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트래킹 3일 차)
2일 차 :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밀포트 트래킹 3일 차)
- Mintaro HUT 07:46
- Mackinnon Pass 09:45
- Pass Shelter 10:15~10:45
- Andersons Cascade Shelter 12:40~12:55
- Public Shelter 13:28~14:20 중식
- Sutherland Falls
- Public Shelter 16:05
- Dumpling Hut 16:55
밀포드 트래킹 3일 차에 든다.
민타로 헛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우린 산장을 등진다.
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마지막 구름다리를 지나 강을 건너게 되면
순간 우리 앞엔 온통 초록옷을 입은 신비스러운 숲 속과 마주한다.
순춘 님...
전날 산장에 도착할 때 다리에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던 거와 달리 표정이 밝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 컨디션을 물어보자 전날 약을 먹고 마사지를 한 덕분인지 견딜만하다고 한다.
그러며 하는 말이 내 생전 이렇게 길게 걸어본 게 처음이라 덕분에 호올쭉 살이 빠졌다며 좋아한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들 발걸음이 싱싱하다.
오늘 3일 차가 밀포드 트래킹의 하일 라이트가 되는 날이다.
지금껏 밀림 숲 속을 걸었다면 이젠 능선에 올라 광활한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 코스다.
깊지 못한 뿌리는 이렇게
어느 순간 생을 마감해야 하는 불행을 맞는다.
길을 막고 있던 무너진 거목을 보니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빙하로 깎아 놓은 협곡 중심부를 타고 올라가는 등로가 가파르다.
그러나 맥키논 패스로 향한 등로는 다행스럽게 꼬부랑길로 경사도를 한껏 낮춘
등로라 사실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그래도...
역시 초보자는 힘든가 보다.
뒤에서 보면 한발 한 발이 천근만근으로 그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혹시나 아스피린 가저온 거 있음 한알 정도 복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하자
자기는 아스피린 부작용이 있어 그거 먹으면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긴...
평생 의료계에 몸 담고 있는 분들께 산찾사가 괜한 소릴 한 것 같다.
ㅋㅋㅋ
물어보니 전날밤 근육 이완제를 비롯한 이것저것 도움 될만한 약들은 이미 복용했다고 한다.
올라서는 동안....
몇 차례 다리 쉼을 하고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나누며 혹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간식은 먹는 것조차 힘들어도 억지로라도 섭취하라 이른 뒤 거북이걸음으로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제 민타로 헛에 짐을 풀고 난 후
산책으로 걸었던 헬기장과 호수가 내려 보인다.
운무만 아니면 참 좋은 풍광인데 많이 아쉽다.
어느새 가까워진 정상 부근에 이르러
그간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어 추위 대비를 철저히 한 후 능선에 오르자
순간 수온주가 급직 전 하강하는 동시에 세찬 바람과 함께 몰려든 안개가 주위를 감싼다.
이런 딘장~!!!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젠 불과 몇 미터 앞선 산우들조차도 안개에 묻혀 그 종적을 감춘다.
우린 짙은 운무 속을 걸어가
밀포드 트랙을 개척한 맥키논을 기리는 메모리얼 석탑에 도착했다.
Mackinnon Pass....
날씨만 좋다면 이곳의 풍광이 제일 좋은 곳인데 아쉽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겨우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란 생각에 은근 부아가 치밀고 속에선 쌍욕이 나온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내 복인걸...
바람에 휘청대는 몸을 겨우 가누고 그래도 우린 악착같이 인증 사진은 박았다.
계속하여 모질고 세찬 바람이 음습한 기세로 온몸을 파고든다.
다들 정신이 사나운가 보다.
순간적으로 손이 곱아 오고 온몸이 떨린다.
우린 미련 없이 1154m의 맥키논 메모리얼 석탑과
이별 후 바람과 추위를 피해 정상아래에 자리한 패스 쉴터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패스 쉴터에 들자 안온한 기온이 감돈다.
그러나...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이럴 때가 더 춥고 배도 고픈가 보다.
이런 날엔 저체온증에 걸릴 확률이 많은 날씨다.
