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이는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임신 여부를 위한 피검사를 하기 위해 예약 날짜가 잡힌 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조심조심. 혹시라도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뛰지 않았고, 가벼운 운동을 할 때도 조심스러웠다.
배아 이식 후 거의 누워만 지낸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적당히 가벼운 걷기는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난 직장인이다. 미세먼지를 뚫으며 출퇴근을 해야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직장인.
"조기 임신테스트기를 사볼까?" 생각해봤지만,
이내 "실망할 날짜만 앞당기는 거 아닐까?"란 생각으로 기다림의 설렘을 즐기기로 했다.
배가 묵직하다거나, 가끔 콕콕 쑤시기도 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았다.
생리 전 증후군 같기도 했고,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임신 초기 증상일까?"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포털사이트와 유튜브에 "임신 초기 증상" 키워드로 내 몸이 겪고 있는 현상을 매일 밤마다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생리 전 증후군과 임신의 증상이 잘 구분이 안되었다.
그리고 딱히 임신 초기 증상이 명확하게 이거다! 하는 것도 없었다. 다들 지나고 나니 그게 임신 초기 증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말뿐이다.
피검사를 하는 날은 아침 일찍 병원에 들러서, 피를 뽑으면 끝이었다.
그날만큼은 병원 대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것도 토요일 오전의 병원 대기를! (토요일 진료는 대기 시간이 말도 못 하게 길다.)
그러면 오후에 피검사 수치를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점심을 혹시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위해 몸에 좋은 삼계탕을 거하게 먹었다. 그리고 유기농 마트에 들러 주말 내내 먹을 음식들을 기분 좋게 샀다.
드디어,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가 오기로 한 4시.
핸드폰 벨이 울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여보세요."
"네, 여기 병원인데 이번 피검사 결과는 아쉽게 임신이 아니네요."
"네, 알겠습니다."
영혼 없는 안타깝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임신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고, 물어볼 것도 없이 난 알겠다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식 후에 큰 기대를 했었다면, 눈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쉽게 기대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지, 눈물보다는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 번에 성공하면 왜 난임이라고 했겠나..
2차 피검사도 필요 없고, 1차 피검사 결과가 나오고 4일 후에 생리가 다시 시작됐다.
"역시나.. 그렇구나. 확실하구나."
생리가 시작하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해서 다음날 출근 전,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아침은 미세먼지로 가득했고 나도 그 미세먼지 속에 파묻혀 앞이 깜깜했다.
의사는 채취, 이식의 과정으로 봤을 때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을 했고, 장기 요법을 권유했다.
단기요법은 주사를 열흘 정도(사람마다 주사 투여기간은 다른 것 같다. 내 경우엔 열흘을 맞았다)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장기 요법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난자의 양도 늘리고 질도 좋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사실, 시험관 시술이 한번 끝나면 2~3개월은 쉬었다 한다고들 하던데, 나는 생각보다 바로 주사를 맞으며 두 달 뒤에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다시 시도해야 하는 것도 마음이 무거운데, 이전보다 더 오랫동안 배 주사를 직접 또 놓아야 한다니..
의사는 현재 먹고 있는 약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 임신 전 엽산, 코엔자임 Q10, 오메가 3을 챙겨 먹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먹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의사는 코엔자임 Q10, 오메가 3 외에 임산부용 종합비타민을 먹기를 권유했다.(임산부용이 따로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고용량의 엽산과 아스피린을 따로 처방해주었다.
그리고 음식은 딱히 가릴것은 없지만 밀가루, 튀긴 음식, 트랜스지방이 있는 건 피하는 게 좋고 가벼운 운동이 좋다는 뻔한 말이었다.
"그 뻔한 말을 이제 더 절실하게 실행해야 하는 때가 왔구나.."
자궁내막증이 날 괴롭히고 나서는 음식관리, 운동을 하긴했지만 이따금씩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안좋을거야란 생각으로 거스르는 적도 꽤 많았었는데..
또 의료보험이 지원되는 횟수가 차감된다고 생각하니 그 자체가 압박으로 다가왔다.
돈에 대한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지금까지의 병원비도 합계를 내보지 않았는데...
하지만, 주저앉아서 낙담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한번 시도해 본 것이니.
첫 시술로 될 확률을 생각하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장기적인 계획도 세워보지 않았었다.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긴 터널을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몇 번의 터널을 계속 지나야 할지 모르겠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마음, 자금관리를..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환경호르몬에 대한 습격을 막아야겠다.
좀 더 많은 운동을 해야겠다.
식단 관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하루의 좋은 습관을 나열하고 달성 여부를 기록해야겠다.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른 내가 되어야겠다.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지키는 엄격한 내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결심을 했고 그렇게 다시 해야할 생각하니 의지가 솟아났다.
그전엔 열심히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으니, 안될 수 있지.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노력하면 될거야!
그래!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언젠가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갈 때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