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곡들 물론 주관적 감상
오리는 오리고 백조는 백조, 둘 중 우월한 종은 없다. ‘미운 오리 새끼’를 따돌린 오리들이 잘못되었을 뿐. 이 전제와 함께 잇는다: 앨범의 ‘미운 오리’ 같은 곡들이 있다고. “왜 이 곡은 그의 음악 같지 않지?” 혹은 “왜 이 앨범의 다른 곡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지?”(리스트에는 포함하지 않았으나 어느 뮤직비디오에 이러한 류의 댓글이 달린 것을 목격했다.) 따위의 문장이, 걸러내기도 전에 머릿속을 맴돌게 만드는.
‘미운 오리’는 사실 부정확한 비유다. 표면적으로 다르게 다가올 뿐 아티스트가 구성한 아크에서 저마다 제자리를 차지하는 트랙들이니. ‘화룡점정’이 더 어울리는 비유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니 그것도 딱히 적절하지는 않다. 레코드의 트랙 각각이 서로를 완성하는 법이므로. 그렇다면, 풀어 설명하는 수밖에. 아래 곡들은 앨범의 타 음악들과 언뜻 구별된다. 후에 덧붙은 피스도 있고, 오히려 시작점이었던 경우도 있다. 한가운데에 배치되어, 페이지를 넘기는 포인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송라이터의 가능성과 범위를 새삼 드러내고, 끝내는 그들의 모든 작품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몇 곡은 한 뮤지션을 집중탐구한 글들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링크를 걸어 두었다.)
역시 내 글의 본질은 덕질
1. 이리하여 매번 디럭스에 손이 간다
‘Pieta’ (& ‘Sparrow’) in <St. Vincent>(Deluxe Edition), St. Vincent
<St. Vincent>는 오리지널만으로 완벽했다. 그러나 신곡 셋과 리믹스 하나가 더해진 디럭스 버전은, 완벽을 넘어서는 작품이었다. 오리지널과 디럭스의 구분은 적절했고, 앨범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앞서 미니 EP로 묶어 공개했던 ‘Pieta’와 ‘Sparrow’를 굳이 한데로 ‘adopt’한 까닭은, 연결되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달랐)어서이리라. 리드미컬한 아트팝에 고운 가성을 얹더니, 점차 강렬하고 풍성하게 고막을 채우던 ‘Huey Newton’. ‘Pieta’는 이 중독적인 트랙과 반대 방향의 사운드 반전을 노린다. 워낙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던 애니 클락이지만, 이런 식의 일렉트로-인더스트리얼은 또 낯설다. 빠른 비트가 흐르더니, 음울하리만큼 둔탁한 리프가 얹힌다. 이 기이한 싱잉-아니 보컬링은 또 뭐란 말인가. 끈적한 호소력을 지닌 애니 클락 표 보컬의 영역은 어디까지 뻗으려는지. 후렴은 거의 오페라틱한 발성이다. “리바이어던”의 음성, 그리고 그 부모의 ‘성스러운’ 음성. ‘Sparrow’는 ‘Pieta’와 닮았으면서도 별개의 매력을 지녔다. 보컬의 변주나 사운드 요소의 반전이 적고, 리듬이 보다 묵직하다. 정형을 해체해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조합하고,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편안하게 놓아주지는 않는 엇갈림의 예술. 애니 클락-세인트 빈센트는 그것을 가장 이상하고 아름답게 체화하는 동시대 아티스트 중 하나다.
https://youtu.be/IgXrY2Gl78o?si=N62DywM8wShM5Hj
‘Ohio’ in <Cheap Queen>(Deluxe), King Princess
인디 퀴어 팝스타 킹프린세스의 첫 정규 앨범 <Cheap Queen> 역시, 통으로 듣는다면 망설임 없이 디럭스 버전을 택하게 된다. 그 까닭은 라스트 트랙으로 추가된 ‘Ohio’. 캐치한 팝이나 재즈, 발라드 포크가 지배적인 레코드 끝에 이 다이너마이트가 터진다. ‘오하이오’는 ‘너’가 있는 장소, ‘나’는 그와 떨어져 있다. “돈을 받고 있지만 내 베스트 걸인 네가 곁에 없다”고 우울해하던 화자. 별안간 사운드가 폭발하더니, 그는 이제 “이리 오라”고 노래한다. 킹프린세스의 짙은 보컬에 이미 존재했던 가능성을 확인토록 돕는 시원한 록 그룹사운드, 몹시 반가웠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던지는 “That was good one.”, 미세한 웃음기가 독보적 음색에 매력을 더했다. 이 대사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달까.
