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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Oct 18. 2022

14.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리울 거야, 강원.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롭지 않고 즐겁다. 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 일정을 계획하는 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들이 행복하다. 친구들과 종종 연락하면서 수다를 떨고, 혼자였다면 알 수 없는 따뜻한 마음들을 나누면서 오늘 하루도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강원도가 좋다. 어딜 가도 보이는 산이 좋고, 생각보다 큰 강과 조금만 멀리 가면 동해 바다가 보이는 것도 좋다. 초록빛 피톤치드는 내게 보이지 않는 응원으로 곁에 있어주고, 파란색 하늘도 언제나 기분 좋다. 이제는 울긋불긋 단풍 준비를 하는 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도 반갑다.


퇴사하고 1년이 지났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서서히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기다렸던 봄도, 축제 같던 여름도 지났다. 더 이상 우울하지도, 외롭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지만 나는 거주지로서 강원도를 떠나려고 한다.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해서 나의 영역을 꾸준히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류하는 삶은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4년 전 꿈을 안고 떠났던 때가 떠올랐다. 무던히도 더웠던 날 결심했던 내 인생의 전환점. 혼자 떠났지만 둘이 되어 돌아온 대구는 무심히 나를 맞이해 주었다. 대구는 여전했다.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시골 텃밭에 가기 위해 주말을 기다리셨고, 주말에 같이 가자는 엄마의 말도 반갑지는 않았다. 시골 가는 차 안에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경상도만의 산과 하늘을 찬찬히 바라보니 나름의 푸름이 금세 좋아졌다. 나뭇잎을 다 떨어트린 후에도 꼭 쥐고 있는 감나무의 감이 이렇게 예쁜 주황색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아빠의 시골일을 돕고 있었고, 뿌듯해하고 있었다.


나는 조만간 대구에서 직장을 구할 예정이다. 목적을 위해서 무작정 벌기만 했던 돈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투자하고 싶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왜 이곳으로 내려왔을까 하는 후회를 할 수도 있다. 표류하던 삶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분노가 쌓이기도 할 거고, 우울해하다가 무기력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믿음이 생겼다.

휘몰아치는 상황에 흔들리고 지쳐 쓰러지더라도 남 탓도, 내 잘못이라며 내 탓 도하지 않을 거라는 거.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운 내서 일어날 거라는 거.

다가올 행복한 일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거.


나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들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용기를 얻어왔다. 잠시 긴 여행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 여행 끝에 느낀 건, 행복은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닌, 길을 걷고 있는 매 순간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운이라는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세 잎 클로버라는 행복을 무심히 스치지 않아야 하듯이.


언젠가 또 표류하는 삶을 살수도,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아등바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 때면 강원도를 생각하면서 잠시 여유를 부릴 준비가 되었고, 어디에 있든 언제나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할 준비가 되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조금 느긋해지리라 마음먹었다.


강원도는 상처받고 도망쳐온 나를 다시 일으켜준 곳이다. 서울에 있을 땐 미련이 남지 않도록 실컷 다 돌아다녀서 떠날 때 홀가분했는데 강원도는 미련이 남는다. 더 오래 더 잘 즐기지 못한 게. 힘들어하고 우울해했던 시간이 길어서. 그리움으로, 아쉬움으로 남는 이곳을 나는 언제든 또 찾을 것이다.


고마웠어, 강원.

잘 부탁해,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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