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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부마 Oct 17. 2024

5. 도쿄에서 얻은 세 가지 교훈

새로운 곳에 가야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일단 3개월만 있어보자." 스스로에게 말했다. 짐도 풀지 않은 채 청소부터 시작했다. 꼬질꼬질한 해바라기 조화를 버리고 변기를 깨끗하게 닦으니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도쿄에는 바퀴벌레가 많다는 소문에 가까운 편의점에서 바퀴 퇴치제를 사 왔다. 동그란 용기의 뚜껑을 열자 쉭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가 방 안으로 퍼졌다. ‘나쁜 벌레도, 나쁜 생각도 다 사라져라...’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룸메이트 은숙 언니와 처음 만났다. 열 살 이후로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건 처음이었다. 언니는 자면서 코를 골고 이를 갈았다. 밤마다 이어 플러그를 끼며 잠을 청했지만,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언니는 낮에는 전문대 여행과에 다니고, 저녁에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사우나에서 일했다. 언니가 집에 없는 시간만큼은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남의 간섭과 관심에서 벗어난 시간과 공간은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익숙한 한국을 떠나 혼자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과연 여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왔다.


도쿄도 아라카와구 니시닛포리. 일본 사람들은 이곳을 ‘시타마치’라고 불렀다. 한국어로 서민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주쿠, 시부야, 롯폰기 같은 번화가와 달리, 니시닛포리에는 작은 가게와 주택이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나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 들러 야채 주스 하나와 삼각 김밥을 사서 학교에 갔다. 교실은 비어있었고,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학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고 9시에 시작한 수업은 오후 1시에 끝났다.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서 1인용으로 포장된 식재료와 반찬을 사서 점심을 해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동네를 산책했다. 저녁에는 복습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열 시쯤 잠이 들었다.


스스로 정한 루틴에 따라 생활하면서 마음도 안정을 찾아갔다. 규칙적인 생활은 외로운 타지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먹고, 마시고, 걷는 평범한 일조차 신선하게 느껴졌다. 매일 마주하는 작은 일상이 나를 위로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면 우울한 감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주말에는 도쿄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야마노테선을 타고 번화가로 나갔다. 신주쿠에 있는 키노쿠니야 서점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오모테산도 거리를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롯폰기 츠타야에서 좋아하는 CD를 빌려오기도 했다.


도쿄에서 생활하며 일본 사람들이 만든 물건, 음식, 인테리어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감각을 배워나갔다. 단순하지만 섬세한 디자인,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 깔끔하고 효율적인 인테리어는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작은 공간에서도 최대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생활 방식은 넓은 집과 편리한 물건을 선호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예절과 배려는 그동안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상대를 존중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배워갔다.




하루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마침 배가 고팠기에 냄새를 따라갔다. 그곳은 ‘메시야(밥집)’라는 작은 식당이었다. 안에는 2인용 테이블이 다섯 개 놓여 있었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얼굴도 몸도 동글동글한 중년 여성이 웃으며 인사했다. 자리에 앉아 벽에 붙어 있는 메뉴를 훑어보았지만, 한자와 히라가나가 마구 섞여 있어 도저히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먹는 음식을 곁눈질했다.


“저 음식 이름이 뭐예요?”

“미조레니예요.”

“같은 걸로 주세요.”


잠시 후 가자미 미조레니, 쌀밥, 된장국, 채소 절임이 담긴 그릇들이 나왔다. '미조레니'는 생선을 간장, 미림, 설탕을 섞어 만든 소스에 무를 듬뿍 갈아 넣고 조린 요리였다. 혀에 올리자마자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생선 살의 감촉과 시원한 무 맛이 목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낯선 도시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긴장감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두 번은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혼밥’을 즐기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느 날, 식당 문에 ‘아르바이트 모집’ 전단이 붙어있었다.

“저 여기서 아르바이트하고 싶은데요.”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사장님은 키가 작고 머리가 희끗한, 눈꼬리가 내려간 인상의 좋은 분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나와요.”


아르바이트 첫날, 실내에 꽉 찬 담배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일을 가르쳐주던 아주머니에게 “죄송하지만, 저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문을 마음대로 열어놓아도 좋으니 딱 한 달만 해보라고 설득했다. 단칼에 거절할 수 없어 알겠다고 말했다. 딱 한 달만 버텨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손님들의 주문을 정확히 처리하기 위해 메뉴를 외웠다. 실수할 때마다 손님들과 동료들은 “치짱, 괜찮아”라며 이해해 주었다. 메뉴를 외우는 데 몇 주가 걸렸지만, 일본 음식 이름에 익숙해졌다. 주문을 틀리지 않고 처리할 때면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손님을 대하면서 실수에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과 사회성도 기를 수 있었다. 사장님은 갈 때마다 연어 주먹밥을 싸주며, 일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작은 성취들이 쌓이며 자립심과 자신감을 회복해 갔다. 낯선 곳에서 생활하면서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마음이 따뜻한 동료들과 친절한 손님들과 지내면서, ‘일본인은 뻔뻔하고 오만하다’는 편견이 사라졌다. 도쿄에 살면서 ‘일본인은 이렇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일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자, 전문학교 진학 설명회에 갔다. 하지만 마음이 끌리는 전공은 없었다. 대신 다양한 전공과 사람들을 접하며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었다.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될까? 배우만큼 가슴 두근거리는 꿈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진로에 대한 고민만 빼면 일상은 즐거웠다. 개성 있는 미술관을 다니며 흥미로운 전시를 보고, 벼룩시장에서 멋진 리바이스 청자켓을 단돈 오백 엔에 사기도 하고, 벚꽃 나무 아래에서 캔 맥주를 마시고,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바라봤다. 배우라는 꿈을 좇느라 누리지 못했던 청춘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환경의 변화는 스트레스를 줄여주었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의 8개월 동안 새로운 꿈은 찾지 못했다. 대신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소중한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안전지대를 벗어나 도전할 수 있는 용기다. 혼자 낯선 곳에 가는 게 두렵고 무서웠지만, 막상 해보니 괜찮은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었다. 한 번 성공하고 나니 다른 곳에도 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둘째,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생활력이다. 요리, 청소, 빨래를 하며 월세와 전기세도 직접 내봤다. 나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작은 성취들이 하루하루 쌓여 자신감이 높아졌다.


셋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이다. 전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봤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도쿄에서 혼자 살았던 시간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서야 내가 얼마나 강하고 유연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외롭고 두려웠지만, 낯선 곳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 다른 문화와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가 알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나의 시각도 더 다채로워졌다. 새로운 곳에서 자립적으로 살았던 경험은 앞으로 어떤 도전이 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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