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놓고 보면 미안한 일이야 오랜 시간 함께 할수록 더 많이 생겨나는 법. 어떤 일은 피장파장이니 은근슬쩍 퉁 치기도 하고 어떤 일은 시간이 한참 지나 얘기 나누며 풀기도 하고 어떤 일은 그냥 맘에 두고 이따금 떠올리면서도 고집스럽게 모르쇠하기도 한다. 그런 여러 일들 중에, 그 때 그 순간 이미 그에게 너무나 미안했던 일이 이따금 떠오른다.
딸은 예정일에 태어났다. 당시에 이미 많은 이들이 조리원에서 120만 원인가 200만 원인가씩 주고 산후조리를 할 때였는데 나는 그가 산바라지를 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임신 초기에 하혈이 자주 있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단 처방을 받는 바람에 타지에 살던 나를 친정 아부지가 당신 집에 데려다 놓은 후 함께 지내며 의논한 결과였다.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하기로 했으니 친정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 중 여의사가 운영하는 곳을 찾아 정기적으로 다녔다. 마침 인근의 큰 병원에서 그 지역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산전산후 교육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교육 일정에 맞춰 다니기도 했다.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교육이었어서 내 관심사와도 맞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심지어 출산 후 자신의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도 않았는데 출산을 별 탈 없이 잘 했는지 안부전화를 하며 축하를 해주기까지 했다.
예정일 전전날은 일요일이라 남편도 함께 있었으나 아이가 나오지도 않았으니 남편은 월요일에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로 출근을 하고 나는 하루 종일 가진통을 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진통 간격이 잦아졌을 때 아부지에게 지금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친정에서 병원으로 출발한 시각이 밤 12시. 부모님과 병원에 도착해 이런저런 산전 처치를 받고 일단 분만 대기실로 안내되었는데 일반 병실이 아니라 온돌방이었다. 아부지는 밖에서 기다리고 그가 내 옆에 앉아 점점 자주, 심해지는 진통을 함께 겪는 중에.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놓치고서 마구 밀려오는 진통의 강도만큼 기운 세게도 콱! 움켜잡은 게 다리를 접고 앉은 그의 무릎이었다. 문제는 그가, 관절염 환자였단 것. 내 기억에 출산 과정 내내 비명을 지르지는 않고 용을 쓰는 소리는 낸 것 같은데 이때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들었으니. 산통으로 나올 법한 비명만큼이나 아파하는 소리가 무릎 통증으로 터져나온 것이었다.
“엄마, 괜찮아?”
물으며 미안한 맘이 밀려오려다 더 큰 진통에 그 맘이 밀려가던 시간들. 진통과 진통 사이 그래도 여유가 있을 때 내가 그에게 사과를 했던가? 단 둘이었을 때 일이니 다른 누구에게 확인도 할 수 없는 기억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