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가 되어 강의에 나가게 되었다. 내가 꿈꿨던 삶이랑도 한층 가까워진 것 같다. 일을 하고 때로는 강의를 하는 전문직의 삶. 친구들한테 덤덤한 척 소식을 전하자 축하해 준다. 별 건 아니야, 그래봤자 애들 대상으로 하는 건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겸손한 척을 해봤자 내 입꼬리는 귀에 걸려있다. 강의를 핑계로 예쁜 투피스도 샀다. 아메리카노에 샷을 듬뿍 추가해 밤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반차를 쓰고 찾아간 대망의 첫 고등학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살핀다. 나는 그 시선을 즐기면서도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여주며 강의를 시작한다. 왜 아직도 변리사를 다룬 드라마는 없는 것인지. 그래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지 아이들의 고개가 쉽게 끄덕여진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아이폰에는 어떤 특허 기술이 있는지, 그의 대항마 갤럭시를 지키기 위해 남조선의 변리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과장 한 스푼 더해 목청을 높인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내용에도 아이들은 똘망똘망하다. 기특한 짜식들. 강의가 끝나면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쭈뼛대며 다가와 초콜릿을 주고 도망간다. 늦은 저녁 야자를 끝내고 메일을 보내는 학생도 있다. 꽃밭 속에 있다 온 내 마음은 몽골몽골해진다.
아이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의 위험성은 스스로 도취감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눈에는 변리사가 뭔지는 몰라도 강남에서 일하다가 잠깐 들렀다는 이십 대 언니(누나)가 멋있어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아무리 잘난 체를 해도 말간 얼굴로 끄덕여주는 순수한 아이들 앞에서 허영심을 시험받는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쇼를 하는 건 쉽다. 그러나 진실로 강의에서 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조차도 확신이 없는 직업이다. 누군가에게는 천상의 전문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죽어도 하기 싫은 노동일 수도. 그나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변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이들이 몰랐던 세상을 소개해 주고,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고, 끝난 후에는 무언가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여운을 남겨준다면 그걸로 족하겠다. 스스로 내린 의미부여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쥐톨 같은 강의비도 퍽 예뻐보인다.
강의가 끝나고 사무소로 복귀하는 길. 그새 업무를 재촉하는 알림이 가득하다.
나는 내게 물어본다.
너는, 그래서 너는 뭐가 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