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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선 Feb 23. 2020

슬픔의 천 가지 이름

 슬픔의 쓸모


사람은 누구나 피치 못하게 맞이하게 되는

암흑의 시기가 있다.

그 암흑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가

그 사람의 쓸모가 된다.   




'나 좀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아...'

라는 생각으로 두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쓸데없는 두려움이 저지른 짓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뒤따른 절망이 어떤 종류였는지

아직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걸 입 밖으로 소리 내는 순간,

그 말이 뾰족하게 되돌아와

내 심장에 훅- 꽂힐 것만 같다.

 



사랑이 끝난 후에야

둘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고

갈팡질팡 휩쓸려 힘들던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정체모를 슬픔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난 이제

슬픔의 천 가지 이름을 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름은

<인간에 대해 글을 쓸 '자격'>이고

 천 번째 이름은  

<이제야 홀로 설 수 있는 '자유'> 다

그 중간의 숫자들에도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다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떨어지고 떨어져도 끝없이 바닥이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만 편집돼서 재생되는 기분일 때.

내가 나를 거기서 끄집어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을 지경에 이르니,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나를 찾게 되더라


나를 속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힘이 풀어지고

들춰보기 창피해서 피해왔던 나와,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친다.

그때 비로소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그리고

'내가 좋아할 나'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토록 노력하며 살았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는

언제 시원하게 성공한 적 있었던가...

허나 내가 좋아할 나는 방향이 틀릴 리 없다.

그건 시간문제다.

조급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비교하며 마음 쓸 이유도 없다.  


난 여전히 성숙해지려면 멀었고

아직도 내가 온전히 좋은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슬픔은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줬고

그로 인해 ‘라는 형태가 드러난 기분이다.

형태가 드러나야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나의 쓸모를 알게 된다.

 

또 다시  내 삶에 슬픔이 찾아온다면

내가 무언가를 표현할

더 큰 자격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슬픔에 또 하나의 근사한 이름이 생기겠지



그림 출처: art.globalpinn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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