다운 강이 감싸주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강원도를 도장깨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춘천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거주지를 너무 자주 옮긴 탓에 피곤해서 뻗어있기 바빴던 우리의 별장. 오랜만에 아파트 주변을 산책을 하다 보니 벌써 은행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벚꽃 막차를 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라니.


주말로 한정되다 보니 맛집이나 카페 위주로 돌아다니기 바빴다. 춘천 어딜 가도 강이 있고, 산이 보여서 뷰 맛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예쁜 장소를 만나서 흥분하며 핸드폰을 들었지만 아이폰이 그대로 구현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 눈으로 오롯이 담아와야 했다.


춘천 레고랜드
춘천 레고랜드
춘천 카누
춘천 카누

올해 5월에 개장한 레고랜드부터 스카이워크, 킹 카누 체험까지 부지런히 춘천을 돌아다녔다. 



거주지를 이동하는 것도 모자라 평일과 주말에 부지런히 운전대를 잡기 바쁜 짝꿍을 보면서 우리는 함께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수많은 곳을 담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면 주말이, 돌아서면 평일이 우리를 찾아왔다. 푸른 하늘은 매주 찾아왔고, 집에만 있기에는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올해 유독 내 마음에 와닿은 문장이 있었다.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매일을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나왔던 문장이다. 주어진 하루를 허비하던 내가 이제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부지런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하루는 춘천 투어를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춘천 집에서 쉰다. 우리는 각자 소파에 널브러져 요리도 함께 했다가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으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문득 함께 해온 10년 동안 짝꿍에게 가장 행복했던 곳은 어디였나 궁금했다. 우리는 서로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한 시절이 조금씩 달랐다. 내게 가장 좋았던 시절은 짝꿍에겐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서로 시기가 엇갈린 듯 보이겠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서로가 힘들고 행복한 시절에 언제나 함께 했다는 뜻이되기도 했다. 서로가 공통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와, 여유로웠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도 함께이고 앞으로도 함께일 것이다.


그동안 나만의 시간에 빠져 바로 옆 사람과의 행복한 순간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었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암전이라는 우울한 무기력함 또한 결국은 ‘시기’였음을 알기 위해 보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좌절하고 우울해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져 스스로를 방치해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그런 믿음. 그리고 또 다른 힘든 시간이 와도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얼마나 오래 걸리든 결국은 털고 일어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젠가 내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춘천은 나와 짝꿍의 영원한 도피처로 남을 것이다. 


서울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준 곳이자 평일엔 깊은 산골에 있다가 주말과 동시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던 곳. 인제만큼 수많은 별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횡성만큼 눈부신 숲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시와 자연이라는 경계와 도피처이자 아지트라는 그 경계에 있는 곳. 그리고 다른 지역을 포류 하며 살게 되더라도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면서 살도록 해주는 믿음을 심어준 곳.


어디를 가든, 어디에 살게 되든 춘천은 나만의 아지트로 내 마음속에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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