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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21. 2024

2. 출산 앙코르를 외치다

응애 받고 한 번 더 가자고~

네 명의 아이는 모두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모두 각각의 이유로 유도분만을 했고 무통주사 따윈 없었다.

요즘 산모들 같지 않게 쌩으로, 그것도 억지로 문 열며 낳은 것이다.




첫 번째 임신기간 동안은 부른 배를 퉁퉁 치는 아기의 인기척을 느끼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근데 어떻게 낳는 거랬지?'


예정일이 다가오자 불현듯 무서워졌다. 

물리적으로 이 아기가 내 몸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임신출산대백과를 펼치고 분만시작부터 만출까지 친절하게 그려주고 있는 페이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임신 초반에 몇차례나 봤던 페이지였지만 느낌이 심히 다르다.


'이게 된다고?'


임산부 커뮤니티에 접속해 사실여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자연분만을 앞두고 얼마나 아플지에 대해 상상하며 몸부림치는 통과의례를 나 역시 겪고 있었다. 하지만 분만이란 건 연습이 안 되는 것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산통의 후기들은 내 마음을 나약하게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던 한 줄의 조언.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발상인가.

최대한 통증을 줄일 방법을 찾아 읍소하는 많은 예비맘들의 기대와 어림에, 이 사람은 따귀를 갈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냉랭한 한 마디로 내 마음은 평온을 찾았다. 명상을 하라느니 복사뼈의 어딘가를 누르라느니 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하등 도움이 안 됐다. 죽음의 통증이라... 이 이상의 것을 대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란 존재는 없는 냥 무감각하게 내려놓는 것이 낫겠구나. 지푸라기를 잡는 것이었다. 죽음, 그 '가늠할 수 없는 한계'라는 추상 속에서 안정을 찾고 나는 겸허히 출산가방을 꾸렸다.




유도분만 첫째 날은 촉진제가 잘 받지 않았다.

둘째 날 새벽이 되어서야 아이가 조금씩 내려왔고 산통이 시작됐는데, 약 네 시간 정도 죽음의 전조를 느꼈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태를 지나고 이승에서의 비상구를 열어젖히니, 그제서야 아이가 태어났다. 문 너머의 그 분에게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차갑게 인사했으나, 뒤늦게 내가 받은 답례는 망각이었다지..


나도 참 유난이라 느꼈던 날이 있었다.

생후 한 달 차에 맞는 예방접종을 하러 아기를 데리고 출산병원으로 향할 때의 일이다. 춥지 않은 10월이었지만 산후풍을 걱정한 엄마가 히터를 틀어놔서 몸이 노곤노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소름 돋는 추위에 부르르 떨며 깨어난 것이다. 차 안은 여전히 따뜻했고 아기도 내 품에서 잘 자고 있었다. 달라진 건 그저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것뿐. 인식도 하기 전에 반응해 버린 몸이라니, 나는 어린애처럼 병원 로비가 무서웠고 분만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주변시로도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누가 분만진통을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일개 통증이라 치부하지 말라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 




아무튼 나는 출산을 했다. 이건, '나는 엄마가 됐다'와는 다른 개념이다.

해내고야 말았다는 쾌거에 휩싸여 엄마되었음을 까맣게 잊었을 정도로 분만의 벽이 높았던 것이다. 애 낳고도 그렇게 철없던 내가 엄마공부를 미리 했을 리 만무하지, 무지의 마른땅은 속수무책으로 나를 건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예민한 아기와 산후우울증, 외로움과 싸워 이겨낼 방법으로 찾아낸 것은 우습게도 '다음 타자'였다. 첫째가 태어난 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분만의 공포는 망각의 서랍 안에 정리되고, 그렇게 나는 있지도 않은 둘째와 상상 속에서 만나며 설레고 있었다. 새로운 출산으로 육아의 고됨을 상쇄시키고자 했던 게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허나 아이를 낳아보니 이 만큼 내게 삶의 보상을 주는게 또 있을까 싶었다. 육아는 힘들지만 성장은 아름다웠다. 단지 나를 위해서, 내 마음대로 아이들의 생을 결정했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왕이면 비슷한 나이대가 좋잖아? 

원하던 딸을 먼저 낳았으니 둘째는 성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한 명 더 있으면 심장에 무리가 갈까?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낳아야 해.


별 시덥지 않은 걸로 남편에게 둘째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갑자기 찾아온 첫째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동기, 필요성절감, 합의 등이 들어간 계획임신이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하지만 계획이란 건 섬세하게 짜여진 환상이며, 소원성취라는 새해덕담과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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