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차일드 인 타임>

by 별이언니

스티븐이 케이트의 생일선물을 한아름 산 후 집에서 역한 기분을 참으며 어설픈 포장을 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아이는 사라졌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시체로라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애도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착란이 되었다. 아주 느리게 모든 것이 변했다. 스티븐은 그리고 줄리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저앉아 바라보는 저 기이한 문 너머의 빛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됐다. 실체가 없는 것과 마주하는 일, 그건 공포다. 그것이 사랑했던 존재라면 더더욱. 그 애가 사랑스러운 딸,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면 더더욱.


인간은 삶의 기망 속에서도 생존하고자 한다. 케이트가 사라지고 스티븐과 줄리가 취했던 행동은 스스로를 놓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또한 케이트를 계속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케이트를 계속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육체와 영혼을 끌어안고 본능적으로 기어오르는 절벽 가운데에서 비로소 그들은 케이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케이트를 기다리는 일이 곧, 그들이 회복하는 방법이며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육체를 걸어잠그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아이가 사라진 이 년 동안 차곡차곡 자라고 있을 아이의 얼굴을 망령처럼 목격하기도 하고 구석방으로 요양원으로 시골로 떠나기도 한다. 사랑하여 아이를 낳았기에 서로의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번져서 멀리 지평선의 이쪽저쪽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먹고 자고 옛친구를 만나지만 아무런 실감이 없다. 아이는 스스로의 몸을 숨기면서 부모의 세계도 일부 가져갔다. 머리카락 한 올도 부드러운 웃음소리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린 아이. 그 사라짐이 너무 극적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사라져버린 스티븐과 줄리의 세계, 사랑과 믿음과 친근함이 충만했던 순간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 두 사람은 또다른 사랑과 믿음, 친밀함으로 무너진 세계 저편에 새로운 조각을 만들 것이다. 무너진 세계는 복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게 가혹한 일이다.


이 소설은 상실에 대한 회복서사라고도 할 수 있고 느리고 사실적인 애도의 여러 방법이라고도 읽을 수 있지만, 나는 살아있음이라는 치열함으로 읽었다. 우리는 가끔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는다. 성의없는 위로를 건넨다면 무너진 것은 언젠가 새살이 차오른다던가 망가진 부분에도 예상할 수 없는 꽃이 핀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잃어버린 부분은 영원히 황량하다. 만지면 아프고 새로운 피가 흘러나온다. 회복할 수 없는 결손이 있다, 환상통을 앓곤 하는. 살아있다는 것은 붕괴를 품고 매일 새로운 얼굴을 하고 들이닥치는 아픔을 맞이하고 숙취같은 깨달음과 환상을 왔다갔다 하며 버티는 것이다. 차근히 회복되고 부드럽게 극복되는 결말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새로운 아이를 안고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은 내일을 꿈꾸었지만 내가 책장을 덮고 떠난 후 스티븐과 줄리의 다음날이 어떻게 망가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망가지면서도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이, 그것만이 희망이다.


아이가 좋아했던 것, 그리고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것, 아이가 좋아할 수도 있는 것 - 그 모든 것을 스티븐은 카트에 쓸어담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아이가 사라진 복도와 방, 부엌을 보면서 바닥에 쏟아놓은 선물을 본다. 그는 토할 것만 같다. 하지만 주저앉아 선물을 포장한다. 성의없이,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엉성한 포장 사이로 인형의 다리가 튀어나오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의 넝마더미가 수북히 쌓인다. 그러나 그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기억, 아이에 대한 희망, 아이가 사라진 현실이 칼날처럼 박히는 아픔을 그는 포장지와 리본으로 휘감는다. 그 포장은 완벽하지 않아서 내용물은 쏟아지고 심지어 끝도 없어서 악전고투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줄리와 스티븐의 품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부부는 열어둔 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사라졌지만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고 생명은 이어졌다.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그들은 끝끝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케이트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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