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고 싶습니다.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셰프 애드워드 리가 요리를 완성하고 심시위원에게 평가를 받으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길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가지 걸어야 하죠.
해봅시다.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도 이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했을 것 같아요.
저 역시 글을 마치고 '발행'을 누르기까지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심사를 받으러 가는 것 같거든요.
눌러도 되나? 좀 더 봐야 할까?
충분히 퇴고했다 생각했지만 발행을 해놓고도 또 고칩니다.
생각해 보니 우린 고칠 수라도 있죠, 애드워드 리 셰프는 그럴 수도 없었네요.
내가 아마추어라서 망설이는 건가? 프로들의 세계는 뭔가가 다를까?
애드워드리 셰프처럼 마감이라는 배수의진이 있었다면 또는 발행 후 수정 가능하다는 엄청난 여지가 없었다면 과연 이 글을 시작조차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에서, 프로 중에서도 프로라는 애드워드 리 셰프 역시 마감 후 미련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거예요.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딸이 진로에 필요한 자격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좀 어려운 시험인 것 같아요. 합격률이 낮더라고요.
반의 반은 떨어진다던데, 4수 하고 5수 해야 붙는다던데, 어차피 안될 것 같은데 이게 맞는 건가 싶더랩니다. 내 목표에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너무 앞이 안보인다 이거예요. 확신이 안선달까요.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글과 글씨에 확신이 안서요.
글이야 누구나 쓰는 거고, 요즘엔 인공지능이 작문도 해 디자인도 해 내가 뭐하러 하나 싶습니다.
이미 잘 쓰는 사람이 오죽 많아요?(네, 여러분이요.)
그래서 누구보다 딸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에게도 힘이 필요했죠.
'할 수 있어', '힘을 내' 하는 글을 썼다 지웠다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믿음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희망을 주기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만약에 나라면 어떤 말이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어요.
나도 똑같은 상황이라 굳이 가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느꼈을 때는 피식 웃기도 했네요.
이제와서 다시 동기부여를 준들 칭찬보따리를 풀어놓는들 와닿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저 견뎌라. 인내해라. 피할 수 없으면 그냥 해. 계속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만 포기만 말아라.
성취감이나 패배의 경험을 위해서는 아니에요.
내가 나아갔다는 증거를 남겨 삶의 농도를 높이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멈춰버렸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거든요.
나님 멋지다
우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유튜브를 조금 해봤었는데요, 유튜브를 가르쳐 준다는 유튜브를 정말 많이 봤어요. 거의 두 달 동안 하루에 영상 백 개씩은 봤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같이 창작이 아닌 모작을 가르쳐 준다는 사실 아시나요?
똑같은 것을 두고 이렇게 저렇게 편집해 보라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콘텐츠가 되어 세상에 나오더라고요? 내용은 똑.같.은.데.
저는 다양한 편집툴을 기가 막히게 배우고 쿨하게 나왔어요.
유튜브 플랫폼을 비방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모작은 의미가 없기에 시그니쳐가 견고해질 때까지 후퇴하기로 한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혼자만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탐나요.
하지만 뺏을 수는 없잖아요. 그건 여러분 것이니까.
우린 모두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 그 강력한 무기를 품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내 미천한 수준에 고개를 떨굴 때가 많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이걸 계속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여기 브런치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여있어 작문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 곳입니다. 목마른 나의 필력을 늘려나가기에 대단히 좋은 환경이에요. 사는 동안 소재가 떨어질 일이 없는 글짓기, 그것을 하러 오신 여러분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스승이 가득한데 무얼 망설이시나요?
과정이 어렵고 느리다면 그만큼 골고루 익어가는 중이라 믿어보세요. 잘 못하니까 그만두면 평생 잘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 느껴지면 그것 또한 참으로 골치아프답니다. 배울 것이 많다면 그걸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에요.
여기서 이거 배우고,
저기서 저거 배우고,
도대체가 일관성이 없어서 정체가 혼미해지는 시점이 있어요. 그럴 땐 나의 목표를 상기해 보세요. 전혀 달라 보이는 것들이 결국엔 어떤 합치점에서 만나 시너지를 이루는 날이 옵니다.
저는 단지 글을 쓰고 싶었지만 더 예쁘게 쓰려고 글씨를 배웠고 글씨를 쓰려니 펜과 종이에 대해 알아야했어요. 유튜브에서 배운 영상편집이나 클래스101에서 배운 마케팅기술 등은 언젠가 내 글을 확장시켜줄 도구가 될테죠.
처칠은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해서 전진하라'라고 했습니다.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지옥에 머물게 된다는 걸 알려주고 있죠.
그리고 잠재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는 체력과 지능이 아닌 노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처칠 짱)
우리는 겪어봐서 알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불안함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제 지지부진한 자아성찰은 집어치우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합시다.
경험의 조각과 찰나가 모여 자아가 되는 겁니다. 완성형 자아는 없어요. 진행형만 있을 뿐이죠.
따라서 우리에겐 지난 글보다 발행할 글이 더 많습니다.
한번 걷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노력해 걸어봐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딸에게,
그리고 브런치 작가님들께 드릴 쪽지를 적어보았어요.
덕분에 저도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준 쪽지이기도 하거든요.
애드워드 리 셰프처럼
처칠의 명언처럼
배우고, 쓰고, 또 배우고 쓰면서 끈기를 갖고 나아가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