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topian Jun 24. 2024

자전거 명상

주말에도 명상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흔들리는 것이 왜인가?

불혹(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이 라며?

요즘에는 삶의 시간이 더 길어졌기에 최소한 내 나이에 0.8을 곱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 아침에 들었던 어떤 매체의 이야기로는 30년간 우리의 평균수명이 17세나 더 늘었다는데 그렇다면 지금 내 나이에서 17을 뺀 나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뭔가 안정화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더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은 오히려 원래 그런 것이야 라고 넘길 수 있는 것은 이 변화의 안에 있는 젊은 층의 오픈마인드인 것처럼 나에게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일이다. 난 내가 충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나 또한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믿었지만 내 안에는 이러한 변화에 두려워하는 것일까?


 주말이고 날씨도 좋은 날인데 마음속에는 불안이 떠니질 않는다.  뭔가 달리고 싶다.

 평소에 타던 삼각형 자전거로 관광하듯이 자전거를 탈것이 아니라 이런 머릿속의 답답함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들이 주로 타는 로드 자전거를 타고 숨이 멎을 것 같이 달려본다. 속도가 늘어나는 만큼 엄청난 맞바람이 불어온다. 노이즈캔슬링이 없는 쓸데없이 소리만 좋은 블루투스 이어폰은 바람소리를 전혀 박아주지 못한다. 그래도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렴풋이 알아들을 만큼은 들리기에 오늘은 좀 멀리 그리고 빨리 갈 것을 마음먹었기에 준비하고 집을 나온다. 출퇴근과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다. 뭔가 맘속에 뒤엉킨 감정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싶었나 보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독서앱을 열고 내 서재에 있는 책들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골라 듣는다.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불안의 원인은 결국 뭔가 가질 수 없는 상황 혹은 뭔가 잃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내게 가까운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그 불안의 너무나 크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삶의 상태 즉 내가 지금 살아가는데 이 정도면 괜찮을까? 혹은 더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불안의 근본이다. 비교에서 시작되는 불안.

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이 불안의 수준은 지금과는 같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기에 욕심 혹은 비교의 수준이 지금과 같이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상이 평등하기에 다른 사람과 나의 차이는 나의 노력 혹은 상황에 있기에 결국 내가 원하는 수준의 안정감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질책이다.

서로 평등한 사회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불안의 크기는 작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체계에 대한 비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마르크스도 그러한 생각들을 키워오면서 지금은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일까?

 ‘어쩌면 내일은 이럴 거야, 혹은 내일은 더 힘들 거야’라는 미래의 걱정은 오늘의 불안을 만들고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절망스러운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불안’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보니 성수대교 다리까지 왔다.  가지고 온 물을 마신다.

‘난 왜 불안한가?’

’이런 주말에 원하는 시간에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나올 수 있는데?‘  

시원한 얼음물만큼이나 정신이 들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복에 겨운 생각이다.

듣고 있는 책이 아직 초반부인데 이미 뭔가 깨달은 듯하다.

‘뭔가 이렇게 불안이 아닌 불만이 많은가’라는 생각에 나의 불안은 어쩌면 복에 겨운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랭드 보통도 현대의 우리들은 먹고살만하니까 그것을 잃을 것에 불안이 더 커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의 상황이고 우리가 가지는 불안이 야생에서 목숨을 잃는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불안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오늘의 기준으로 사회적인 상황은 또 다른 형태의 정글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부’라는 효과적인 수단과 도구가 없다면 결국 정글에 떨어진 약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부’는 권력화 되어 옳음의 판단기준으로 선한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것과 멀어지게 된다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혹은 각자의 불안은 어디에서 왔고 내가 그 불안의 원인을 감당할 수 있느냐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지금 느끼는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참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날 만큼 빠르게 달리며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자전거를 달린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달리는 것에 온전히 초점을 맞출 수가 있어서 어느새 잠수교를 지난다.

평소에는 다리를 건너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을 텐데 오늘의 복잡한 마음은 더 멀리 가보자 차리라 내가 안 가본 곳을 달리다 보면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좀 더 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이런 마음이 든 것은 아마도 지난 주말 있었던 나의 새로운 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나름 회사를 다니며 어느 정도 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자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사내에서 제공하는 스타트업 선발에 도전했다. 다행히 1차 서류심사에는 선정이 되었으나 2차 면접 및 프레젠테이션 피치는 뭔가 원하는 내용을 충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심사위원들의 이야기에는 ‘도대체 뭘 하자는 거냐?’라는 말이 잔뜩 붇어있는 독설을 내뱉는다. 가슴이 아프다. 물론 당연하다.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뭘 할지도 모르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뭐 하자는 것이냐 라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걸 하려 했을까? 생각해 보면 뭔가 더 잘 살고 싶어서일 것이고 어쩌면 다른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나 또한 할 수 있다’ 컴포트 존을 벗어나라라는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여의도에 도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지나는 모습을 보며 이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면 나의 불안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불안은 이 상대적 조건에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하는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살짝 버겁지만 한결 마음은 가벼워졌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그래도 이렇게 풀어가며 매일을 살아간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불혹’의 나이는 지났으니

불혹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전 04화 출근 명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