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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May 21. 2024

수어는 참 솔직한 언어로군요

비대면 수어 수업 중에 드는 생각


사람들은 종종 가면을 쓴다. 그 가면 안에 마음을 숨긴다. 진짜 감정은 깊숙이 누른 채 실제 감정과 다른 표정을 짓기도 한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어는 그렇지 않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표정이 일치한다. 말과 표정이 함께 가야 한다. 아주 솔직하게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수어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돌려 말할 수 없다. 아주 정확하게 또박또박 말해야만 하는 언어이다. 그래야 명확하게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다.


몇 가지 사정으로 수어 수업을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꾸었다. 일주일에 두 번, 열다섯이 넘는 수강생이 줌 화면 안에 모인다. 오늘 수업에서 선생님은 '만나서 반가워요'나 '고마워요'를 수어로 말하며 미소를 지어달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어떤 표정들이길래 자꾸 말씀하시나 싶어 유심히 줌화면 속 수강생들의 표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조각보의 조각들처럼 다양한 이들의 얼굴이 네모나게 담겨있다. 살펴보니, 수업을 들을 때의 수강생들은 무표정이 기본이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전혀 모르는 이들과 모여 있고, 강사님의 수업을 듣는 시간일 뿐이니 굳이 웃음을 띠고 있어도 이상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들 지나치게 표정이 없구나, 아무 표정을 짓지 않으니 조금은 화가 난 것처럼도 보이는구나 싶었다. 하나의 네모칸을 차지하고 있는 내 표정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동양 문화권의 탓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양인들은 말하면서 표정이나 체스처가 동양인보다는 큰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 만나는 모르는 이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그 인사마저도 낮은 톤이 아니라 한 톤쯤 올려서 'hi~'를 외치는 서양인들. 그들이 수어로 말하게 되면 한국인들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표정을 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오늘 수업에서 수식어의 기능을 표정으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배가 아프다'와 '배가 너~~ 무 아프다'의 수어는 동일하다. '너~~ 무'는 표정에 담아내야 한다. "놀라다"도 마찬가지다. 놀람의 정도는 표정으로 말한다. 농인분들의 표정은 볼 때마다 대단하다. 너무 매울 때, 너무 귀여울 때, 너무 좋을 때의 표정이 정말 큼지막하다. 얼굴의 모든 근육을 움직인다. 눈썹 올리기나 내리기, 눈을 치켜뜨거나 감기, 다양한 형태로 입 벌리기 등 자유자재로 얼굴이 바뀐다. 수어초보자인 우리는 그런 표정 짓기가 무척 낯설고 서툴다.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라 왠지 부끄럽기까지 하다.  


손으로 말하는 단어들은 외워서 따라 하면 그만인데, 표정으로 말하는 비수지 신호들이 오히려 수어 공부에서 난관으로 다가올 것 같다. 수어를 정말 잘하려면 얼굴근육 풀기부터 시작해야겠구나 싶다. 줌 화면 안의 나 자신을 보며, 그동안 얼굴 근육을 참 안 움직이며 살아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반갑다’를 손으로 말하며 표정이 무뚝뚝하면 그건 반가운 게 아니지. 그러니 표정에 즐거움을, 슬픔을, 고통을 잘 담아내야 한다.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던 나를 벗어나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수어는 아주 직설적이고 명확히 말해야 하는 언어. 오늘 보았던 영상 속 농인들의 얼굴 표정이 멋졌다. 표정 가득 드러나는 그 감정의 풍부함이, 솔직함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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