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쓸모
사람은 누구나 피치 못하게 맞이하게 되는
암흑의 시기가 있다.
그 암흑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가
그 사람의 쓸모가 된다.
'나 좀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아...'
라는 생각으로 두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쓸데없는 두려움이 저지른 짓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뒤따른 절망이 어떤 종류였는지
아직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걸 입 밖으로 소리 내는 순간,
그 말이 뾰족하게 되돌아와
내 심장에 훅- 꽂힐 것만 같다.
사랑이 끝난 후에야
둘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고
갈팡질팡 휩쓸려 힘들던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정체모를 슬픔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난 이제
슬픔의 천 가지 이름을 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름은
천 번째 이름은
그 중간의 숫자들에도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다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떨어지고 떨어져도 끝없이 바닥이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만 편집돼서 재생되는 기분일 때.
내가 나를 거기서 끄집어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을 지경에 이르니,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나를 찾게 되더라
나를 속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힘이 풀어지고
들춰보기 창피해서 피해왔던 나와,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친다.
그때 비로소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그리고
'내가 좋아할 나'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토록 노력하며 살았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는
언제 시원하게 성공한 적 있었던가...
허나 내가 좋아할 나는 방향이 틀릴 리 없다.
그건 시간문제다.
조급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비교하며 마음 쓸 이유도 없다.
난 여전히 성숙해지려면 멀었고
아직도 내가 온전히 좋은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슬픔은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줬고
그로 인해 ‘나’라는 형태가 드러난 기분이다.
형태가 드러나야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나의 쓸모를 알게 된다.
또 다시 내 삶에 슬픔이 찾아온다면
내가 무언가를 표현할
더 큰 자격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슬픔에 또 하나의 근사한 이름이 생기겠지
그림 출처: art.globalpinn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