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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야 사는 여자

어디까지 베껴봤니?

by 요인영


어깨를 외회전하는 삶

두 번째 이야기




조용하지만 결코 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남의 뜻대로 움직일 바엔 차라리 때려치우고야 마는 이 성질머리로 요가지도자과정(TTC)을 하고 있는 나는 선생님의 숫자 세는 타이밍을 벌써 열 번째 돌려보고 있다. 숫자 하나 못 세냐고 뭐라 하신다면 마음이 아프다. 강사의 숫자세기는 지휘와 비슷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사는 지휘자다라는 마인드이다. 속도, 세기, 흐름, 스타일을 익히고(베끼고) 호흡에 숫자를 얹어 리듬을 만든다. 시작과 멈춤을 정확히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나의 작은 손짓과 숨소리에도 반응하여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요가에서 잘 가르친다는 의미는 호흡의 흐름을 끊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언제 숨 쉴 건데? 선생님의 숨 쉬는 타이밍까지 놓치지 마.


들이마실 때 정말 마시고 내쉴 때 정말 내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도 못하냐. 하시겠지만, 앞에서 말하다 보면 숨 쉬는 타이밍을 잊는 건 애교 수준이다. 숨소리까지 베끼는 강사들 이러고도 피드백이 들어올 수 있다. 사실 이건 가르치는 선생님의 스타일 문제이기도 한데 거슬리는 건 모조리 지적당한다. 선생님이 한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가르쳤는데도 지적받는다 왜? 기분 탓이겠지만 이쯤 되면 '저 쌤 나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도플갱어처럼 똑같이 흉내 낸다고 해도 그 사람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리 말하고 가르쳤다는 걸 알지만 그 느낌! 이 아닌 것이다. 선생님이 한 말을 그대로 한 건데요?라는 반박을 할 수도 없다. 왜냐 너무 짜치니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일 하다 보면 납득되어 안 고칠 수도 없다. 이렇다 보니 나중에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베낀 강사가 다 가진 자가 되어 있다. (이래도 피드백이 들어오지만)


처음부터 내 언어와 색을 갖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수업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동안은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는데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방식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얀 백지 위에 커서를 볼 때와 같이 뭘 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수련 재방송 같지만 달달 외워서 자동으로 나오는 멘트만큼 고마운 것이 또 없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 모양 숨소리까지 보이고 들릴 때까지

상대의 틀어진 곳과 몸 쓰는 방향을 잡아낼 수 있을 때까지

이런 것을 볼 수 있게 되면 그간 몸에 베인 멘트에

내 언어와 느낌을 담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베끼는 방식을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상대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도록 나를 비우고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여 열린 채로 기다리는 것




요가는 문서로 기록하는 형태이기보단 공간 안에 몸으로 새겨 넣어 개개인의 의식에 남는다. 요가는 지금도 증식 중이다. 한 번도 흐름이 중단된 적 없는 의식이다. 난 한 명의 수련인으로 그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가의 깊이는 기록에 의해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결정된 것이 없다는데서 나오는 힘이다. 내가 배우는 선생님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물론 실용적인 방법과 지식이기도 하지만 아사나를 적극 활용하여 몸과 마음에 새겨 넣는 것이다. 시퀀스를 통으로 던져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요가에서 깊이를 퍼올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님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다.


나만 믿고 따르라 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함께 보자고 제시하는 선생님은 배울 것이 많다. 방법을 배우면 요가가 그 무한의 깊이로 말을 걸기 시작하고 그것은 수련과 수업의 질을 필연적으로 향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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