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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버몬트-뉴욕 여행 11

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by Blue Bird
23200F4D524F3C231E Vermont주 Stowe의 스키리조트


보스턴과 보스톤, 어떤 표기법이 맞을까? 나는 전에는 보스톤으로 썼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게 맞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구글링 해보니 보스턴인 것이다. 외국어 표기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최대한 원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게 원칙이다. 나는 보스톤으로 들리는데 - 사실은 봐~ 스떤 으로 들림 - 국어학자들은 보스턴으로 들리나 보다. 어쨌든 표기법을 따라야겠다. 규칙은 따르는 것이 좋다. 규칙을 어기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아무튼 Stowe에 도착했다. 이 지명도 발음이 애매하다. 나는 지도에 있는 글자를 통해서 처음 이 지명을 접하고 스토위로 발음했다. 그래서 소피도 스토위라고 발음했다. 근데 나중에 캐나다 국경에서 출입국을 담당하는 직원의 발음을 들으니 '스토~'라고 한다. 그럼 스토가 올바른 표기인가? 구글링 해보니 스토와 스토위가 혼용되고 있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을 따를까? 그냥 영어로 쓸까? 이러다 여행기가 아니라 국어책이 되겠다. 여행기로 돌아가자.


스토는 한마디로 멋진 곳이다. 스키리조트니 겨울이 더 멋질 것이다. 단풍이 고운 가을에도 멋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 한창이다. 어젯밤 숙소로 예약한 Golden Eagle Resort에 도착했다. 리조트는 꽤 넓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낮은 건물이 여러 동 연결되어 있다. 실내 수영장, 실외 수영장, 큰 월풀도 있었다. 마당이 참 넓어 탁 트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체크인한 후 방에 짐을 넣어놓고 걸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약간은 철 지난 유원지의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그런 건 아니다. 여름에도 곤돌라가 운영되고 있고, 골프, 하이킹, 짚 레인 등 여러 가지 액티비티가 있다. 그래서 여름에도 가족단위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소피와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녁거리로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해 들고 나왔다. 중국집... 없는 곳이 없다. 한국음식점은 안 보인다. 리조트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실내 수영장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수영을 즐겼다. 꽤 큰 수영장이다. 따뜻한 월풀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풀린다. 따뜻한 물이 전해오는 느낌.. 피로가 풀리는 걸까 피가 풀리는 걸까?


이곳에서는 이틀간 예약했으니 내일 숙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대신 내일 갈 곳을 찾아봐야 한다. 아이팻으로 지도를 펴고 갈 곳을 검색한다. 자~ 내일 하루 동안 어디로 갈까? 가까운 곳에 있는 Ben & Jerry's 아이스크림공장에 갈까, 버몬트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 Burlington에 갈까? 그보다는 먼 곳부터 갔다 오자는 생각으로 캐나다의 몬트리올을 목적지로 정했다. 몬트리올에 가서는 뭘 할지 모르겠다. 그냥 도시를 한번 구경해야 지하는 생각뿐이다. 몬트리올은 큰 도시라 이곳만 일주일을 구경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번엔 그냥 차로 쓱 둘러보는 게 목적이다. 단지 지금 있는 스토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스토에서 몬트리올까지는 2시간남짓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구글에서 2시간 정도면 적어도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겠군, 왕복이면 6시간, 일찍 서두르면 도시 한번 둘러보고 올 수는 있겠군. 이렇게 생각했다.


가는 길에 스토에서 곤돌라를 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두세 가족이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좋긴 하지만 너무 없는 것도 썰렁하다. 여러 곳에 스키 슬로프가 보였다. 겨울엔 저 녹음이 하얗게 옷을 입겠지. 하얀 길을 형형색색 스키복을 입은 사람들이 수놓겠지. 북적거리겠지. 이런 데서 우동장사나 하면 잘되겠지, 컵라면도 잘 팔릴 거야. 이런 생각하다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갔다.


