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희 Feb 05. 2024

프롤로그

딱 하루씩만 힘을 낼 겁니다.

어느 아침을 기점으로, '어떻게 하루아침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문장을 거듭 되뇌는 날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 문장은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아무 일이 아닌 일들에도 쉬이 눈물이 쏟아내던 사람이었지만 막상 눈물도 흐르지 않았어요.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 앞에 닥치고 나니 사소한 일들에 푸지던 알랑한 눈물들이 쏙 들어가 버릴 만큼 온 신경들이 멈춰 섰습니다.


어느 하루아침에, 30대 초반의 청년이 아스라 져갔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만의 차분함과 배려를 확인했고 여전히 온화한 모습으로 주변을 챙기는 모습을 고마워했는데...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한 달음에 달려간 길에서야, 겉으로 보이는 근황이 아니라 내면의 안부를 확인하려 애쓰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궁금해했습니다. 죽음을 결심했던 그의 어제, 일주일 전, 한 달 전, 일 년 전.


“저는 기억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게 더 좋아요. 왜 끔찍한 기억이 제일 오래갈까요?”

(빨간 머리 앤)     


그러다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릴 적 몇 년의 아픈 기억들 때문에, 앞으로 몇십 년의 창창할 날들을 더 이상 즐거울 거라 생각하지 않은 걸까?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아스라 져간 청춘을 아쉬워했습니다.


지금 얼마나 멋진 지점에 서있는지 그에게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음이 아쉬웠고 아주 많은 날을 살아본 것도 아니지만, 이유 없던 순간들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주지 못해 후회가 들었습니다.


좀 더딜 뿐이지 늦게 피는 꽃도 있더라며...‘대부분, 모두가’ 각자 피는 시기가 다른 것 같더라며_술 한 잔 사주지 못한 무심함을 탓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하루아침에 또 다른 비보를 접했습니다. 비통해했다가, 멍했다가, 울었다가, 많은 감정들 속을 오갔지만 넋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어요.


일상의 흐름이 깨져버린 틈 속에서 다섯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해야 할 일을 찾아 주섬주섬 간극을 메워나갔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작은 뇌 속에서 터져버린 한 줄기 피는, 순간에 많은 것들을 꺼트렸습니다.


위로 대신 담담한 응원을 담아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걸을 거라고 맹세하면서 저는 저대로 살기 위한 시간들을 쌓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생의 의지는 더 강해져서 건강하고 밝은 기운들로 채워나갈 시간들을 궁리합니다.


잠시 비극이었을 지언 정, 이 불행이 우리를 덮쳐 잠식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견고해질 시간들을 탐색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맑고 아름다운 그녀가 다시 온전한 일상을 되찾는 그날을 세 알립니다.


단란하던 우리 가족들 앞에서, 어느 날 아침 예고도 없이 무참히 터져버린 그 시한폭탄의 잔해들이 서서히 걷어지길 기도하며...


그날이 언제가 될지, 기간을 단정 지을 수 없기에, 딱 하루씩만큼만 힘을 낼 겁니다. 딱 하루씩 각기 다른 온기를 채워나갈 겁니다.


나를 살리는 시간을 더하고, 살기 위해 어떤 시간들을 빼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를 알아차리는 시간들을 갖습니다. 과거의 시간들을 훑어, 쓸만한 시간들을 건져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