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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재 Oct 30. 2022

우매함의 봉우리에 우뚝 올라서서

0. 프롤로그-3

이 글은 시험 합격 후 이런저런 공부 경험을 공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일종의 합격수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이 시험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수험모드에 돌입하고 나서는 물론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허들을 넘기듯 어찌 겨우 아둥바둥 넘어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합격수기를 쓰면서 스스로 종종 기만에 빠지곤 했음을 고백한다.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건축사 자격시험의 과목 번호에 따라 목차를 간단히 정했다. 아직 집안 한 켠에 쌓아놓고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있던 시험 답안지 뭉치와 오답노트 및 이론 정리를 했던 공책 따위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 보며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 내려고 애써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차례 쓰고 나서 완성된 글을 읽어 본 나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각 챕터 별로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매우 중구난방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원인은 과목 별 득점의 커다란 편차에 있었다. 대지분석 및 조닝, 평면설계 및 단면설계는 나름 고득점을 받았던 것에 비해, 배치계획은 2년에 걸쳐 노력했던 것 치곤 결과가 저조했다. 구조설계 점수는 몇 년 째 두고두고 농담거리로 써 먹을 정도로 처참한 지경이었다. 문제는 과목 별로 내 태도가 완전 달라졌던 것인데, 결과가 좋았던 과목에 대해서는 명령조로 자신있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반면에 점수가 낮은 과목 챕터에서는 공부 얘기 자체가 별로 없다. ‘시험이 잘못 됐다’, ‘건축 교육 시스템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협회는 해체했다가 다시 건립되어야 한다’와 같은 규탄에 가까운 한탄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점수가 모두 좋아서 잔소리에 일관성이라도 있었으면 적어도 공부 방법론을 충실하게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이라도 했을 것이다. (물론 읽는 사람들은 괴롭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지금 위치한 곳이 우매함의 봉우리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유의미한 시도와 실패를 겪어나간 끝에 합격한 장수생이 나보다 몇 배는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남들에게 활자로 갑질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얕은 깊이로 찰박이는 문장들은 가만히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점수가 좋다고 반드시 그 과목에 통달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반대의 경우에 너무 또 평가절하를 할 필요가 없는게 바로 이 건축사 자격시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설정하기 위해 시험 점수라는 지표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채점위원들이 직접 몇 천 장의 손도면을 채점하는 과정에 있어, 건축사 자격시험은 휴먼에러가 발생될 여지가 무수히 많다. 권위 있는 국가 자격시험 치고 운이라는 변수가 심하게 작용하게 된다. (제출한 답안지 한 장 당 고작 들이는 채점 시간은 1분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은 시험을 준비하는 건축인들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다만 점수를 떠나 드는 생각은,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덕목은 바로 내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비록 점수가 정직하지 않을 지언정 말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자신의 어떤 본질적인 기질에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얕잡아 보고 무시하거나 단순한 낙관으로 가볍게 흘러보내는 것들은 언젠가는   발목을 잡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언덕 꼭대기에 꽂힌 깃발만 보고 돌진하기 바빠 그 과정을 세심하게 단속하고 점검하는 에 약한, 결국엔 과거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뒤늦게 자책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곤 한다. 허가도면을 세움터에 올린  공무원과 전화 협의하다가 뒤늦게 법규의 문구를 제멋대로 해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경험, 마감에 쫓겨 나무만 뒤지게  내느라 가장 중요한 숲을 놓쳐버린 경험, 그리고 결국에는 빼도박도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쓰라린 상처들은 모두 사물을 정직하게 바라보기를 게을리했던 대가로 치뤄야 했던 아픔이었다.



공부의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간과했던 무언가가 있는지, 어느 중요한 포인트에서 얼렁뚱땅 안심하고 넘어간 것은 아닌지, 내가 뭘 모르는 지를 모르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 항상 내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정리’를 하면서 그런 점검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얼추 큰 덩어리의 개념이 잡혔다면, 세밀한 가지를 뻗어 큰 덩어리들 사이에 낀 세밀한 덩어리들에도 닿으려 하는 것이 그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세밀하고 날카로운 촉으로 집요하게 추적해야 하는데 늘 이런 성격의 것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작업의 반복을 수반하는 경우도 많고,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그만 퇴근하고 싶어하는 자기 본능과의 대결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사실 그 대결에서 패배할 때가 대부분이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나라는 사람은 왜 이 모양인지 자책하며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없는 경우지만 승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아주 간혹 있었는데, 반드시 그 승리의 경험은 내 안에 어떤 족적 비슷한 흔을 남기게 된다.



아무래도 그 때 새겨진 흔이 여태껏 희미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결국엔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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