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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r 11. 2020

전원생활 일기

달큰한 배추전이 맛있어 지는 계절

초 겨울 조금 쌀쌀한 날씨지만 정오의 남쪽 햇살이 따스한 오후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나른 한 몸에 활력이라도 주려고 하는지 아내가 앞마당에서 거닐고 있다. 

모처럼 조용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다. 영화 채널을 돌려 흘러간 영화 한 편 멍하니 보고 있다. 앞마당에서 햇살을 희롱하던 아내가 아래 밭을 항해 말하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뒤 짧은 거리를 쏜살같이 뛰어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오는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조용히 텔레비전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하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영혼마저 어디론가 사라지듯 하며 앉아 있던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뭔 일을 또 벌리려고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헤벌쭉하며 내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의 환한 미소에 그만 히죽거리며 따라나섰다. 

따스한 햇살이 그마저 없었다면 차갑게 느껴질 오후 시간에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끌려  나와 아랫집  배추밭 앞에 섰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혼자 배추를 수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랫집은 우리가 늘 신세를 지는 집이다. 서툰 시골 생활에 이것저것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는 다정한 분들이다. 오늘 배추 수확을 하는 날이었다. 

 배추를 몇 포기 가져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작은 텃밭이 있지만 배추는 심지 않는다. 두 식구가 먹어야 얼마나 먹나 싶기도 하지만 매 년 아랫집 밭에 배추 수확할 때 몇 포기 얻어 김치도 담그고 시래기도 말리면 봄까지 좋은 식재료를 얻는 셈이다. 

올 해도 어김없이 배추를 나누어 주신다. 덕분에 일손을 거들어야 한다. 경운기에 배추 옮겨주고 무 뽑고 오늘 하루 계획에 없었던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다. 약을 치지 않아 그런지 배추를 안고 경운기로 나를 때 배추벌레 같은 것들이 가끔 꼬물거린다. 작년에 아내가 배추를 실어 주다가 벌레 때문에 놀라 나 자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의 배추 옮기는 모습이 무척 조심스럽다. 한편 엉거 주춤한 자세로 배추를 옯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어느 정도 경운기에 배추랑 무가 실렸다. 그리고 우리도 배추를  집으로 옮긴다. 배추 잎 하나를 뜯어 한 입 베어 분다. 희고 넓적한 배추 입이 이빨에 '아삭'하는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풍부한 육즙에 달큼한 맛이 혀끝에 붙어 감칠맛을 더한다.  

달고 맛있다! 

나처럼 한 입 베어 문 아내도 맛있다고 난리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열심히 배추를 나른다.

배추와 무를 나르는 동안 아내와 아주머니가 밭을 정리한다. 

12월 초에서 중순 사이가 되면 농촌은 김장 배추와 무를 수확하기 바쁘다. 

더위가 한 풀 꺾이는 8월쯤 배추와 무를 심고 가을의 햇살을 받아 몸을 키운 배추의 맛이 아주 그만이다. 

아내가 갑자기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잠시 뒤 컵과 유리병을 들고 나온다. 유리병에는 겨울 내내 조금씩 마시려고 만들어 놓은 배즙이 들어 있다. 감기도 예방하고 커피 대신 마실 만하다 싶어 조금 끓여 유리병에 넣어 두었는데 들고 나오네!

아주머니도 대충 일이 끝나셨는지 우리 마당에 앉아 쉬신다. 아내가 주는 배즙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고마운 분이다. 

나도 대충 배추와 무 정리를 끝내고 손을 씻고 다시 멍 때리기에 돌입하려는 순간 아내는 배추 하나를 들고 부엌에 섰다. 

배추전 구워 먹자고 한다. 야호!

전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달큼한 맛이 입가에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전을 구워 먹자니 정말 너무  신난다. 건강에 나쁜 기름진 음식이지만 어쩌리 입 맛에 쫙쫙 달라붙는 것을.

사실 배추전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고향이 평양인 관계로 녹두 빈대떡은 많이 먹고 자랐지만 배추전은 이 곳에 자리 잡고 처음 먹어 보았다. 처음에는 입에 전혀 맛지 않았다. 한 입 들어가는 순간 입 안에 밤꽃 냄새 같은 것이 났었다. 영 구미에 맞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들은 나에게 주며 맛있지 맛있지를 연발하셨지만 나는 그때는 맛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한두 번 먹으며 괜찮네 하기 시작하더니 아내 손 맛으로  몇 번 해먹은 뒤로는 배추전이 이렇게 맛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배추를 수확하는 이맘 때면 늘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조리 법은 간단하다. 배추 입을 떼내어 밀가루 반죽에 한번 담갔다가 굽든지 아니면 기름을 두른 팬에 배추 잎을 한두 장 깔고 거기에 되직한 밀가루 반죽을 부으면 끝이다. 아내가 기가 막히게 만든 파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끝이다. 

정말 맛있다!


나는 비닐하우스에서 나는 채소니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철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겨울에 토마토가 나오는 것을 봤다. 여름에 먹는 음식 겨울에 먹어서 좋을 것 없다. 반대로 겨울에 먹는 음식 여름에 먹어서 좋을 것 없다. 모두 자연이 만들어 준 시기에 적적히 먹는 게 건강을 챙기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가 한 젓가락 뜨다 말고 뒤 창고로 나간다. 뭘 하나 했더니 작년 봄에 담가 둔 매실주를 가지고 온다.

"딱 한 잔만 마셔! 많이 먹으면 안 돼!"

아내의 신신당부가 이어진다. 

나는 속으로 

'잔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 뭐!'

라고 생각하며 큰 잔을 들고 오려고 식탁에서 일어나려니 아내가 잔 두 개를 얼른 가지고 온다. 

물론 내 잔이 아내의 잔보다 좀 크다. 

우리는 함께 건배를 했다. 배추전 한 입과 매실주 한 잔에 입으로 황홀하게 들어간다. 

그야말로 전원이 주는 행복이다. 창 밖으로 초겨울의 해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려는 듯 서녘 빛이 불게 타오른다. 금세 해가 질 것이다. 

시골에서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다. 점심 먹고 해가 있는 오후 동안 일을 하고 그리고 거두어들인 수확물로 이렇게 멋진 요리를 해서 먹고.....

작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행복으로 남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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