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어도 - 엉덩이의 무게는

100만 걸음의 예배자

by 봄부신 날

[하기 싫어도]


인생은 하기 싫어도,와

그래도 해야지,

사이에 있다.


첫 번째 하기 싫어도,는

일찍 일어나기다.


아침 6시10분에 알람이 울린다.

더 늦게 일어나고 싶지만,

조금 더 자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일터에 지각한다는 걸 알기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남들이 보면, 되게 결단력 있고

행동파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해야지,가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기상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김형찬, 100만 걸음의 예배자, 86쪽)


산티아고 순례를 하고 있는 저자는 아침에 걷기가 싫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힘들고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콜택시를 불러 산티아고로 달려가고 싶다는 것으로, 그 싫음의 크기를 설명한다.


걷기를 위해 자처한 길임에도, 사람은 그렇다.


그렇지만 사람은 또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지, 하고는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시작이다.

엉덩이가 무거워봤자 얼마나 나가겠는가.

그렇지만,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릴 때에야 비로소 엉덩이의 심리적 무게를 깨닫는다. 그것은 천근이요 만근이다.



하지만 앉아 있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럴 땐. 빨리 체념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빠른 체념은 빠른 시작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무거운 엉덩이를 체감하는 것은 순간이며, 일단 일어서고, 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엉덩이 따위는 곧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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