쉴 테 안에서도 덜덜덜 떨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산우들을 보자마자
나는 급하게 배낭을 풀어 코펠을 찾아든 다음 밖으로 나가 뛰었다.
방금 쉘터에 들어오며 봐 둔 호수에서 코펠 가득 물을 담아와 물을 끓였다.
얼마 후...
따스한 커피와 간식에 다들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는 동안 잠깐 쉬었다 싶은데 벌써 30분이 지나고 있다.
이젠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세찬 바람 속으로 우린 걸어야 했다.
오늘의 하일 라이트가 될 풍광에 실망한 나는
맥키논 패스를 내려서며 하늘을 원망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ㅋㅋㅋ
그런데...
그런 내가 딱해 보였던지 어느 순간 잠깐 안개가 걷힌다.
우리 가지 말고 기다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역시 정상 쪽엔 짙은 운무가 감싸고 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서던 순간....
산우들이 순간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와우~!!!!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친다.
바로 눈앞에 우람한 엘리엇 산 (M.t Elliot)을 휘감았다 풀어놓았다
희롱하는 운무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능선을 넘긴 운무들이
피었다 사라지는 모습들이 마치 타임랩스로 찍은 영상처럼 휙~획~지나간다.
순간....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그 무언가 때문에 울컥한다.
그 먼 길을 이거 한번 보자고 온 우리다.
이젠 되었다.
모든 걸 용서하고 모든 걸 버릴 수 있으며 또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옹졸했던 내 마음을
태평양 바다보다 더 넓고 깊어지게 만든 위대함이여~!!!
한발한발이 아깝다.
다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느라 애 많이 쓴다.
ㅋㅋㅋ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걸어 내리던 길에서
그래도 미련을 떨구지 못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내 눈에 맥키논 패스와 연결된 설산이 보인다.
저 능선 너머엔 빙하가 녹아내려 고여진 퀼(Quil) 호수가 있다.
1000m 이상의 고원에 위치한 퀼 호수는 아서강(Arthur River)의 발원지로
그 물이 580m나 흘러 떨어지는 게 바로 서덜랜드 폭포다.
내리막길이 엘리엇 봉오리 바로 아래의 협곡으로 내려 백힌다.
그 길로 향한 길 한복판 이정표에 Emergency Track이라 쓰여 있어 은근 겁박을 준다.
응급, 비상, 긴급함이란 단어의 뜻을 연상해 보면 무시무시한 등로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ㅋㅋㅋ
개무시하고 걸어도 된다가 정답.
어느덧 길이 협곡으로 빠저 든다.
그리고 곧바로 만나게 된 폭포는 우리의 지리산 계곡을 연상시킨다.
우리 일행들이 폭포 전망대에서
원목계단을 타고 내려 얼마쯤 걸어 내려서자
그렇게 기다리던 Andersons Cascade Shelter를 만났다.
이미 식사 시간은 지났다.
그런데...
여긴 길목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우린 배고픔을 좀 더 참고 내려가
서덜랜드(Sutherland) 폭포와 갈림길인 퀸틴(Quintin) 산장까지 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쉴터를 출발한 얼마 후...
구름님이 우리가 먼저 내려가 식사 준비를 하자고 한다.
콜~!
그간 족쇄에 묶인 발이 풀린 산찾사의 두발이 해방을 맞았다.
얼마 후..
구름님도 마저 제킨다.
내가 먼저 내려가 물을 끓여놓고 있다 뒤에 오는 구름님의 배낭에서 라면만 꺼내면 된다.
잠시 후...
가이드 투어의 숙소 퀸틴 산장 바로 옆의 건물
Public Shelter에 도착한 나는 불을 지펴 물을 끓인 후
바로 뒤따라 내려온 구름님께 라면을 받아 알파미 두 개를 함께 까 넣었다.
잠시 후 라면밥은 다 되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일행들이 도착할 기미가 없다.
라면은 이미 팅팅 불었는데...
마중을 가기로 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숲 속 길을 달려가자 성수 형님이 내려오신다.
그리고 얼마 후....
힘겨워하는 우리 일행들을 만났다.
먼저 배낭을 받아 들고 함께 Shelter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다들...
