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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Oct 13. 2022

평범한 내향인의 세계일주

그렇게 나는 한국을 '완전히' 떠났다.

아빠, 나 행복하지 않아


부모님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멀지도 않은데 굳이 차로 내 집까지 데려다주는 아빠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밤 조용했던 차 안에서 겨우 겨우 뱉은 한 마디.


거짓말이었다.

멀쩡하게 잘 다니는 회사를 관둘 거라는 말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몇 번을 곱씹다가 결국엔 엉켜진 채, 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와버린 거짓말.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배낭을 메고 떠났다.


단정 옷차림에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고 다니던 딸은,

카고 바지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평범한 직장인'이 꿈이었던 나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직장인이 되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일에 치이느라 바빠 쓸 일이 없으니, 돈이 아닌 돌이 되어 차곡차곡 쌓였다.

그래도, 어릴 적 막연하게 상상했던 나의 모습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직장인'이 되었고, 통장 잔고가 쌓이고, 뿌듯함이 넘실대는 삶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진급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며,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원했던 '평범한 삶',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 없는 삶을 살아가던 나는 언제나 갈팡질팡 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곧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조금씩 엄습해왔다.

불행함과는 달랐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계를 전전하며 살아온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엄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산다.

100% 만족하지 않는 직장엘 다니고,

어제의 삶의 상당 부분을 오늘도 반복하며 주말과 국경일, 여름휴가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다 그렇게 살진 않는다.



파랑새 잡으러 가요

사직서를 던지고 곧 사라질 딸을 두고 아빠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퇴사를 하고 백수를 자초하는 일이,

그것도 여자 혼자,

비행기를 타고 유럽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배를 타고 세계일주라는 야망을 품고 떠나는 일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당시,

그 상황을 남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 아빠 또한 나처럼 수많은 생각들을 곱씹다가 뱉어낸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에 더 가까웠다.

아빠는 행복하지 않다는 딸의 말을 믿었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파랑새는 찾지 못한 채 864일간의 세계일주는 끝이 났다.


기나긴 여행을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 후에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의 삶을 이어가거나, 그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한국을 완전히 떠났고,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해외에서 취직을 했고, 다시 퇴사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백수가 되어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빈곤하지 않게 살아졌다.


능숙하게 하던 스페인어보다도,

늘 자신감이 없었던 영어를 더 잘하게 되었다.


단정한 정장은 면접 때나 한 번 입을까 한 옷이 되었고,

굽이 높은 구두는 이브닝 파티 때나 신는 신발이 되었다.


주말이면 가던 부모님 집에 가는 일은, 가끔 거르기도 하는 연례행사처럼 되었고,

일을 아예 쉬거, 여가 시간에 치중하다 보니 돈이 돌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일도 없어졌다.


호기심이 많고, 발표를 잘하며, 할 말은 하는 내가,

지극히 내향인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아빠 말대로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파랑새를 찾지 못해 조마조마한건지도 모른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한 도전은 내게 수 많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은 지금도 종종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내게 온전한 만족감만을 줄 수 있는 삶이 존재 하기는 하는 걸까.


성공하지 않고도,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고도,

내게 당장 주어진 삶, 지금의 나에게서 행복과 만족을 찾기로 했다.


내 꿈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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