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즈음에 나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생활에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견디기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보곤 했다. 많은 것들이 즐거웠고 또 많은 것들이 아쉬웠지만, 특히 나는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물론,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계획대로 일을 잘 진행시켜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 주변의 인정을 받았을 때의 만족감, 동료들과의 유대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모두 일터에서 얻는 것들이고, 그래서 일하는 게 꽤 좋았다. (쉼에 대해 늘 이야기해서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긴 데다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 그건 즐거울 수가 없다.
그 긴 노동시간은 그럼 누구의 뜻대로 사용될까? 노동시간의 총길이뿐만 아니라 언제 시작하고 끝내는지,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떤 스케줄에 맞춰해야 하는 지를 결정하는 데서 과연 일하는 개인들은 무슨 권한을 갖고 있을까? 임금이라는 것이 개인의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이고 노동력이란 결국 개인의 시간 투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 전적으로 노동자 개인이 시간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고 결국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합의에 의해 그 통제의 권한을 결정하는데, 지금 대부분의 일터에서 노동시간은 전적으로 사용자가 통제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을 계획하고 조직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시간의 주인이 삶의 주인이 된다. 이제 널리 쓰이고 있는 ‘시간주권’은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개념이다. 시간주권이 모든 시간을 범위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데, 요즈음 노동시간 제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된다. 유연근무제 같은 경우, 다양한 노동시간 관련 제도 중에서 그나마 많은 일터에서 도입한 것으로, 하루 근무의 시작과 끝 시간을 일반적인 9-6에서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직장에서 도입한 것도 아니고 모든 직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제도를 활용해서 공부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등하원을 함께하는 식으로 아이 돌봄을 원활하게 하거나, 러시아워를 피해 출퇴근시간을 줄이는 등으로 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런데 시간주권에 관한 논의가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는 범위가 고작 출퇴근시간 유연근무제에 있다는 건 많이 아쉽다. 유연근무제를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 입장에 맞게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출퇴근 시간만 결정할 수 있는 거라면 이것을 시간“주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이라는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무한 자유를 꿈꿀 수는 없다. 업무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인 업무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동료들과 협의, 거래처나 고객 응대와 같은 일을 동반해야 하니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충분히 고민만 한다면, 사용자의 불필요한 통제로부터 벗어나되, 동료와의 협업이나 교류는 최대한 가능하도록 하는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과로사회와 시간주권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시간이 모자라는 이에게 시간 주권이 있을 리 없지 않을까? 그래서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떼놓고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 퇴사 후 찾아 나섰던 그 행복에 아직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게 뭔지는 확실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