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호 Sep 29. 2024

그 짓을 '보호'라고 부르기로 했어

 다음날 아침 코바영감은 잠에서 깨어났다. 코뿔소들은 아직 코바영감의 잘린 코뿔에 적응이 안 되는 눈치였다.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을 다들 꺼려했다. 코바영감도 자신의 코뿔이 잘린 상태를 다른 코뿔소에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코뿔소들의 반응에 더 신경이 쓰였다. 글래디는 코바영감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단숨에 달려왔다.


"코바영감님!"


 아직 꽤 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글래디의 목소리는 크게 들렸다. 그만큼 글래디는 코바영감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결국 그 모든 질문은 하나지만. 글래디는 와콤과 함께 왔다. 둘 다 먼지에 뒤엎여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밤새 초원을 뒤지고 다닌 모양이었다. 코바영감의 곁에 다다른 글래디가 물었다.


"영감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궁금했던 모든 질문을 하나의 질문으로 한 글래디였다. 코바영감에 대해, 인간들에 대해 그리고 게이드에 대해 그가 묻고 싶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음, 글래디 많이 야위였군. 그새 무슨 일이 있던 겐가?"


"게이드가 인간들의 손에 끌려갔습니다. 영감님을 데려갔던 그 인간들 같습니다. 그들이 게이드를 잡아간 '큰 새'와 영감님을 두고 간 '큰 새'가 같았습니다. 혹시 인간들에게 잡혀있을 때 게이드를 봤습니까?"


"게이드가? 어쩌다. 안타깝게도 난 그 안에서 다른 코뿔소를 본 적이 없네. 이런 일이... 이런 일을 겪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나... 그 어린것을..."


 코바영감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있었지만 글래디의 귀에는 본 적 없다는 말만 들렸다. 지난밤부터 한숨도 못 자고 코바영감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혹시 게이드에 대한 어떠한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잠들어 있는 코바영감을 몇 번이고 깨우고 싶다는 충동도 억지로 억누르며 아침을 기다렸다. 큰 기대만큼 큰 실망이 글래디를 좌절시켰다. 한 동안 말이 없던 글래디를 대신해서 같이 온 와콤이 물었다.


"영감님 그때 분명 상태가 안 좋았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자네들이 떠나고 인간들이 나타났지. 난 밀렵꾼들이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었네. 그리고 그 인간들은 나에게 '주사'라는 것을 놨어. 옛날에 동물원에서 본 적이 있던 것이었지 그걸 맞으면 그 어떤 동물도 잠에 빠지고 말아. 그건 기린이나 코끼리도 예외가 없어. 그 뒤로 난 기억이 나지 않아. 며칠을 잤는지, 며칠이 지났는지. 그리고 깨어나 보니 내 몸은 나아있었네. 상처가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걷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지. 오히려 전보다 체력도 좋아진 느낌이었어. 며칠이 지나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인간들이 치료를 해준 모양이군요."


와콤이 예상하고 있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렇지.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치료를 해줬어."


"코뿔은 어떻게 된 겁니까?"


와콤은 돌려서 질문하지 않앟다. 지금 게이드 소식 다음으로 가장 궁금한 것이 그것이었다.


"며칠이 지났어. 갑자기 인간들이 몰려들었지 그들은 나를 묶고 붙잡았어.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날뛰었지. 그럴수록 그들은 나를 더 묶고, 더 붙잡았어. 그리고 눈앞에 무언가를 들이댔어.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 같은 것이었는데 '윙-'하는 소리가 엄청 크고 무서웠지. 그 도구를 코뿔에 대니 코뿔이 점점 잘려나갔어.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네. 깨어나보니 코뿔은 없었지. 그 순간의 기억은 정말 무서웠네. 사자를 눈앞에서 봤을 때도 그보다는 안 무서웠어.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지. 다리는 후들거렸고, 머리는 어질어질했지. 그날의 공포가 계속 떠올라서 며칠은 잠을 자지 못했어.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정말 낯설었어. 눈앞에 코뿔이 보이지 않은 건 어린 시절 밖에 없었으니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코뿔이 없는 코뿔소라니. 코뿔이 없이 코뿔소가 어찌 살아가야 한다는 건지. 왜 치료를 해주고 코뿔을 잘라간 것인지. 코뿔을 잘라갈 것이라면 왜 치료를 해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 대체 왜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인지. 대체 인간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인지."


 그때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 코바영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을 글래디와 와콤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에 돌아서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글래디와 와콤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시는 건가요?"


"자세히는 모르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뒤로 나에게 '보호'라는 말을 반복했지. 내가 인간들을 보며 그날의 기억에 덜덜 떨 때마다, 그들을 피해 다닐 때마다, 그들을 보며 울부짖을 때마다, 없는 코뿔로 벽을 쳐낼 때마다 ‘보호’라고 반복했어. 그래서 난 그 짓을 '보호'라고 부르기로 했어."


<14화로 이어집니다.>



이전 12화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