몬트리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거의 몬트리올에 다 가서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 베트남 국숫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베트남 국수와 비슷한 국수를 먹었다. 미얀마와 라오스 등의 음식을 파는 곳이었는데 프랑스풍이다. 음식점 안에는 창가 쪽에 여자 둘이 와인을 두고 앉아 뭔가 얘기하고 있었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어다. 잠시 후 웨이트리스가 와서 "옹샹샹송콩숑어쩌구~" 말하더니 우리가 '엥? 이게 뭐지'하는 표정이니 즉시 영어로 뭘 주문하겠냐고 묻는다. 음식점에 들어오기 전에도 한식이나 일식당을 찾으려고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사람들 모두 프랑스어만 한다. 영어로 물으니 영어로 답하려 애쓰다가 포기하고 손짓 발짓을 한다. 퀘벡이 프랑스어권인 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영어와 프랑스어가 혼용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긴 프랑스와 다름없다. 그나마 웨이트리스가 영어를 하니 다행이다. 내가 시킨 국수가 베트남 국수냐고 물으니 정확히 베트남 국수는 아니고 베트남 국수와 비슷한 라오스 국수라고 설명해준다. 다 먹고 후식으로 오랜만에 진한 베트남 커피 한잔 하려고 찾으니 베트남 식당이 아니라 없다고 한다. 캐나다인 줄 알았더니 프랑스요, 베트남인 줄 알았더니 라오스다. 하지만 점심은 먹었고 배는 부르다.


버몬트에서 캐나다로 들어가려면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그냥 차에 타고 톨게이트 같은 곳을 지나면서 여권을 제시하면 된다. 국경 직원이 묻는 건 "어디서 오는 건가요?" "어디 가세요?" "가서 뭐하실 건가요?" "뒤쪽 창문을 내려보세요" "차에 마약이나 무기 같은 거 없나요?" 이런 거다. 우스운 건 마지막 질문이다. 차에 마약이나 무기 가지고 가는 사람이 국경 직원이 이렇게 물어보면 "네 잔뜩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까나?


국경을 통과해서도 한참 가야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이름을 모르는 곳이 나온다. 몬트리올은 그곳에서도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그런데 30분이 교통체증이 심하니 두 시간으로 늘어났다. 몬트리올 시내 쪽으로 건너가는 다리에서부터 꽉 막힌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겨우 다리를 건너서 시내 쪽으로 들어가니 시내 모든 도로가 꽉 막혀있다. 평일 4시쯤...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그런가? 길은 캐나다 방향으로도, 미국 방향으로도 꽉 막힌다. 안 되겠다 싶어 미국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주차장에서 개스넣고 물 사고 다시 미국으로 출발이다. 결국 몬트리올에서는 주차장 땅 밟아본 게 전부다. 한 가지 더 있구나. 끔찍한 교통체증 경험한 것. 몬트리올을 벗어나니 차들이 뜸해진다. 온 길을 다시 밟아 버몬트로 돌아간다. 가면서 생각한다. 아~ 몬트리올엔 왜 왔을까?




캐나다의 퀘벡주가 아무리 불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불어와 영어 두 언어를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길가는 사람을 잡고 말을 걸어보니 불어만 사용하는 거다. 기본적인 영어도 잘 못하는 데에 놀랐다. 물론 불어와 영어를 다 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면 언어란 게 어렸을 때부터 그 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 원어민처럼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영어 발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은근히 받았다. 내가 하는 말을 원어민이 잘 못 알아들으면 당황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상대는 원어민이니 당연히 내 발음이 이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때로는 뻔히 잘 알고 있는 쉬운 단어를 원어민이 말하는데도 내가 알고 있는 그 단어로 안 들리는 경우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알아듣고 나면 너무나 쉬운 단어인데 처음 들을 때는 그렇게 안 들리는 거다.


미국에 사는 기간이 늘면서 발음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줄었다. 그렇다고 원어민처럼 발음을 하게 됐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일부 단어는 원어민 발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안 그런 경우가 많다. 특히 나 같은 경우 원어민과 대화할 기회보다는 영어로 된 책이나 문서를 읽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발음이 원어민에 가깝게 바뀌는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다. 발음보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을 정확히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여서 인종적 백그라운드가 다양한 만큼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악센트도 다양하다. 그래서 전문직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인도식이라든지, 아랍식, 영국식 등의 악센트가 있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발음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사고력과 논리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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