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나는 이 한마디가 이렇게 다정한 건지 몰랐다.
"괜찮아."라는 말만 하던 나에게 말이다.
안부를 묻는 거다.
누군가에게 세 심 하단 건 많은걸 기억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한마디가 있다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작은 관심의 말을 건네 줄 것.
포르토 집으로 가기 위해 항상 걷는 길이 있다. 언덕으로 된 돌길. 늦은 밤에 이 길을 지날 때면 걸음이 빨라졌던 그 길. 하루는 꽤 여유 있는 하루였다. 그 때문일까? 좁고 어두운 길이 달라 보였다. 그 찰나 시선에 들어온 건 머리를 히피펌이라곤 볼 수 없는 펌으로 풍성하게 채우고 나와 눈이 마주치니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미소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스튜디오다. 수채화를 사용한 클래스를 운영한 다해 언제 참여할 수 있는지 체크했다. 그녀는 에어비앤비 화면을 띄우더니 더 자세히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은 다음 주 월, 화요일이라고 적어줬다. '원하는 시간에 메일을 보내줘' 그녀는 말했고 우린 인사를 했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항상 그래픽으로만 그려서 물감을 사용한다 상상하니 기대되기도, 한동안 엽서는 우리 집 식탁 위에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가야지 했는데, 다른 것들이 더 보고 싶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행위들은 여행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컸다. 그렇게 흘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이 스튜디오를 지나왔다. 아 그래 연락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다 에어비앤비 화면을 보여줬던 게 생각나 어플을 켰다. 나 또한 메일로 글을 보내고 있지만, 메일로 소통을 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을 보니 딱 내가 방문했던 그곳이었으니까. 수요일 오전 11시. 바로 예약했다.
그날 아침은 그림을 그리러 가기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맑았다. 오전 예약 덕분에 부지런히 움직인 아침. 노트북을 챙기고, 오늘은 처음으로 스커트를 꺼냈다. 20일 이상을 캐리어에만 있었던 내가 좋아하는 치마. 그림을 그리니까 매번 쓸 때마다 화가 소리를 들었던 베레모도 재밌게 써본다. 그리고 나섰다. 집에서 10분 정도의 거리. 마음 편하게 하늘을 만끽하며 걷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하늘이 맑아 자연스레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고 저 먼 곳을 응시하게 된다. 한번 숨을 고르는 시간은 단 3초일 뿐인데 왜 이렇게 놓치고 살까. 고마운 3초를 보내고 기억에 의존해 천천히 길을 걸었다. 다행이다. 잘 찾아왔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사진으로만 보던 hugo가 있었다. 그와 인사를 나눴다. 신기하게 처음 만난 파마머리 그녀와 비슷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silvia가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어. 그래서 이 공간에서 너와 둘이 할 거야.”라고 말했다.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있던 작은 스튜디오. 나는 아래의 공간에서 앞치마를 둘렀다. 그리고 올라오니 그는 카푸치노 한잔을 건네주었고, 뒤이어 하얀 휴지에 덮여 숨어있던 나타가 나타났다. “너를 위해 준비했어. 이거 먹어봤어? 정말 맛있어. 편하게 먹으면서 해.” “아 살짝 배고팠는데 고마워요” “ 사실 저번 주에 여기 지나가다가 들렸었어. 그때 실비아를 만났었는데. 아쉽다. 안부를 전해줘.” “아 정말? 너와 찍은 사진을 보내줘야겠다” 그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고 실비아는 답장을 보냈다. 기억난다고 참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오늘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정말 사랑스러운 부부. 한껏 긴장이 풀렸다. 웃음이 안겨준 릴랙스함.
이제 우리의 그림 시간은 시작되었다. “오늘은 이 그림을 그릴 거예요. 제가 미리 그려놓았으니 걱정 말아요. 이 펜으로 그 위의 부분을 따라 그리고, 그림자가 진 부분들을 펜으로 칠해줄 거예요. 이 펜은 방수 펜이라 수채화랑 잘 어울려요.” 아, 나 마치 미술학원에 처음 온 어린 학생이 된 것 만 같았다. 친절한 선생님은 옆에서 나를 안내해주시고, 나는 천천히 따라간다. 최근에 영어 이름보다 내 한국 이름 그대로 불리고 싶어서 “injoo”라고 영어 이름을 바꿔두었더니 “인주, 이거 보세요. 이렇게 하세요”를 번복해 말하는 문장이 너무나 귀여웠다. 쉬운 단어들과 문장으로 무장해 완성된 시간들.
선을 따라 그리는 시간은 침묵이 흐르기도 했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불현듯 저곳이 실제로 존재할까? 궁금했다. “이 곳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 무작정 그리고 따라 하는 건 싫다. 그는 “여기 성당 건너편에 있는 작은 골목이야. 구글에 보편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아 그렇구나.” “네가 원한다면 끝나고 데려다줄게. 구글에서 찾기는 어려워” “고마워요! 그럼 선생님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이 그림 안에 제가 있는 거예요. 이 건물을 바라본다던가.."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오케이를 외치셨다. 그리고 직접 펜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셨다. 지금 나의 모습 그 실루엣을 담았다. 어느새 난 내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다. 왠지 진짜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멋지다! 너무 좋아요! 를 연발했다. 그는 방긋 웃었고 우린 계속해서 선을 그렸다. “선생님 다했어요!”를 외치니, “좋아. 조금 기다려줘 나도 거의 다 해가”라고 말했다. 평범하고 작은 그림 샵에서 내가 앉아서 수업을 받고 있다니. 이런 낯선 촉감들이 좋다.
