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트래킹 4일 차)
13일 차 :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밀포드 트래킹 4일 차)
- Dumpling Hut 06:10
- Mackay Fall 07:40~07:50
- Giant Gate Falls 10:20~10:43
- Sandfly Point 12:00~13:45
-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 13:55~14:37
- 퀸즈스타 숙소 19:00
밀포드 트래킹의 마지막날...
우린 타고 가야 할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아침식사를 끝내고 아직 어둠에 싸인 덤플링 헛을 출발했다.
하늘엔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 비추지만 숲 속에 들자 한 치 앞도 분간 못 할 어둠이다.
그 어둠을 몰아내는 렌턴을 밝혔다.
순간...
비박을 다닐 때 요긴하게 쓰이던 크레모아 LED 조명등이 위력을 발휘한다.
손전등도 있으나 이거 하나면 족하다.
얼마나 갔을까?
어느덧 하늘이 희끄무레 밝아오기 시작했다.
산능선이 보일락 말락 구름 뒤에서 나타나고 지저귀는 산새의 울음이 숲을 흔든다.
그때...
잠시 숲을 벗어난 우리의 시야를 잡은 광경이 다들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흰 눈을 살짝이고 있던 설산 위로 둥근달과 샛별이 푸르른 하늘에 박혀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우린 한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우리의 길을 밝혀주던 렌턴을 거둬들인다.
어느새 우린 맥케이 폭포(Mackay Fall)에서 한차레 다리 쉼을 한다.
이른 아침의 발걸음은 항상 싱싱하다.
어디서 솟는지 힘도 왕성하다.
때론 맑은 강가를 거닐다.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초록의 이끼숲을 지나
계곡의 다리를 넘는다.
얼마를 그렇게 걸었을까?
다들...
이른 아침 허기만 속이고 떠난 탓에 배가 고프다.
걷는 속도와 남은 거리를 대충 계산해 봐도 진행속도가 빠르다.
그러니 다들 이젠 마음에 안정이 찾아들자 허기가 더 지는 것 같아 충분한 휴식과 함께
배낭을 탈탈 털어 간식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그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나의 배낭...
한국을 떠나올 때 초록잎새의 배낭만큼은 뽕 배낭으로
해 주겠다던 약속이 마지막날에 이루어짐에 다시 또 빵빵해졌다.
간식과 휴식으로 힘을 얻은 강행군이 강변을 낀 오르막을 오른다.
그때...
혜숙 씨가 소리친다.
"저 강 속을 좀 보세요~"
히야~!
팔뚝만 한 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며 올라가는 게 보인다.
아주 멀리 숲 속을 거닐던 짐승을 발견하질 않나 하여간에 혜숙 씨는 눈이 보배다.
어느새 걸음이 Giant Gate Shelter에 이른다.
이곳에서 샌드플라이 포인트 까지는 1시간 45분의 거리다.
이젠 다 온 거나 만찬가지...
우린 이곳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떠나긴 했는데...
바로 쉘터를 지나자마자 만난 구름다리가
덤플링 헛의 벽면을 장식하던 사진 속 장소란걸 알게 된 우리는
폭포를 배경으로 넣고
포스터에 나온 사진처럼 포즈를 취해 사진을 담아 보았다.
그런데...
구도가 맞지 않는다.
그렇게 찍으려면 계곡 한가운데로 물에 빠져야 가능한 각도라 포기...
대신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담았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거리란 생각에 마음은 한결 가볍고
같은 시간이라도 참으로 여유롭다.
사실...
많이 걱정했는데 다들 잘 참고 걸어 준 게 대견하고 한편 고맙다.
팀을 이룬 트래킹은 개인의 뛰어난 산행능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화합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동료에 대한 배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 팀은 사실 체력은 최하위의 저질 체력이나 그 덕목만큼은 최상위라 할 수 있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바닥난 체력임에도 여성들은 아침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매끼마다 식사를 끝냈을 땐
말끔하게 뒤처리까지 알아서 해결을 했고 그걸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어 나는 새삼 놀랐다.
난 그저 여성 트래커는 힘들다며 어리광에 찡찡대지나 않음 최고의 파트너로 친다.
그래서 난 이 언니들이 넘~ 예뻐~!!!
ㅋㅋㅋ
이젠 중천으로 떠오른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산들산들 미풍이 물어 온다.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발걸음이 이젠 종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
그간 잘 참아준 순춘 님을 비롯한 여성분들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다행히 초록잎새의 걸음엔 힘이 남았다.
그래서...
일단 단둘이 먼저 내려 가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축축하고 정글 같은 느낌의 숲 속을 빠저 나오자
순간 산들이 포효하며 가파르게 솟아오른 오만한 모습으로 나를 제압한다.
자연의 위대함은 한순간에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겸손을 깨닭게 한다.
그간 살아오며 덕지덕지 쌓인 세속의 욕망을 어느 정도 덜어 낼 수 있는 이런 트래킹이 난 좋다.
