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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19. 2018

군중 속 혼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혼자가 편하다고 나를 설득시킨다. 나는 이제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여기 세상 혼자 사는, 남자가 있다.

그는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무장했다.


남자는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탕비실에는 이미 많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눈다. 그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적당한 미소와 고개 숙임, 더 이상의 대화는 차단된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하는 일은 헤드셋을 끼는 것이다. 귓바퀴 전체를 감싸는 그것에 모든 '소음'은 제거된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그를 둘러싼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풀풀 흩날리는 먼지. 어디를 거쳐 어디로 향하는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존재. 그에게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먼지 같은 일이다. 종일 나누는 대화라고는 지극히 업무에 관한 것. 어떠한 틈도 내주지 않겠다는 듯, 격식 있는 말투와 일관된 무표정으로 모두를 대한다. 이쯤 되면 그는 성능 좋은 로봇에 불과했다. 이 로봇은 자신이 옳다 여기며 되려 주변 것들을 안쓰러워했다.


왜 회사 동료와 사적인 관계를 맺을까?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약한 사람들.


관심병사

주변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대상. 이 남자의 별명이었다. 투명인간이길 자처했지만 그런 그의 행위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동료들뿐만 아니라 상사들도 그를 어려워했다. 매일 입고 다니는 검은 옷에 자신을 숨겼다. 모든 것을 외면하고 산다. 그 과정에서 자유로움을 체득했다. 온전히 혼자일 수 있을 때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관계에 목매는 사람들을 나약하다 평가했다. 혈육이라고 다를까.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 날 때부터 혼자였던 사람마냥 가족들도 외면했다.


어둠 속에서 소리가 나지도 않는 TV 화면만을 멍하니 보는 어머니. 죽은 자의 눈처럼 생기 없는 그녀의 외로움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우기지만 결국 모든 일을 망쳐버리고 마는 아버지의 노쇠해진 것 그리고 듣는 이 하나 없는 허공에 끊임없이 말하는 동생의 애정결핍까지. 심지어 늘 집 안에 갇혀 바깥 세상을 갈망하는 강아지에게도 아주 철저히, 눈감아 버린다.


집에 돌아와 그의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장면에 물속에 들어간 듯 숨이 턱 막힌다. 표정을 잃어버린 그는 스스로를 방에 가두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고 편안함을 느낀다. 방문을 열면 사랑을 갈구하는 것들이 득실댄다. 그들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모르기에, 차라리 그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나만, 내 멋대로, 자신을 위해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쳐놓는다. 귀 닫고 눈감고, 또 그렇게 입 다물어 버리기로 한다. 어떠한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그들 속에 누워있다. 그는 계속 중얼거린다.


어떤 것에도 매여있지 않노라고.

자신은 결단코 자유롭노라고. 외롭지 않다고….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 황지우 <뼈 아픈 후회>



이번에도 그는 사랑을 잃었다. 분명 사랑을 갈구하고 애원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애정들이 마음속 한가득인데, 왜, 도대체 왜, 모두들 자신을 거쳐가면 온몸이 부서진 채 떠나가는 걸까.


그의 머리 속에선 늘 행복한 관계가 펼쳐진다.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어떠한 장애물 없이 뛰어갈 용기와 순수함이 있으며 자신을 결대로 쓰다듬어 주는 평온한 사랑, 그리고 그녀의 품 속에서 잠드는 무한정의 시나리오들. 그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이 함께 했다. 사랑을 주고 싶었고 관심을, 시선을 느끼고 싶었다. 다만 그의 사랑에는 정작 순수와 열정은 없었다. 행위 이전에 머리가 앞섰고 계산했으며 주저했다. 맘 놓고 사랑하지 못했기에 그는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본 적도, 무조건적인 희생도, 헌신도 그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빗장을 하나 더 풀어야 가능하지만, 그 빗장의 무게는 실로 무거웠다.


여태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 그것들부터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애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딘가 꽉 막혀있었다. 무거워 들어 올릴 엄두를 못 내던 빗장을 조금씩 들어본다. 말없이 식사만 하고 사라지던 지난날과는 달리 남은 자의 식사를 지켜본다. 엉겨 붙어 있는 깻잎에 끙끙대는 아버지의 서툰 젓가락질에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다른 쪽 깻잎을 붙든다. 낯선 기분이다.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누구의 눈도 쳐다볼 수가 없다.


얼마만일까. 식사 후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목줄을 쥐기만 했을 뿐인데,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표하는 생명체에 어찌할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애정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얻어지는 감정이었던가. 내친김에 목욕이란 것도 시켜본다. 서로의 체온을 나눠가며 더러움을 씻어내는 일. 그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함께 한 십수 년의 기간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 내내 강아지가 남자에게 꼭 붙어 앉아있다. 여태껏 불러도 오지 않던 강아지였다. 그때 남자는 미약하게나마 깨닫는다. 아마도 사랑이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그간 자신을 스쳐 지나간 사랑들이, 어딘가 부서진채 떠나간 사랑들이 원하던 애정이란 게 이런 '소소한' 것들이지 않았을까. 시선의 방향이 나 자신에서 상대로 옮겨가는 것. 표현하지 않고 머리 속에서 늘 그리기만 한 것들, 그것들에 대한 갈증들이 아니었을까.


사랑에 불완전하던 남자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기로 한다.

문제를 이해했고 해답을 알았기에 내일의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단, 한 순간에 다른 사람이 될 것이란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그는 더 이상 사무실에서 헤드셋을 끼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본다.

지금 그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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