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by 버리이아

김초엽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동명의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관내 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7개의 단편 소설로 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성인식에 갔다오는 시초지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 한 주인공 데이지가 성년이 되기 전에 시초지를 찾아 떠나면서 시작합니다. 순례길을 떠나고 꼭 1년 후에 돌아오는 이동선. 그러나 늘 떠난 사람보다 적은 수의 사람이 순례길에서 돌아옵니다. 데이지는 돌아오지 않은 순례자들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시초지로 떠나는 이동선과 순례자의 몸에 걸어주는 금속 토막 하나. 그리고 망각을 불러 일으키는 비밀의 음료까지 순례길의 시초지는 망각의 장소입니다. 순례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마을에게 잊혀져 가죠.


순례길에 돌아온 대다수는 마을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즐거워 하지만 간혹 몇 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표정을 짓습니다. 한 남자는 데이지에게 시초지에 '두고 온 것' 때문에 슬프다고 말합니다. 데이지는 마을의 역사에 비해 그들의 역사가 너무나 짧다는 것과 마을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의 거대한 금서구역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데이지는 마을의 설립자 릴리와 올리브 중 올리브의 기록을 발견하죠.


올리브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릴리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이 도시를 만들었다'

마을을 떠나 도착한 이타사. 이타사는 마을과 달랐습니다. '차별과 구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마을과 달리 이타사는 우성유전 시술을 받은 개조인간과 열등한 유전을 가진 일반 인간으로 구분되어 있었죠. 이 차이는 돈의 차이였으며 곧 사는 곳도 구분되어 집니다. 개조인간은 도시의 중심에 살고 열성인간은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죠.


올리브는 평생 마을에서 접하지 못 했던 이 모습에 심한 혼란을 겪습니다. 그리고 개조인간 우성유전 시술을 릴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마을을 만든 릴리가 차별의 근원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릴리는 자기의 이 불행을 유전병 사전 진단을 받지 못한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나는 삶을 모두에게 주기 위해 우성유전 연구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는 역설이게도 가난과 부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만듭니다. 부자일수록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더 좋은 우성 배아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릴리는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클론 배아를 만들어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가장 좋은 특성들을 유전자에 새겨 놓습니다. 릴리의 클론. 올리브였죠. 릴리는 배아 상태의 올리브에게서 자기와 같은 유전 결함을 발견합니다. 릴리는 배아 상태의 올리브를 폐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릴리와 같은 유전 결함을 가진 올리브를 폐기한다는 것은 릴리 자신의 삶의 존재와 가치를 같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죠. 릴리는 올리브를 폐기하는 대신 올리브에게 그녀가 자기의 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세계를 선물해줍니다. 흉측한 얼굴을 가져도, 팔 하나가 없어도 누구도 불행하지 않는 마을을 말입니다.


데이지는 올리브가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올리브는 이타사에 만난 그녀의 연인과 함께 릴리가 남긴 비극의 원죄인 인간 분리주의에 맞서 싸우다가 시초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데이지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마을보다 불행하고 괴로운 시초지에서 마을에서 못 겪은 더 큰 행복을 경험했었던 것이었죠. 그 행복의 원천은 '사랑'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김초엽의 SF소설들은 일관되게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사랑'을. '스펙트럼', '공생 가설','관내 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그리움'을. '감정의 물성'은 인간의 감정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과학의 발전에 비례하여 인간의 감정을 잃어가거나 갈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 속에서 불행을 감수한 사랑을 갈구하고,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족을 향해 기약 없는 우주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이 감정을 '애틋함'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녀의 소설은 읽고 나면 뭔가 아련함과 동시에 그리움을 주기 때문이죠. 작가는 과학소설과 애틋함이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두 교집합을 멋지게 엮어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데 그것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감정의 물성'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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