자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욕망을 모두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신이다.
어쩔 수 없는 욕망은 나를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한 노력이 그래 필요한데
이런 위대한 자연 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런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되고
또한 옹졸했던 마음까지 너그러워진 자신을 발견한다.
얼마간 우린 단둘이 밀포드의 마지막 구간을 힘차게 걸었다.
때론 이렇게 셀카로 여유도 부려가며 다정하게 걷던 중에
3박 4일간 트래킹을 하며 제대로 씻지 못한 추레한 내 모습을 보던 마누라가 그런다.
내 남편이 이렇게 늙은이인 줄은 몰랐다나 뭐라나~?
그런데 어쩌랴~!
덥수룩한 수염이 검은 털보다 흰색이 더 많음은
세월이 흐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의 참모습인걸....
드디어 도착한 샌드 플라이 포인트...
비로소 우린 3박 4일 그 힘들다는 비가이드 밀포드 트래킹을 완성했다.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풀어 코펠을 찾아 선착장에서
강물을 떠 오는 나를 보던 외국인이 손짓 발짓으로 그걸 버리란다.
여기부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 물이 짜단다.
헐~!
물이 없는데 그럼 어떡하나?
다행히 샌드플라이 포인트 휴게소 옆에 빗물을 받아 놓은 통이 있단다.
그물을 받아 버너에 불을 지펴 코펠을 올려놓은 나는 일행을 마중 나갔다.
얼마 후....
정말이지 한발 한 발이 고통의 연속인 언니들을 만나 배낭을 받아 들고
샌드 플라이 포인트까지 단숨에 내려온 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시원하여 좋긴 했는데
흐미~!!!
뭍으로 나온 순간 나는 시커 먹게 달라붙던 샌드 플라이에게 무수히 뜯기는 신세가 되었다.
ㅋㅋㅋ
그리고 참~!
수영을 하고 나온 내 모습을 담아
메일로 보내주신 한국에서 홀로 오신 나와 갑장이라던 오석민 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는 오석민 씨가 내게 보내준 사진)
배가 오기 전 일찌감치
맛나게 식사를 끝낸 우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샌드 플라이 쉼터를 나왔다.
인간승리의 전형 순춘 님이 두 손을 번쩍 들며 마지막으로 샌드 플라이와 작별을 고한 우리 일행은
정확한 시간에 들어온 여객선에 오르자마자
쾌속선이 물살을 가르며 달린 지
불과 10분 만에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에 우릴 내려준다.
우리가 내린 곳은 지난번 시닉 크루즈 관광을 위해 왔던 곳이다.
이젠 홀가분하게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키위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버스가 오길 기다리던 우린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트래킹 완주를 자축하던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다.
성격도 참 괄괄하다.
그런데...
막상 떠날 때쯤 금숙님이 핸드폰을 놓고 온 것 같다고
아이스크림을 먹던 자리로 뛰어가더니 함흥차사다.
그녀를 기다리다 밀려든 뒷 차량 때문에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야 했던
할머니 기사가 우릴 보며 허리업~(Hurry up)을 외친다.
나중에 금숙님을 태운 할머니 기사가 화를 많이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하다.'
휴~!
괜히 내가 가슴을 다 쓸어내렸다.
그럼 여기서...
금숙님의 핸드폰은 어디에 숨었을까요~?
버스 짐칸의 금숙님 배낭 깊숙이 있었다는 야그가 전설처럼 회자되는데
그날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동료는 하나도 없었던 건
사실 그런 건망증은 내가 더 심해~가 정답이다.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할머니 버스기사가
테아나우에서 한차레 쉬었다 갈 때는 자신이 약속한 시간을 어겨 늦게 승차한다.
ㅋㅋㅋ
한 손엔 음료수를 마셔가며 연신 주위의 풍광과
지역에 대한 소개를 열정적으로 하면서도 능숙하게 운전하는 할머니를 보자
참 멋지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 저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부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결국엔 2회 왕복을 하게 된
친숙한 도로를 거친 우린 퀸즈타운에 무사히 입성했다.
이후...
키위 디스커버리 회사에 들려 맡긴 짐을 찾아
퀸즈타운의 거리를 걸어 걸어가 우리는 새로운 숙소를 찾아든다.
이번 숙소는 단독 펜션주택...
모든 게 불편함이 없는 아주 만족한 숙소다.
이날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3박 4일 밀포트 트래킹 완주에 대한 자축의 밤을 즐겼다.
물론....
우리는 그간 트래킹으로 축난 몸을 보충하는
영양식단으로 준비했는데 이번에도 초록홍합은 1등 메뉴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순춘 님은 그간 트래킹으로 허리와 뱃살이 왕창 줄었는데
이걸 그대로 유지하고 가야 한국에서 자랑을 할 수 있다며 절제를 한다.
과연...
그래서 지금 그녀의 몸은 어떨지가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