싹싹 맛나게 비워 낸 코펠을 대충 닦아 낸 후
배낭을 꾸려 한 곳에 모아 놓은 다음엔 각자의 의사에 따라 서덜랜드 폭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마누라님과 함께 사이좋게 서덜랜드 폭포를 향한다.
그 길을 향하다 보면 다리를 보수 중인 젊은 관리공단 아저씨도 있지만
험하게 패인 등로마다 시멘트를 깔던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의 일꾼도 만났는데
우리를 보더니 시멘트를 타설 한 곳에선 스틱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밀포드 트레일...
세계적인 자연유산을 이렇게 그들은 철저하게 관리 유지 보수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서덜랜드 폭포 (Sutherland Falls)....
아래 사진은 그곳의 안내판에 적힌 폭포의 제원이다.
1000m 고지의 퀼 (Quil) 호수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그 모습에 반해 버린 우린
한동안 흩날리는 낙수에 옷이 젖는 것도 모른 채 올려 보았고
이국의 남녀는 갑자기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며 폭포 속으로 뛰어드는 만용을 부렸는데
폭포의 물이 무지하게 차갑다.
그 청춘남녀는 결국 얼마 못 견디고 뛰어나온다.
ㅋㅋㅋ
사실..
구름님도 그 폭포 속으로 용감하게 입수를 감행했는데
결국엔 입술이 새파래지더니 얼마 못 견디고 뛰어나오고 말았지만
그 패기 하나만큼은 참으로 가상하다.
시원함을 선사한 서덜랜드 폭포를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는 밀포드 트래킹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산장까지 걸으면 오늘 트래킹은 끝이다.
그런데....
구름님이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묵을 수 있도록
나보고 먼저 뛰어 내려가 1층 침대로 자리를 잡아 달랜다.
사실 난 이층이 더 좋다.
그런데 구름님은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도 1층을 편안해한다.
사실 잠자리에 개의치 않는 난 마누라님과 유유자적 걷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불편함은 당연 감수해야 하는 걸 기본으로 알고 있던 나였지만
다 함께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리더의 요구를 존중하여 수용하기로 했다.
모처럼 졸라게 한번 뛰어 봤다.
그렇게 뛰어가다 먼저 걷던 트래커 3명을 제키고 난 이후엔
나 홀로 셀카질도 하고 맑고 푸른 하늘도 올려다보며 한가로운 걸음을 옮긴 끝에
Dumpling Hut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딘장~!!!
숙소마다 1층엔 딱 한자리가 부족하다.
숙소의 동을 나눠서 자리를 선점하면 1층을 차지할 수 있는데
그럼 일행들과 떨어져야 한다.
어쩌나~?
그래도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한동에 몰아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리 자리를 찜 해 두었는데
후에 도착한 구름님은 아무래도 2층은 불편했던지 다른 동의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자 덤플링 산장엔 황혼이 물든다.
아름답다.
마지막 밤....
항상 모든 산장에선 저녁 8시만 되면 관리공단 직원이
트래커를 다 모아 놓고 내일 걸어야 할 코스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오늘도 역시 알아듣진 못해도 다 모여야 한다니 모였다.
30여 분간 공단 직원은 아주 재미있게 말을 하고 그걸 알아듣는
서양인들은 폭소를 터트리는데 오늘도 역시 우리 일행 전원은 꿀 먹은 벙어리다.
그래서...
우린 그냥 알아듣진 못해도 재들 웃을 때 우리도 한 번쯤은
그냥 웃어 주자는 성수 형님 말씀에 다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한밤중....
화장실을 가는데 달빛이 너무나 밝아 렌턴이 필요 없다.
두둥실 떠 오른 달님 곁엔 선명한 빛을 내는 샛별이 다소곳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금성이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산장의 뜰을 환하게 밝히던
달빛에 홀린 나는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사색에 젖는다.
은은한 달빛에 은하수는 그 모습이 아련한데 수많은 별들 중 어쩜 저리도
금성의 별빛은 유독 크고 밝고 가깝던지?
한동안 잠을 잊은 채 나는 그렇게 산장을 거닐며 한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