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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12. 2018

잘 지낸다는 거짓말

나를 들여다보는 일 | 나는 잘 지내지 않아요, 결코.

잘 지내냐는 물음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말한다.

‘잘 지내’라고.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그럼~ 나야 늘 잘 지내지! 너는 어때?

-나도 잘 지내지~


답이 정해진 질문, 그래서 더 의미 없는 대답. 세상에 잘 지내지 않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잘’ 지낸다. 여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판에 박힌 대답 들을 걸, 왜 이런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는 것일까. 잘 짜인 각본과도 같은 질문과 대답. 그럼에도 계속 묻고 답한다. 




쳇바퀴 거주민 다람쥐 - A씨

드디어 퇴근. 회사라는 감옥에서 탈출한 나는 자유를 얻었다. 귀하디 귀한 이 시간. 무얼 할까 벌써부터 들뜬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듯 집에 돌아온대도 그 길은 마냥 즐겁다. 요즘은 누굴 만나기보다 아무도 없는 집이 최고다. 가는 길에 맥주랑 과자 몇 봉지 사가야겠다. 밀린 예능도 실컷 봐야지. 남 시선 의식 않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다.

왜 사는 걸까


칼 같이 퇴근해서 집에 와도 저녁 8시. 애석하게도, 들뜬 마음을 감당하기엔 눈꺼풀은 맥을 못 추곤 무기력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걸까. 화들짝 놀라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출근시간이다.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 뒤론 일상의 반복이다. 이미 입력되어 있는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허물처럼 벗겨진 옷가지들을 주워 입고 어제 가방 그대로 들쳐 멘다. 뭐니 뭐니 해도 양치는 회사에서 해야 제맛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그 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어제와 같은 오늘,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지금. 이런 하루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이 생이 끝이 날까. 나는 잘 지내지 않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남자 - B씨

우리는 어릴 적부터 어디서든 늘 착하게 살라고 배웠다. 어려운 친구가 있음 도와주고, 누군가 못된 소리를 해도 참고 웃을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살면서 보니 그 말은 틀렸다. 착한 사람이 사회에 나오면 그저 호구일 뿐이다. 

언젠 착하게 살라며!!


수업 후 청소시간이 되면 호구와 호구 아닌 것들이 나뉜다. 쓰레기통을 비운다거나 물걸레질 같은 남들 하기 싫은 일은 늘 호구 몫이다. 약은 친구들은 빗자루 들고 눈치껏 요령껏 청소를 시작한다. 입사 후에도 마찬가지다. 품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들 이리저리 피하기 바쁘다. 결국 제일 만만한 사람, 즉 호구가 그 일을 떠안게 된다. 제때 일을 끝낸 것뿐인데… 불평을 못하는 호구는 본의 아니게 회사에서 업무능력이 ‘가장 탁월한’  사람이 되었다. 타의적인 ‘고성능 노예’가 된 것이다. 점심 식사는 서류 더미 위에서 김밥 한 줄을 먹는다. 


정치가 생명이라던 김대리.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부장과 꼭 붙어 나가던 김대리는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돌아왔다.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코빼기도 안 보이던 그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 상대방 위해 하는 말과 행동들이 실상 자신의 이득과 연관된 일일 때, 우리는 이들을 ‘여우’라고 부른다. 내 눈앞에 선 여우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 내가 착해서 그런 거라고. 그렇겠지. 나같은 사람이 있어야 네가 일을 덜할테니까. 


이때 울리는 문자 한 통. 방금 신용카드 결제가 정상적으로 됐단다. 어머니께서 결국 등산복을 사신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의 새 옷 자랑이 여간 거슬렸던 모양이다. 식비, 공과금, 월세, 교통비, 통신비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지출까지… 이로써 다음 달 월급도 스치듯 안녕할 예정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착한 효자라고 동네 아주머니들 입에 오르내리겠지. 이게 내가 진짜 원한 걸까. 나는 잘 지내지 않는다. 



No.5보다 암모니아 향♥ - C씨

직장인에게 제1의 휴식장소는 단연 화장실이다.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데. CCTV도 이곳은 범접할 수 없다. 사실 이곳에서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포털사이트 뒤적거리는 것뿐. 특히 SNS에서 남들 인생 엿보기. 세상만사 모두 ‘행복투성이’다. 여기도 기쁘고 저기도 신이 나 죽겠다. 모두가 행복 강박증에라도 걸린 것인지 이곳 세상에선 부럽고 예쁜 것들만 가득하다. 알고 싶지 않은데 자꾸 알려준다. 보고 싶지 않은데 계속 보인다. 


이곳 세상이 진실이라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현실은 거짓이다 보니 더 씁쓸하달까. 그럼에도 여기를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뒤집어지는 건 또 왜일까. 성숙한 어른은 타인의 기쁨을 함께 나눌 줄 안다고 했다. 나는 (성숙한) 어른이기에 함께 웃어야 한다. 화장실 문에 붙은 거울 속 내 얼굴이 보인다. 변기 위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죽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 그리고 어디서 풍겨오는 화장실 암모니아 향. 행복하지 않은 나는 남의 행복에 진심을 담을 수 없다. 나는 잘 지내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잘 지내지 않는다. 모두 입에 거짓말을 달고 산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태연하게. 언제쯤이면, 이 가면을 벗고 괜찮지 않다고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될까. 잘 지내냐는 질문에 해당하는 답은 한 가지가 아니다. 우린 그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웃어야 한다는 위선, 강한 사람만 인정하는 폭력… 정상은 옳은 것, 비정상은 틀린 것이라 판단하는 분위기에 너도나도 거짓가면을 쓰고 산다. 물론 이후에 되돌아올 상대방의 질문에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서일 수도 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진 말자. 내가 정말 괜찮을 때 말할 수 있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아니, 난 잘 지내지 않아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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