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둘째의 임신 소식을 전하니 마치 모두가 나의 마음고생을 지켜봤던 것처럼 과분한 축복을 주었다.
내가 둘째를 임신했다.
내 삶의 지분을 독차지하던 첫째 딸은 '진짜 형님'으로서의 면모를 시시때때로 자랑했다. 내가 밥이라도 남기면 동생을 굶긴다고 작은 눈을 댕그랗게 떴다.
자,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해보자.
전업맘으로 3년을 살며 첫아이에게 쏟았던 정성이 떠올랐다.
당시는 닷컴이 붐을 일고 커뮤니티 서비스의 인기가 절정에 다다르던 때였다. 젊은 엄마들 대부분은 공신력 있는 두어 군데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취했기에, 어디의 뭐가 좋더라는 천편일률적인 유행이 정답처럼 돌아다니곤 했었다. 칠렐레 팔렐레 줏대 없던 내가 광고쟁이들의 큰그림에 낚여주는 일이 잦아지자 남편이 일침을 날렸다.
"적당히 해."
남편이 말한 적당선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까진 그 후로도 시간이 좀 걸렸다. 아, 목적도 없는 소비를 정성이라고 포장하고 있었다니. 첫 육아의 후회가 두 번째 육아의 스승으로 활약하며 조금은 소신이란 걸 쌓게 되었다.
카카오톡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시작됐다.
스마트폰이 내 손에도 쥐어졌고, 동네 맘카페 회원들과 번개모임을 갖기도 수월해졌다. 겪어보니 다른 아이의 옷을 물려받는 것도 흔한 일이었더랬다. 그게 뭐라고 옛문물 보듯 조심스러웠는지, 내가 겁먹었던 것보다 세상은 훨씬 편하고 좋았다.
그렇게, 전보다 즐거운 임신 생활을 누렸다. 재취업의 시름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타이타닉 45캐럿 목걸이의 보잘것없음을 논하며* 깔깔댔다. (*내 자식은 값어치를 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주제의 아무말대잔치 中)
아기옷을 다시 꺼냈다.
둘째를 포기하며 첫째 딸이 쓰던 옷이나 용품을 장롱에 처박아뒀었는데, 예비조카가 아들로 확정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어 자리만 차지하던 중이었다. 짐짝 취급받던 이 보따리에 감격이 흘렀다.
여자아이의 발그레한 옷들을 보니 둘째 아이도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껏 개어 서랍에 정리해 놓고 태교 삼아 걸어둘 만한 아기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다 예뻐서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에 턱이 아파 만져봤더니, 언제부터였는지 광대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