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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Feb 07. 2024

온전한 나로, 담대해지기로 결심하는 시간

태어난 지 14,964일 만에.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잘 보일 수 있을까, 노력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누군가의 인터뷰 답변을 막연히 따라 했었던

해맑았던 때에도.

어른들에게 칭찬을 많이 듣는 아이이고 싶어,

노력했던 때 묻지 않았을 때도,

'우리 집에 침대도 있어' 없던 침대를 자랑치

철없는 때도,

백일장 대회를 나가, 지금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상장들을 모으며 좋아하던,

욕심이 없던 때에도,

400m 계주 대표 나가면서, 이왕이면 결승 테이프를 끊는 4번 주자였으면 했던 순진한 때에도.


하지만 선생님께 칭찬은 들었을지언정

명문대에 입학은 못했고

잘 보이고 싶었던 수십 번의 인터뷰에서는

매번 떨어졌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품템을 수시로 인증하고

고액 연봉으로 플렉스 하는 사람도 못 됐다.


그러던 사이, 철은 들었다 했으나

때가 묻었고

표정은 어두워졌으며

욕심이 들끓어 속은 새까맣게 탔고

부러움에, 자격지심만 깔렸다.


까맣게 타다 못해 바닥에 눌어붙은

마음의 그을음을 보고 나서야

이제 내 그릇만큼만 행복을 좇자,

내 그릇을 인정하게 됐다.

남 보라는 듯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까, 애달파하지 않는다.


그리고 궁리한다.

내 범위 안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은, 행복거리를.

딱 내 그릇만큼 찰방찰방하게 채워 넣는 방법을.


내 마음이 가뿐해지고 내 몸에 활력이 돌 만큼 내 페이스에 맞게 달린다.


내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 찌꺼기들을 배설하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


하루 한 끼 나를 위해 맛있는 혼밥을 사줄 만큼,

몇 달만의 여행이라도, 여행을 허락해 줄 만큼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진 찍기용,

아까워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더스트백에 쌓여 빛을 못 보는 명품백이 없어도 괜찮다.

여러 권의 책을 넣어도 늘어지지 않고

혹여 텀블러 속 음료수가 새어들어도 괜찮은 에코백이면 충분하다.

 

내 욕구를 채워주고 나를 칭찬해 줄 거리를 찾기로 한다. 어차피 내가 아닌, 남은 애당초 맞출 수 없다.


남들 눈에 예뻐 보이기 위한 사진 말고 하루하루 나를 담는 사진을 찍는다.

내일보다 젊고 예쁠 게, 분명하다.


남들에게 자랑할 유명 여행지 앞에서 찍는 인증샷 말고, 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감성 포인트를 찾는다.


그러다, 생각한다.

왜 돌고 돌아서 이제야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기로 결심한 걸까.

돌고 돌아, 세상에 치이고 한 풀 꺾이고 나서야...

더 이상 내 사진은 예쁘지 않구나, 생각하는 내 나이 마흔이 지나고 나서야...


빈둥거리며 오늘을 허비하는 것은 계속 되풀이된다.

내일, 그리고 그다음 날은 더욱 느려지며 망설일 때마다 점점 더 늦어지나니,

지나간 날들을 한탄하며 시간은 흘러간다.

그대는 진지한가?

그렇다면 바로 이 순간을 붙잡아라.

대담함 속에는 재능과 능력과 마법이 담겨있나니.

괴테, 파우스트


무의미한 사람들 사이에서 빈둥거리며 무의미한 에너지로 허비하는 시간들을 버리기로 한다.

재능과 능력과 마법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이 순간만 붙잡기로 한다.

딱 내 그릇, 주어진 내 시간 안에서 담대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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