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돼서 싫은가봐요.
4개월 내로 둘째 아이의 임신에 성공을 한다면, 첫째 딸과 두 살 터울이 될 수 있다.
두 살 터울. 얼마나 좋은가.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좀처럼 계획적으로 살지 않았던 내가 이 정도로 설계를 했다면 이건 당연히 이룰 수 있는 목표라 생각했다.
'4개월을 뭐하러 기다려, 바로 다음 달이면 나는 임산부일텐데.'
라는 오만은 일 년이 지난 후 고쳐질 수 있었다.
수년간, 혹자는 십 수년간 겪는다는 난임의 고통을 나는 고작 일 년간 맛보기 하면서 회한하기 이르렀기 때문이다.
초반 몇 달째, 거듭되는 임신 실패로 시한이 무한대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에 둘째는 없는 거구나 하다가도 느닷없이 첫째 딸에게 머리를 긁어보라며 되지도 않는 미신에 기대어보곤 했다. (아이가 머리를 긁을 때 앞쪽을 긁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일찍 온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숙제를 시킨 날 남편이 회식을 하고 오면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사람이 아무 관심도 없고 나 혼자 난리 요동을 치는 것 같아서 날마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고문이라 여겨질 정도로 쓰디쓴 익모초를 다려마셨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생강도 먹어봤다. 포기하면 오더라는 난임카페의 조언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포기해 봤지만, 진심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서야 패배를 인정했다.
안되면 말라지. 자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은 목메기가 싫어졌다. 첫 조카가 올케 뱃속에서 5개월을 맞이한 그 시점에 나는 비로소 진심 어리게 축하할 수 있었다. 어찌나 못된 심보였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포기를 한 뒤로도 하루 몇 번씩은 지난 일 년을 상기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미련일 뿐 후회가 되진 않았다.
첫째에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얘기했던 게 미안해졌다. 길거리에서 스쳐가는 수많은 동생들에게 자기가 '진짜 형님'이 될 거라고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자랑하던 아이였다.
이쁜 녀석.. 귀엽기도 하지. 이 아이에게 집중하자. 참됨을 가르치고 단단하게 세상살이 해보자꾸나.
나는 변화해야 했다. 임신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부조리를 느꼈다. 늘상 조급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우선이어야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것이 골자였다. 급한 성질과 감정적인 태도를 바로 잡아 곱게 물려줘야지.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세상이 변했다. 고단 속에서 울상짓던 나는 이토록 어여쁜 딸이 있는 세상행복한 엄마였다.
생각해 보니, 식탁에 던져놨던 배란테스트기가 아침이면 한 줄로 정렬돼 있던 수많은 날들에서 남편의 사랑을 찾을 수 있었다. 수족관을 바라보는 딸을 향해 한번 만져보라며 생선을 건져 올리는 생선가게 사장님에게서, 비린내가 아닌 애정 어린 관심을 찾을 수 있었다. 놀이터에 있는 엄마들이 왜 항상 간식을 한두 개가 아닌 한웅씩을 들고 다니는지, 시장 할머니가 우리 모녀가 지나가는 걸 왜 끝까지 빤히 바라보고 있는지, 마주 오던 자전거가 우리를 보면 왜 갑자기 멈추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내 세상은 나의 시각만 달리하면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었던 거였는데 왜 이제껏 나무에 매달려 숲을 느끼지 못했는지, 한동안 깊은 참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