https://youtu.be/lhYhA6eQ9do?si=QJX1M_lp_Ake-vKZ
2. 단조 베이스 컨트리는 거부할 수 없다
‘Wrong People’ in <Faye Webster>, Faye Webster
상온을 노래하는 시인, 페이 웹스터. 그가 십대에 낸 <Run & Tell>은 클래식 컨트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타지에서 송라이팅을 공부하던 웹스터는 ‘음악적 자유가 있는’ 아틀랜타로 돌아와 첫 정규 앨범 <Faye Webster>를 낸다. 일상과 관계를 묘사하는 웹스터만의 라이트 블루 위트가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베드룸 포크. 끝에서 두 번째에 자리한 ‘Wrong People’은 전작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그만의 개성과 여유가 묻어나는 트랙이다. 단조 베이스의 블루스 컨트리인데, ‘블루’나 슬픔, 허무가 아닌 야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 “친구가 그랬는데, 방 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자신이라면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거래.” “어쩌면 네가 말한 바를 좀 과하게 해석했는지도 몰라, 어쩌면 딱 알맞게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고.” 흘러가는 마음의 소리까지 그대로 적는 제스처, 웹스터답다.
https://youtu.be/M-xj7rnONaQ?si=j7t8lkAFElHlXnwH
‘Ballad of an Unknown’ in <One Day>, The Cactus Blossoms
그에 비하면 칵투스 블라썸즈의 ‘Ballad of an Unknown’은 단조를 정석적으로 활용한 편이다. 페이 웹스터의 가사 속 ‘나’는 대개 아티스트 자신인 반면, 잭 토리와 페이지 버컴의 스토리텔러는 ‘본인들도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기 힘든’ 이들이다. 새 일을 구하기 위해 “그저 또다른 장소”로 이사 온 화자. 초점은 도시에서 ‘나‘로, 이어 한 남자에게로 이동한다. 회색 도시의 공기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그는 묻는다, “How long can this go on?”. 전작에서도 사회를 의식한 곡이 몇 있었으나 경쾌하고 시니컬한 형태였다. ‘Ballad of an Unknown’에는 1집의 ‘Change Your Ways or Die’와 겹치는 소셜 블루가 있고,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적이다. <One Day>는 사적인 실버라이닝으로서의 사랑과 “선택적 희망”을 말하는 레코드다. 그 사이에 20세기 실존주의/허무주의 문학풍이 읽히는 트랙이 이토록 절묘하게 끼어 있다니… 최고다. 구절 사이 여백은 가슴 한구석의 공허를 감각하게 한다. [청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늘리고 중심을 이동하며 힘없는 호소와 관조를 오가는 묘한 곡].
https://youtu.be/SLlpt6EZyGc?si=cSuxN02zSUmHgHoa
3. 당신, 이런 것도 쓸 줄 아는 송라이터였다니
‘Everything Machine’ in <Give Me Your Shoulders pt.1>, half•alive
쿨한 리듬이 예사롭지 않다. 보컬은 감정을 걷어낸 듯 건조하다. 하프얼라이브가 이제껏 주로 풀어내왔던 -내면 상태를 돌아보거나 삶을 사유하는 내러티브 대신, “네 만능 머신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유혹하는 (사람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하프얼라이브가 이렇게 차가운 곡을 쓸 줄이야. 더군다나 “네 어깨들을 내어 줘”라는 따스한 제목을 단 (나머지는 그에 걸맞는 온도를 띤)앨범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니.
https://youtu.be/0VUVIpvedmc?si=5gUuXyr7ptQETjCd
‘Sunset’ in <Henge>, Gus Dapperton
부담스럽지 않은 신스팝 멜로디와 부드럽게 다듬어진 보컬이 주를 이루는 <Henge>에서 과연 ‘Sunset’은 별종이다. 허나 이야말로 <Henge> 월드의 핵. 아티스트가 세계를 구체화하는 여정에서 돌파구 역할을 했고,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시작점이다. [이제껏 본인이 만든 어떤 음악과도 다르고, 이렇다할 타 뮤지션의 흔적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는 천재 거스 대퍼튼이여, 스스로를 마음껏 자랑스러워하기를.
https://youtu.be/NhmP6bnMra4?si=ev1wzzymgvmkLAR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