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왜 자녀가 네 명인가요? A. 그러게요
결혼할 때쯤만 해도 내가 네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스물일곱 당시 나의 자녀계획은 서른 쯤 딸 하나 낳는 것. 그게 다였다.
그러니 넷째가 왔을 땐 어처구니가 없었겠지.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결혼 1주년 3일 뒤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계획은 성의 없던 소망으로 전락했다.
나는 에이전시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그 업계 대부분의 기획자들처럼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평범하고 빡센 일상을 살고 있었다.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가 끝나는 대로 승진과 연봉인상도 약속돼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신을 한 것이다.
직전 프로젝트 때 결혼준비+결혼+신혼여행의 삼단콤보로 업무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도 프로젝트는 문제없이 진행될 거라고 안해도 되는 말을 해버린 것이다.
회사는 임신에 대해 그저 개인사정이라는 입장이었다. 별로 축하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지레 고개를 숙여 주어담을 수 없는 말을 했기에 스스로를 더 쥐어짜며 소임을 다 해야만 했다.
속이 이렇게 지랄맞을 수도 있냐는 입덧의 충격과 공포가 이어졌다. 잔잔히 풍겨오는 헤이즐럿 향에 제발 나도 한스푼만 달라고 마음속으로 길길이 외치던 임신 초기를 버티고 안정기에 접어들자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임산부 배려문화 따위는 없었던 그 회사는 내가 힐을 신었다고 구박하면서도 업무보고를 빨리 하라며 성실히도 독촉하는 곳이었다.
네, 뭐.. 하죠. 합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기본적으로 야근을 했지만 그날은 내 프로젝트에만 이슈가 생겨서 혼자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옷을 여미고, 새벽2시로 향한 시계를 보며 마지막 퇴근자로서 사무실 문을 잠갔다. 임신 5개월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날 몇주간 화가 쌓일 대로 쌓인 남편이 폭발을 했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에스코트한다고 퇴근 후 자주 나를 데리러 왔었다. 하지만 임신이고 나발이고 회사에서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던 나는 허구한 날 일이 많다며 저녁만 대충 먹고 남편 홀로 신혼집으로 돌아가게 했었다.
먹이 주러 잠시 들린 집사도 아니고, 임산부를 이렇게 부려먹는(?) 것도 열이 받는데 나의 우유부단한 태도에서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2시 넘어 잔업 꾸러미를 잔뜩 들고 집에 도착한 내가 신발을 벗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거 아침까지 해야 되니까 거실에 불 좀 켜줘'라고 말했던 것이다.
남편의 눈에 벌건 불꽃이 보였다. 정말로 벌게졌었다. 나와 태아를 돌보지 않는 무책임함과 그 시간에 깨어있는 남편의 의중에도 무심했던 나의 이기적인 시야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나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잔업 꾸러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도 잠만 들고 말았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한 탓에 전 회사에서 가끔 업무전화가 왔는데,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에서 꼼지락 하는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태동이구나! 이 얼마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촉인가! 내 몸이면서도 한번을 만지지 못하는 그곳으로 모든 감각들이 만져보겠노라고 모여드는 느낌!
그렇게 첫 태동을 느끼고서야 임산부로서 공연히 해야 할 것들을 바쁘게 시작했다. 초음파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고 맘카페에도 가입했다. 임신 5개월인데 바로 어제 임신한 사람처럼 별게 다 신기했다. 운 좋게 태교모임에 당첨돼 참석할 때도 시상식에 가는 기분이었다. 박람회는 별천지였다. 나도 임산부인데, 커뮤니티에 있는 임산부들이 신기했다. 연예인도 연예인 보면서 신기하다던데 이게 그런 느낌인가 싶었다.
나는 그렇게 초보가 초보 하는 첫째 임신 생활을 보냈다. 어쩌면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진지하게 가족구성에 대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안았을 때, 왜 조물주는 인간의 감정에 한계를 정해놓지 않은 것인지 도대체 이 벅찬 마음을 한땀씩 풀어놀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래, 사랑뿐이구나. 내가 여태껏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을 모두 모아 제곱을 걸어야만 이 사랑이 탄생하는 거구나. 참 좋다. 이 사랑이 내 속에 들어차 있다면 영생을 얻을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