우린 채색을 시작했다. 푸른색이 아닌, 코발트와 딥블루를 섞기도 했다. 물을 종이에 가득 머금게 해 그러데이션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수채화의 채색법과는 달라서 흥미로웠다. 푸른 하늘을 색칠하다 말했다. 사실 “저 어제 노을을 봤어요. 이 하늘에 그 빛깔 들을 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나의 요청에 선생님은 오케이를 외쳤다. “고마워요” 그도 함께 노을을 그렸다. 가장 마지막은 보랏빛을 살짝 섞고 노란색, 주황색, 그린, 블루, 보라 해 질 녘부터 찬찬히 변하던 하늘의 색을 담았다. 천천히 오색빛이 되어 채워졌다. 내가 본 그 아름다웠던 포르토의 노을이다. “지금은 노을이 지고 있어서 원래 계산했던 그림자의 형태가 조금 다를 수 있어. 빛이 두 곳에서 들어와 하하” 웃으며 말해주는 선생님. 정말 고마웠다. 나다운 그림을 그리게 해 줘서. 꾸준하게 그림에 참여했다. 푸른색에 황토색을 섞어 돌담을 칠하기도 했다. 밖의 돌을 자세히 보면 푸른 이끼가 껴있다고 바라보게 하는 손짓도 좋았다. 사실 꾸준히 집중하며 참여할 수 있었다. “인주, 괜찮아? 잘 따라오고 있어? “ “너의 기분은 어때?” 선생님은 그림을 알려주며 나의 지금을 체크해주었다.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안내자가 건네주는 안부는 기분 나쁜 낯섦을 해소시켜준다. 시간을 내려놓게 만드는 작업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으로 그림 속 나의 색을 채웠다. 맘에 든다. 이 곳에 와서 가장 인상 깊어 계속해 시선이 갔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햇빛을 받아 빛나던 벽들의 색깔까지 포르토의 모습이 진정으로 담겼다.
옷을 챙겨 입곤 우린 그림의 배경지가 된 곳으로 걸어갔다. 나서자마자 그는 마주치는 사람들과 계속 인사한다. "이웃들이에요. 동네가 작아서 이렇게 모두와 인사하고 알고 지내요. 모두가 친한 관계를 가져요. "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설명해주던 선생님. 조금 무서웠던 골목길이었는데 이젠 씩씩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을 그렸던 곳은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인적이 드물어 조용했다. 선생님이 먼저 그림 속 내가 있는 곳을 가리키더니 말한다. "저기예요. 앉아보세요. 사진으로 담아줄게" 나는 그렇게 그림 속의 내가 되었다. 아빠가 찍어주는 사진 마냥 인증숏 그 자체지만 사랑스러움을 담아주고 싶어 하는 "고마워요. 친절하고 완벽한 선생님을 만나서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아 물론 리뷰를 꼭 적겠다고도 덧붙였다.
더디게 시간을 따라잡는 것. 조금은 놓아두는 것. 시간이 아니라 내 상태의 안위를 살펴주는 것. 평소의 나로 존재할 때 챙겨줘야 하는 손길이다. 3초 만의 시간을 두는 것은 더 행복해지는 지혜였다.
리스본에서 한 바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뮤지션은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 브라질, 폴란드, 이스라엘, 한국, 프랑스, 샌프란시스코… ”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우린 화음을 맞췄다. 예술은 이렇듯 사람을 하나로 합쳐준다. 이번 해 생일을 같이 맞이한 이에게 마지막으로 만나듯 전해준 이야기가 있다. “너의 예술을 놓지 말아 줘. 예술은 내가 어디에 있던 통하더라. 언어와 문화 속 장벽 속에서도 교감을 만들어줘. 그건 축복이야. 너의 음악은 정말 아름다워. 간직한 채 살자.”
틈틈이 포르투갈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를 읽고 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상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자신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향해 있지만 나 자신에게 외쳤던 말이었을까? 예술이라는 단어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사랑했던 나의 일을 다시 품어야겠다.
세상 속에서 영감을 얻고 배우자. 따라 하는 거 말고, 그 안의 나의 창조를 만나자. 누군가처럼 되는 것만큼 별로인 건 없다. 사실 내가 제일 잘 알게 된다. 타인의 생각을 훔쳐 사는 거 말고 내가 만난 나의 기준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게 진짜 예술이다. 내 삶 앞에서 내가 행복하길 바라고, 사랑스럽길 바란다. 삶에서 중요한 한 문장을 품었으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도 봐야지.
my dear.
your life is your art.
당신의 삶은 당신의 예술이에요. 작품입니다.
그러니 유일하고 소중해요.
내가 나에게. 한번 더.
your life is your art.
-포르토에서 용인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