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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22. 2024

6. 뭐 둘째는 다를 줄 알았니?

아니요. 아무 생각 없었는데요.

첫째딸을 출산했던 병원은 산과를 없애고 부인과만 운영하고 있었다.


어째서...?


알고 보니 무통분만을 실시하지 않아 인기가 떨어지기도 했고 어화둥둥 산모를 떠받들어주지 않는 문화에 자존심이 상한 보호자가 악성 민원을 넣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통증에 겁이 많기로 유명한(?) 내게는 그 원장님의 냉혈한 스타일이 어쩌면 더 맞았을 수도 있는데, 아쉽지만 근처의 다른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규모가 훨씬 크고 병원 곳곳 유익한 정보가 가득해 슬기로운 임신생활에 최적화 된 공간이었으며 산모 뿐 아니라 모든 환자에게 VIP대접을 해주는 곳이었다.




내 담당의는 내가 점점 밥을 잘 안먹는 것 같다며 항상 날 의심했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 웃어 넘겼는데 큰 병원답게 각종 검사가 난무했던 터라 나의 앙상한 식생활은 금방 들통나고 말았다.


결과: 헤모글로빈 수치* 8

(*정상수치는 12 이상으로 분만을 위해 최소 11까지는 올려야 한다. 8 정도는 철분제만으로 해결이 어렵고 6 이하는 응급상황이라 수혈을 받아야 한다. 철분주사 한 대당 0.5~1 만큼 올릴 수 있다.)


의사언니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이걸 보고도 지금 어딜 가야된다고요?"

"네!"

"......."

"왜요?"

"철분주사 좀 맞고 집으로 가시죠. 지금 어디 못가요."


나에게 빈혈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단어였다.

연약한 여인이 '아앗!' 하며 비틀거려야 등장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 병명은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남편의 합리적 잔소리에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수시로 철분주사를 맞으러 갔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수치를 안정권에 올려놔야했다.




그렇게 달리기 하듯 맞이한 유도분만 당일. 무슨 자신감인지 무통분만은 거절했다.

첫째의 출산 때가 떠올랐다. 내가 맞이할 이 고통은 겪어본 고통이었다. 가늠할 수 없었던 지난 때와는 달리 이제는 알고 있어서 오히려 손이 달달 떨렸다. 이러나 저러나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육아와 함께한 임신기간이어서 분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없었지만, 음, 경산은 좀 더 수월하다지.. 아니 꼭 그래야 할거야. 엄마가 밖에 계시거든. 고상하게 낳겠어.


하지만, 마음처럼 딱 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외려 우스운 분만 중 품위유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나란 인간은 티라노사우르스의 언어로 포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건 무슨 조화지.


"몇 시으으에요?"

시계를 보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는가.

사실 그건 현재시간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애는 언제 나오냐는 질문이었다.

"몇 시에 끝..끄.. 으..흐...에..어요? 흐응..으"

"산모님이 잘 하면 금방 끝나요! 얼굴에 힘주지 말라고요!"


...

그거 나도 안다고요.

그냥 안하면 안되나?

수면마취 해달라고 할까? 그럼 못낳나? 경산부 수월하다고 한 사람 나와. 선생님 언제 와? 엄마는 제발 병원 밖에 나갔으면 좋겠다. 1분이 왜 1분이 아니지? 1분이 뭐였더라.


억겁의 1분동안 내가 했던 아무생각은 3천만개 정도 될지 싶다.

내가 하도 생쑈를 해서인가 아기가 태변을 봤단다. 이제는 낳는게 아니라 구출해야만 했다. 정수리의 기운까지 긁어모아 온 힘을 내려보내어, 분만을 마쳤다.


"어머! 세상에! 너무 예뻐!"

언제나처럼 나의 주치의언니는 상냥했다. 헐떡대는 티라노사우르스를 대할 때마저도.


둘째아기를 안았다.

쌍커풀도 진한 것이 정말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순대꼬다리로 맹연습을 했던 남편이 탯줄을 잘랐고 나는 소정의 절차를 거치며 인간의 숨소리를 되찾았다.


산모 최우선주의였던 그 병원은 이전 병원과는 달리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로 데려다 주었다. 걸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민망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분만실은 방음이 잘 안되고 있었고 엄마는 문 너머에서 나의 비명을 고스란히 들으며 사위 욕을 엄청 하고 있었더랜다. 내가 말을 제대로 못하니 대신 해주셨나보다.


내 편에 서서 친구가 되어줄 딸 둘.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그려갈 장및빛 미래엔 그저 오붓한 행복만이 들어차 있었다. 빨리 집에 가서 첫째 딸을 안고 네가 언니가 되었다고 축하하고 싶었다. 함께 보낼 시간이 기대됐고 예상을 뒤엎는 세상만사에 대한 두려움은 낄 곳이 없었다. 완성이라 할만큼 비로소 풍요로워졌으나 나의 내적 성장이 알아서 따라와줄 거라고 믿어 넘긴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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